다시, 제주 올레길 (8코스)

홀로 걷는 제주 섬(島) 437km, 27개 코스

by 밤안개

제주에 온 사람들

보이지 않아도 걷지 못해도

바다향기가 그리워 온 사람들

잃을 것도, 받을 것도 없어

후다닥 들어와 살림 편 감귤 집 사내

팔뚝에 새긴 문신처럼

자신의 운명을 사랑한 청년


모두 사라질지 모르는 언덕 위에

집을 짓는다. 나무를 심고 밭을 일군다.


심한 비바람이 온 땅을 뒤 흔들던 날

어떤 이는 떠나고, 어떤 이는 남았다.


파도는 여전히 바위를 쓰다듬고

산은 물을 먹고, 해를 품는다.


다시, 섬에는

누군가 들어왔고, 누군가는 떠났다.

(2025. 8. 19)



2025년 8월 19일 화요일

큰 개에게 물린 조이(우리 집 소형견)가 응급치료를 받은 지 4일째입니다. 아내의 지극정성으로 물린 자국은 조금씩 아물고 있으나, 녀석을 볼 때마다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오늘 새벽 집을 나서는데 녀석이 심하게 꼬리를 흔들며 짖습니다. 자녀가 없는 우리 부부는 강아지를 키우면서 늘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들 그토록 애태웠군...'


협재의 아침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8코스를 걷습니다. 걷기 도전도 이제 중반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09시 04분, 월평아왜낭목쉼터에서 8코스를 시작합니다. 어제 만난 올레꾼을 버스 환승하는데서 우연히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눕니다. 요즘 올레꾼들을 만나면 대화가 거의 비슷합니다.


"저는 천천히 걷기 때문에 늦으니 먼저 가세요."

"왜요?"

"네 글을 쓰기 때문에 좀 늦습니다."

"작가세요?"


여기서 말문이 막힙니다. 다음엔 답변으로 "아니요, 그렇지만 작가지망생입니다." 이렇게 답해야겠습니다. 나는 웃으며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15분쯤 걸어온 길은 5년 전의 그 길입니다. 약천사입구, 리조트 앞 숲을 향해 걸어갑니다. 의외로 약천사는 큰 절이였네요. 배경사진 하나를 찍고 갑니다.


유사 올레 길을 유의해야 합니다. 불교는 '절로 가는 길'로 밤색 리본으로 표기하고 있고, 천주교는 '순례길'로 보라색 리본을 쓰고 있습니다. 또 녹색 리본 '탐모라질'도 있습니다. 가끔 공원에는 ‘하영올레’도 있으니 길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며 걸어야 합니다. 도보자는 대포연대로 향합니다.


포구를 지나 야자수길이 나옵니다. 아주 짧은 순간 이국정서가 느껴집니다. 8코스의 포토 존 앞에 서 있습니다. 아름답고, 시원한 주상절리대입니다. 오랫동안 파도에 깎였을 현무암의 모진세월을 상상해 봅니다.


색달마을을 지나 천제연로를 쭉 걸어서 예래동으로 갑니다. 색달로 사거리에는 익숙한 건물 다이소가 보이네요. 요즘에는 스타벅스만큼 친근한 건물이 다이소인 것 같습니다. 길은 도로를 끼고 20여분 내려오다가 예래 생태마을로 들어서네요. 공원이 있고, 조그만 오솔길 왼쪽으로 실개천이 흐릅니다. 물 흐르는 소리에 잠시 더위를 잊습니다.


공원은 걷기에 최상의 상태입니다. 졸졸 흐르는 실개천을 따라 30여분을 계속 걸었습니다. 숲은 아름다운 풍경을 내고, 도보자는 자연스럽게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어느덧 길은 넓은 바다에 이르고, 이내 좁은 마음을 큰 바다가 포근히 안아 줍니다. 꽃 피는 봄, 낙엽 지는 가을에 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예래생태공원입니다.


길은 또다시 사람속으로 나왔습니다. 예래 논짓물수영장입니다. 자연이 주는 축복을 우리 아이들이 누립니다.

시작점에서 17.6km, 현재시각 13시 28분입니다. 지치네요. 여기 하예포구에서 비스킷과 음료로 체력을 보충하고 갑니다.


길은 난드르 삼거리를 향해 갑니다. 이탈리아 남부 아말피 느낌의 기암절벽과 식당이 나옵니다. 14시, 오늘 최종 목적지 대평포구에 도착했습니다. 9시 04분에 출발했으니까 총 4시간 56분이 걸렸습니다.


서귀포의 아름다운 해안과 중문관광단지의 지중해 도시 같은 이국적인 모습, 예래 생태공원의 실개천을 낀 고요한 오솔길, 하예포구의 하얗고 낯선 느낌이 어우러진 8코스는 다소 길었지만 감성적인 눈물샘을 자극하는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로 첫 끼니를 때웁니다. 나중에 아내랑 꼭 와보고 싶은 바다 뷰 앞에서 먹는 음식입니다. 아름다운 제주바다가 작은 프레임에 담겨 있네요. 멋진 제주 올레 8코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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