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안녕이라 그랬어>

밤안개의 서재_7

by 밤안개

섬(島)에 온 지 6개월이 넘었습니다. 불편한 것이 주는 충만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분리수거하러 10분 걸어가거나, 장 보러 30분, 혹시 반찬가게에서 밑반찬을 사더라도 제주시로 1시간을 가서 사 옵니다. 모든 것이 불편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런 것들이 삶의 활력을 가져다줍니다. 분리수거만 해도 그렇습니다. 쓰레기를 들고 바다로 갑니다. 흰색 종량제 봉투, 그날 버려야 할 재활용 쓰레기, 음식물 버릴 것을 들고, 강아지를 포대기에 안고 해변으로 갑니다. 크린하우스가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뭔가 손에 잔뜩 쥔 채 보는 바다, 그리고 돌아오며 빈 손으로 다시 보는 바다. 모를 겁니다. 똑같은 바다가 왜 다르게 보이는지를... 아마도 품에 안긴 강아지는 그 느낌을 좀 알른지요.


2026년 새해 한립읍에서 있는 독서토론회 모임을 하나 가입했습니다. 첫 번째 토론 도서는 그동안 눈띵만 했던 소설가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입니다. 첫 챕터 '1. 홈파티' 를 순식간에 읽었습니다. 끌려가네요. 잊고 있었던 소설의 마법에 빠져 듭니다. 다음 문장이 궁금해지고, 뒷 장이 기대됩니다. 작가는 독자의 애간장을 참 묘하게 태우게 하네요. 두 번째 챕터 '2. 숲 속 작은 집' 넘겼습니다. 아뿔싸 등장인물과 배경이 다르네요.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 책은 단편을 7편 엮은 단편 소설집이었군요.


2. 숲 속 작은집

살아오면서 '감사하다,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을까요? 이 말에 화자의 진정성이 담겨 있을까요? 듣는 이는 왜 내내 불편해지는 걸까요? 작품 속에는 '고맙다'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첫 번째는 엄마에게 온 문자입니다. '은주야 만이 바쁘지, 혹시 있어버렸나 해서. 우리 딸 고맙고 미안해' 맞춤법이 틀린 이 조심스러운 핸드폰 문자는 주인공이 용돈을 제때 보내지 못하고 있을 때 보내온 엄마의 글입니다. 두 번째는 여행지 숙소에서 청소하던 메이드분의 어린 딸이 실수로 깨뜨린 장신구에 대한 대체품을 전달하면서 보낸 본인의 실수를 만회하며 쓴 '고맙다'라는 쪽지입니다. 세 번째 '고맙다'는 주인공이 팁을 남기면서 메모를 같이 남길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구겨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메모입니다.이 세 가지의 '고맙다'라는 표현은 작가가 86페이지에 쓴 다음의 문장에 그 내막이 숨겨져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작가의 통찰이 느껴지는 상황과 플롯 입니다.


*이상하게 그 말을 받은 게 아니라 언젠가 내가 상대에게 준 무언가를, 아니 오랜 시간 상대가 내게 주었다 생각한 무언가를 도로 빼앗은 기분이 들었다.

*신형철 평론가는 이 책의 후기에서 '고맙다'는 말에는 보이지 않는 가격표가 붙어 있음을 주인공 '나'가 이미 느낀 지 오래됐다. 고 평하고 있습니다.


3. 좋은 이웃

대한민국에 사는 성인들이 겪는 최대 이슈는 '집문제'입니다. 누가 더 좋은 집에 사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언제 집을 샀는지가 중요합니다. 2020년 이전에 집을 산 사람과 이후에 집을 산사람과는 격차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전세계약 갱신이 종료되는 4년 전 집을 사지 못했던 사람은 여전히 좋은 이웃이 될 선량함마저 빼앗길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어디에 속하신가요? 작가는 141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은 독백을 주인공을 통해 털어놓습니다.


말 그대로 그것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그게 나라면, 이 시장에서 이익을 본 게 나라면, 지금도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었을까? 대놓고 기뻐하거나 자랑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깊은 안도감 정도는 느끼지 않았을까? 하고요'(141p)


4. 이물감

누구나 겪었을 역류성 식도염을 작가는 인간사에 이렇게 재미있게 엮어 내다니 마지막 문장까지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금융권에서 나름 '입신양명'에 속한다고 평가받는 주인공 기태는 희주와 이혼 후 '자기 내부에서 나온 물질이 스스로를 안에서 삭게 하는(174p) 이물감을 느끼게 됩니다. 어쩌면 이것은 새로운 희주의 연인일 줄 모르는 차대표, 젊은 후배사원들, 새로운 애인 지수에게서 느껴지는 뭔가 쓰고, 불쾌한 일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4.이물감'은 독자에게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라고 질문을 던져주는 작품입니다.


5. 레몬케이크

왜 엄마와 딸, 아버지와 아들은 섞일래야 섞일 수 없으면서 서로를 동경하고 그리워하는 걸까요? 알파벳 읽기가 어렵고, 듣는 것조차 불편한 엄마는 소녀처럼 옷 입는 것에 관심이 많고, 친구 같은 딸이 조금만 다른 방향으로 가도 안절부절 못합니다. 늘 미안하지만 뒤돌아서면 마음속 앙금 같은 섭섭함이 남아있는 부모는 그런 존재인 것 같습니다. 여성(女性)으로서 엄마와 딸이 같음과 다름을 이 작품은 아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의 오늘과 당신의 오늘이 다르다는 자명함이, 엄마의 하루와 자신의 하루의 속도와 우선순위, 색감과 기대가 늘 달랐다는 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게 문득 뼈아프게 다가왔다. (p214)


6. 안녕이라 그랬어

다음은 인터넷 영어강사 로버트와 나와의 대화입니다.


(나) 우리말의 '안녕'에는 '반갑다'는 뜻과 '잘 가'라는 뜻 말고도 또 다른 의미가 있어.

(로버트) 어떤?

(나) '평안하시냐'는 '평안하시라'는 뜻


주인공 영미는 <러브허츠>란 팝송에서 불려진 I'm young, I know 란 가사에서 ' I'm young'을 '안녕'으로 들었습니다. 듣고 싶었던 말이라서 그렇게 들렸는지 모릅니다. 일상적이고 생뚱맞은 소재지만 오랫동안 씁쓸하게 이 단어를 읊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산다는 일이 늘 평안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7. 빗방울처럼

모든 것을 잃어버린 중년여성, 전세사기로 보증금을 날리는 통에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입주에 대한 꿈은 접게 되었고, 대출금 갚으려 죽어라 일하다가 남편은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로 급사하는 바람에 남편도, 자녀에 대한 소망도 깨져버린 지수, 그녀는 빗방울처럼 물이 새어 나오는 천장을 바라보며, 삶의 마지막 희망마저 끊으려 합니다. 그러나 도배하러 온 여도배공인 필리핀 여인을 통해 "무슨 일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도배일을 끝내고 그녀는 돌아갔지만 지수는 순간 본인이 누군가로부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별일 없이 안녕한지? 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음을 깨닫습니다. 빗방울처럼 천장에서 물이 새는 통에 그는 물소리가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지 말라고, 부디 살아가라고 얘기하는 물소리의 말을.

김애란 작가

김애란이란 작가를 눈띵만 해 왔는데 왜 진작 그녀의 책을 픽 하지 않았는지 반성 중입니다. 탁월한 소설가네요. 대한민국의 주도적인 사십 대, 특히 여성작가의 눈으로 본 한국사회는 참 막막합니다. 집문제, 부모간병, 실직, 이웃 간 관계 등 대한민국의 중간세대가 겪고 있는 일련의 모습들이 모두 망라된 것 같습니다. 여차저차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오면 맞닥뜨이게 되는 직장생활을 거쳐 결혼, 혹은 이혼을 하고, 일을 그만두게 되고, 이내 돌보던 부모마저 떠나 보나게 되면 어느덧 자신은 혼자인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누군가 불편한 초대를 받아해서는 안될 실수를 하게 되고, 마땅히 할 일을 찾지 못해 외국인과 인터넷으로 학습을 하거나, 갑자기 부득이한 사유로 중요한 일들이 펑크 나기도 하는 등 일상에서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사건들로 작가는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고 있습니다. 읽는 내내 이 글이 픽션인지, 개인의 삶을 담고 있는 에세이인지 헷갈리기만 했습니다. 그만큼 진솔했다는 뜻입니다. 너무 살가워 옆에서 누군가 말 못 하고 내내 끙끙대던 것들을 나만 몰래 듣는 것과 같은 7편의 재미있는 삶 이야기를 쉼 없이 잘 읽다 이제 갑니다. 그 삶의 현장으로.


작품평론에 대해

이 작품의 해설을 쓴 신형철 평론가의 평은 정말 탁월합니다. '돈과 이웃'으로 관계의 문제를 통찰하거나 '신자유주의'와 '존재론적 단계'를 엮어 '신자유주의적 존재'로서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 즉 금전적인 부의 창출과 상관없는 영역에서조차 우리는 '시장의 주체'처럼 행동하게 만들게 된다는 해석은 진한 공감을 갖게 만듭니다. 2020년을 전/후해서 집을 산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 구분되는 사회, '공동체, 이웃, 연대'가 어떠해야 한다는 가치를 왜 믿어야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믿을 수 있을지를 묻는 '좋은 이웃', 또 '고맙다'는 말에 가격표가 매겨지는 현실, 같은 중산층도 상류 중산층과 일반 중산층과는 계급의 경계선으로 그어질 수밖에 없는 보이지 않는 구분을 그린 '홈파티', 마지막으로 '안녕이라 그랬어' '빗방울처럼'에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언어와 언어가 가진 온도를 우리말을 모르는 외국인에게서 찾아냈다는 사실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들은 점점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입니다.

keyword
월, 목 연재
이전 06화김광림 詩 (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