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나 <혼모노>

밤안개의 서재_8

by 밤안개

2025년 대한민국 베스트셀러 1위 소설을 읽습니다. 잘 팔리는 것과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겠지만 적어도 내 세대(50대 중반) 이상의 연령대에서는 자기가 채운 목 단추 하나쯤은 풀고, 넉넉히 이런 베스트셀러에 마음을 열어야 되지 않을까 하고 별생각 없이 책을 펼쳐들었습니다. 그런데 첫 페이지를 읽자마자 현타가 옵니다. 이 소설은 제 일반적인 상식에 경종을 울립니다. 어떻게 이런 소설을 썼을까요?


무당이야기,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일까?


(혼모도 中 작두를 타는 무당묘사)

자연스럽게 몸이 떨리고, 눈이 뒤집힌다. 발바닥은 뜨겁고, 끈끈한 피로 흥건하다. 삼십 년 박수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명예도, 젊음도, 시기도, 반목도, 진짜와 가짜까지도.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혼모노'의 의미(챗GPT 검색)

저건... 진짜다(정상 범위 밖) / 칭찬: 괴물/goat, 놀람: 레전드/미쳤다, 비꼼: 찐/광기


작가는 가짜가 판을 치는 현실을 비꼬는 것이였을까? 아니면 진짜나 가짜 따위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런 무속적인 것에서 해법을 찾으려 하는 일군의 속물성을 질타하는 것이였을까? 30년 신통한 무당이었던 나, 내 전철을 받고 있는 스무 살 안팎의 신애기, 과연 누가 작두 위에서 이 신묘한 춤의 최종 승리자가 될 것인가? 과연 할멈은 누구 손을 들어줬는지? 할멈이 있기나 한 건지? 참 많은 질문과 찝찝함을 가져다 주는 단편소설 <혼모노> 입니다.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남영동 대공분실의 실제 건축가 김수근을 모티브로 한 이 소설은 순식간에 독자를 긴장시키고, 금세 몸서리치게 만듭니다.


빛이 인간에게 희망뿐 아니라 두려움과 무력감을 안길 수도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창이 필요한 건데....... 저는 완전히 반대로 생각했으니까요. (191p)


작가의 상상력에 전율을 느끼게 만드는 대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작가는 그 시절 여재화와 구보승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나요? 어떻게 상황을 이처럼 리얼하게 묘사할 수 있었을까요? 구보승의 실존인물인 건축가 김수근에 대한 아래 기사는 금세 우리를 유신정권시대로 인도합니다. "탁" 치니까 "억"하고 죽었다"는 그이가 있던 검은색 건물 5층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와 있는것 같습니다.

<참고>

[허남설 기자의 집동네땅] 남영동 대공분실의 건축가, 김수근은 정말 지옥을 설계했는가 - 경향신문 - [허남설 기자의 집동네땅] 남영동 대공분실의 건축가, 김수근은 정말 지옥을 설계했는가 - 경향신문 https://share.google/ST85srvQyrLCJxqmx


<우호적 감정>

적어도 나 같이 30년간 조직생활은 한 사람에겐 쉽게 이해되고, 공감이 가는 스토리입니다. 그 '우호적'인 것을 위해 얼마나 많은 날 동안 뜨거운 딤섬을 씹지도 뱉지도 못했었는지...


<잉태기>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작품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한 번의 호흡으로 읽히는 단편입니다. 태아를 임신한 딸이자 손녀인 서진을 두고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어쩜 이렇게 악바지로 싸울 수 있을까요? 소름끼치도록 리얼한 문장과 흐름입니다. 내가 그 둘 중 누군가의 배우자였다면 금방 두 손들고 도망쳤을 것 같습니다.


<메탈>

그 옛날 우리가 꿈꿔왔지만 결국 앨범 속이나 벽장 속에 숨겨놓고, 잊고 싶었으나 깊숙이 잔존해 있던 여러 겹의 기억들에 대한 망향입니다.


유튜브 채널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 <혼모노>를 한 해의 최고 소설로 선정했던 것이 생각나 무인서점에서 주저하지 않고 이 책을 골랐습니다. 되도록 고전이나 비소설, 詩를 선호하는 제가 시간을 따로 내서 소설 읽는 것이 꺼려졌는데, 첫 단편을 읽자마자 '참 어리석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래 김애란작가의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고 한국문학의 미래가 기대된다고 썼던 것 같은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는 이미 그 '미래'가 도래해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대를 읽고, 사람 사는 세상의 내부를 깊이 해부할수 있는 성작가의 탁월한 감각이 참 부럽기만 합니다. 문득, 책 표지의 사과 반쪽 그림에 대해 궁금해서 찾아보니 아래와 같은 답변을 얻었습니다. 멋진 메타포입니다.


성해나 소설집 <혼모노(2025)>표지는 두 개의 반쪽 사과 그림과 '진짜'를 뜻하는 여러 나라 언어를 배치하여, 무엇이 진짜(本物, 혼모노)이고 가짜(니세모노)인지 모호해진 세상과 그 경계에 선 인물들의 혼란을 형상화했습니다. 진실과 허상의 경계, 그리고 진정한 '본질'에 대한 질문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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