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주 올레길 (7코스)

홀로 걷는 제주 섬(島) 437km, 27개 코스

by 밤안개

마음 길

그 겨울 석양으로 물들던

포구 앞에 서 있네


시간은 멈춰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바닷소리만 내 귀를 때리네

한 폭 공간에

갈매기는 날개 짓을 멈추고

파도는 바위 앞에서 흰 포말을 남긴 채

꼼짝없이 나는 밧줄에 묶여서

더는 나갈 수 없었네

그대로 있기 힘들어 주저앉고 말았네


오랜 떨림과 침묵 끝에

번뜩이는 섬광이 내게 말했네

모든 길은 같으니

태양아래 모든 포구는 같은 빛을 내리


그제야 발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자 숨이 터져

나는 계속 걸어갈 수 있었네

(2025. 8. 13)


2025년 8월 14일 목요일

올레코스 중 가장 핫한 코스 7코스를 걷습니다. 5년 전 해지는 월평포구를 걸으며 흐르던 눈물을 잊을 수 없습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눈부셔서 가슴이 복받쳐 올라왔습니다. 숨이 멎는 순간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다시, 길 위에 서게 만든 월평포구, 저는 지금 설레는 마음으로 협재 버스정류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립니다. 2시간을 이동해야 7코스 시작점 서귀포 제주올레 여행자 센터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08시 49분, 올레 7코스를 시작합니다.

길은 칠십리시공원을 향해 갑니다. 공원을 지나며 '삼천포시인 박재삼 (朴在森)과 성산포시인 이생진(李生珍)'을 담고 갑니다. 詩가 있어 좋은 아침입니다. 이 공원에는 '작가의 산책길'이라는 푯말이 있고, 멋진 시비(詩碑)가 산책하는 사람들을 반갑게 맞아줍니다.

삼매봉공원 오르막입니다. 체력이 처음 길을 나설 때와는 사뭇 다르네요. 100여 미터를 오르는데 죽을 것 같이 숨이 차고, 땀은 비 오듯 합니다. 정상에 있는 정자, 남성정(南星亭)에 앉아 글 쓰고 있는 지금 핸드폰에는 계속 땀이 떨어지네요. 이 정자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서귀포에서만 보이는 ‘카노프스’라는 별을 볼 수 있습니다. 토정 이지함(李之函)은 이 별을 보기 위해 한라산에 세 번 올랐다고 하네요. ‘카노프스’는 사람의 수명을 관장하고 있어서 이 별을 보면, 오래 산다고 합니다. 우리말로 별이름이 남극노인성 (南極老人星)입니다. 아마 장수하고 연관된 것 같습니다.


시작점부터 3.3km 부근입니다. 삼매봉을 내려와서 외돌개 주차장입구에 서 있습니다. 갑자기 밤에 별 ‘카노프스’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하라 사막에서 보지 못했던 어린 왕자의 소행성 B612를 여기서 혹시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외돌개’는 두 가지 전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고기를 잡으러 나간 할아버지가 그만 만선의 기쁨을 누리다가 돌아올 시간을 놓쳐 끝내 오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가 간 바다를 할머니는 하염없이 바라보며, "하르바앙~, 하르바앙"하고 부르다가 돌이 되었다는 전설입니다.


두 번째는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하신 최영장군이 원나라와 싸울 때 범섬으로 달아난 잔여 세력들을 토벌하기 위해 이 바위를 장군모습으로 꾸며 놓고 적군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외돌개를 '장군바위'라고 불려졌다는 설화입니다. 두 가지 다 멋진 스토리입니다.

길은 외돌개 산책길을 끼고, 폭풍의 언덕, 돔베낭길로 이어집니다. '돔베낭'은 동백나무를 일컫는 말인데, 이 동네는 깨끗한 식당과 숙소들이 호젓이 서 있습니다. 문섬, 범섬, 한라산이 보이고, 큰길 옆으로 서귀포 여자고등학교가 있습니다. 도보자는 속골로 향해 갑니다.


길은 ‘수봉로’로 이어집니다. 이 길은 사유지로 땅 주인 김수봉 씨가 염소를 끌고 다니던 길을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개방한 올레길입니다. 수봉로를 걷다 보면 박수기정('박수'는 '샘물', '기정'은 '절벽'의 뜻을 지닌 제주사투리임. 즉, '바가지로 마실 샘물이 솟는 절벽'이라는 뜻.), 산방산, 송악산 등 서귀포 남쪽의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습니다.


12시 9분, 법환포구 앞에 도착했습니다.(9.3km 지점)

지치네요. 더위가 몸의 균형을 마구 흔들어 놓습니다. 현기증이 다 나네요. 중국집에 들러 굴짬뽕 한 그릇을 다 비웁니다. 아름다운 법환포구해안길, '두 머니물 공원'을 걸어갑니다. 법환과 강정마을은 바다 경계 때문에 사소한 싸움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고, 상군이나 잠수 책임자들이 만나 인사를 나누고 화합을 다졌던 곳 이기도합니다.


범섬, 바다, 구름이 만들어내는 앙상블에 연실 셔터를 누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전방의 길은 막혀 있습니다. 기존 올레 길은 공사 중이므로, 도보자는 우회도로로 방향을 틀어 가야 합니다. 17.6km의 7코스 거리가 12.9km로, 4.7km나 줄었네요. 우회도로는 해안 길이 아니라 법환로 오르막 마을로 돌아갑니다. 숨을 헐떡이며 올라왔습니다. 서귀포월드컵리조트가 보입니다. 당황스럽습니다.

정확히 14시, 4시간 51분 만에 올레 7코스 종점에 도착했습니다. 위치는 제주월드컵경기장 옆 제주올레안내센터입니다. 이상합니다. 5년 전 제가 걷던 길과는 너무나 다르네요. 안내센터에 들어가서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7코스 공사구간 때문에 월평포구 길이 막힌 건가요? 길이 안 나오던 데요."

"네 맞습니다. 2년 전부터 강정마을과 월평포구 올레 길은 계속 공사 중이라 길을 막아 놓았고, 우회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 나의 꿈속 길은 사라진 건가요? 석양이 아름다워 마냥 눈물 흘리던 그 길은 현실에서는 없어졌단 말입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그 길에 가고 싶어서 오랜 시간 기다리고, 또 기다렸는데... 직원 분을 붙들고 한참을 넋 누리 하다가 생각을 고쳐 먹었습니다.

‘그 길은 없어지지 않았다. 절대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늘 그 길을 생각하며 걸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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