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주 올레길 (6코스)

홀로 걷는 제주 섬(島) 437km, 27개 코스

by 밤안개

섶섬

마음속 소리 없이 들어앉아

멀리 바다만 보다가

구덩이 속 그리움은

돌처럼 꺼멓게 타들어 갔네.


언제부터 여기 있었소.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나 보재.


그는 말하지 않는다.

그는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속으로 속으로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2025. 8. 13)


2025년 8월 13일 수요일

제주에 밝은 아침 해가 떠올랐습니다. 모처럼 맑은 날입니다.

오늘은 서귀포일대의 바다와 기암절벽, 그리고 시내를 둘러보는 비교적 짧은 올레 6코스입니다. 어제 블로그를 본 지인들께 문자가 왔습니다. 본인들이 가본 서귀포 일대의 멋진 풍경은 언제 나오는지를 묻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관광지와 엮여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멋진 호텔 뷰를 볼 수 있는 올레코스는 6, 7, 7-1코스로 기억됩니다. 지금까지 여섯 개의 코스를 걸어오면서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5코스 올레안내소에 근무하시는 직원 분은 5코스가 가장 아름답다고 하시고, 4코스에서 만난 식당주인은 4코스 해안이 가장 절묘하다고 칭찬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속으로 말합니다. '어디를 가든 제주의 길들은 모두 아름답고, 나름의 개성과 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마음에 담게 되는 길은 인생의 어느 때, 어떤 마음, 누구와 걸었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것 같습니다.' 하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은퇴 후 홀로 걷는 현재의 올레 길은 5년 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제 마음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아마 훗날 또다시 이 길에 서게 되면 그땐 다른 마음일 수 있습니다. 길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08시 54분, 서귀포 효돈 농협하나로마트 앞에서 버스가 정차합니다. 올레 6코스 시작점 쇠소깍 다리까지 16분을 걸어왔습니다. 정확히 09시 정각, 올레 6코스 시작합니다.

쇠소깍을 지나 해안도로를 끼고, 방금 소금막 앞에 와 있습니다. 소금이 귀하던 시절, 바닷물을 가마솥에 끊여 소금을 생산하고 저장했던 장소입니다. 소금을 지키던 병사들의 막숙(막사)도 여기 있다고 하네요. 길은 다시 하효돈 길을 돌아 게우지코지(생이돌) 앞으로 이어집니다. 게우지는 전복내장을 뜻하는 '게웃'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며, 코지는 '곶'을 뜻하는 제주어로 바다로 돌출된 육지의 끝부분을 일컫습니다. 바로 옆 두 개의 커다란 바위는 '생이돌'이라고 불리어집니다.

이 도로는 언젠가 친구들과 자전거로 올라온 길입니다. 그때의 친구들 모습이 포토 존에서 그려지네요. 도보자는 보목포구 앞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멈추었습니다. 한기팔시인의 <자리물회>라는 詩를 맛있게 읽고 갑니다.

보목포구 앞 도로를 가다 길은 3.8km 지점에서 산으로 올라갑니다. 제지기오름입니다. 산길은 금세 건너편 길로 도보자를 시간여행을 시켜주네요. 또 다른 바다를 만납니다. 여기서 한기팔시인의 또 다른 詩 <보목리 사람들>을 만납니다.

제주의 가장 남쪽 끝 서귀포로 오면 바다 위에 또 하나의 섬이 있습니다. 이 섬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입니다. '섶섬' 천연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된 이 섬은 각종 상록수와 180여 종의 희귀 식물들이 기암절벽과 어우러져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섬 옆으로 4대의 어선이 보이네요. 이 섶섬은 서귀포에서 남동쪽 3km 거리에 있으며, 서쪽에는 새섬, 문섬, 범섬이 있고, 동쪽에는 지귀도가 있습니다. 길은 구두미 포구를 지납니다. '구두미'는 거북이의 머리와 꼬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렇게 이름 지어졌습니다.


바다 옆 궁터 백록정(白鹿亭)을 지나고 있습니다. 바다 건너 과녁을 향해 궁수는 활을 당기고 있습니다. 바람과 파도와 공기를 가르는 활이 목표를 정확히 꿰뚫습니다. 인생도 그렇게 되기를...


7.3km 부근, 중간스탬프를 찍는 '소라의 성'에 들러 시집을 한 권 펼쳐 들었습니다. 46년생 김순이라는 시인의 <제주야행 濟州夜行>입니다. 아! 시어(詩語)가 마음깊이 들어옵니다. 점심시간이라 나가라고 하는 직원분 말에 급히 詩를 한편 찍고, 알라딘으로 책을 주문합니다. 일주일 후에나 받게 되겠군요. 제주라 뭐든 느립니다.

이제부터는 걸음의 템포를 조절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역사와 문화, 인생에 대한 깊이를 채워가며 걷습니다. 정방폭포 옆 서복전시관에 들러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해오라는 명령을 받은 서복이 '영주산(한라산)을 거쳐 여기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徐巿過之, 서복이 이곳을 지나갔다.)라는 글을 쓰고 서쪽(중국)으로 갔다'는 설화를 근거로 서귀포라는 지명이 생겨났음을 확인하고 갑니다.


'이중섭 거리'로 들어섭니다. 이중섭 생가는 현재 공사 중이네요. 저는 곧장 서귀포매일올레시장으로 향해 갑니다. 거리의 바닥과 상점, 간판만이 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13시 20분, 6코스 종점 서귀포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쇠소깍에서 9시 장각에 시작했으니까 4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5년 전 그와 아침을 먹던 산수정식당, 점심을 먹던 삼보식당도 그대로 눈에 띕니다. 당시 가이드북에 나왔던 삼보식당은 문이 닫혀있고, 허술해 보이던 산수정식당은 그대로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6코스는 예상대로 아름다운 길이였습니다. 기암절벽의 산책로에는 관광객들도 드문 보였고, 중간지 소라의 성에서는 2층 도서관에 가족들이 피서용 독서하는 것도 눈에 띄었습니다. 서복전시관을 들러본 것은 새로운 인문학적 지식을 쌓게 돼서 좋았습니다. 다만, 이중섭의 실제 작품들을 못 본 것이 다소 아쉬웠습니다. 자연과 문화와 음식에 대한 향취를 가득 담고 있는 체력적 부담이 비교적 적어서 편하게 걸을 수 있었던 길, 올레 6코스였습니다.

외로워 보이는 섶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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