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이 홀로.
살면서 인생은 혼자라는 걸 깨우친다면 조금은 덜 외롭다. 홀몸일 때 와는 달리 지금은 애 딸린 둘 엄마는
오늘도 열심히 하루를 살아간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곤, 무거운 몸을 이끌어 '아이고..' 곡소리를 내며 하나 둘 집안일하며 더러워진 집안 곳곳을 청소한다. 지겹고, 지겹다. 같은 일상을 반복한다는 건 그동안 일구어낸 것들을 하나둘 무너뜨리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늘 똑같이 해낸다는 건 정말 대단하다는 걸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삶이 행복할 때가 있으면서도 단단하기만 엄마인 나도 아이들이 보지 않을 땐 힘없이 쓰러지는 일들이 잦았다.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핸드폰만 들여다보곤, 이내 아이들을 데리러 올시간이 되면 그제야 힘겹게 일어나 다시 '엄마'로 돌아간다.
'아가' 라며 얕은 웃음을 띄우며 둘째와 함께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을 맞잡고 하원을 했다. 그리곤 달달한 간식을 먹고 싶어 카페로 걸을음 옮긴다. 주문했던 케이크와 음료가 나오고 두 개의 포크가 나왔을 땐 나의 딸은 자연스레 엄마몫까지 포크를 건네어준다. 그 모습이 참으로 기특하고 예쁘기만 했다. 작은 것이 그걸 어찌 알까 싶어 자연스레 미소가 절로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단둘이 조각 케이크를 오손도손 나누어 먹었다.
이건 내 거, 이건 엄마 꺼!
어디 가서도 둘째의 야무진 행동과 말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아이였다. 예사롭지 않은 듯한 말. 그 잠깐이 내 어두운 공기에 향기로운 꽃향기가 머물듯 둘째는 그런 아이였다.
그것도 잠시 첫아이의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겨 데리러 갈 때부턴 전쟁이다. 두 아이 중 하나는 말을 잘 듣지만 한 아이는 기분이 좋지 않아 마냥 엄마에게 어리광 부리기를 시전 한다. 이유 없는 어리광을 보며 이때 나는 그러지 못했지...라는 생각에 절로 아이를 안아줄 수밖에 없는 나였다. 아버지 홀로 자녀를 양육할 적에는 엄격하고 무서웠던 아버지 성격에 내 어릴 적 어리광이 있을 순 없었다. 그에 반면 내 아이들은 마음껏 어리광 부릴 수 있도록 그 어리광을 받아주며 잠깐 안아주고 힘에 부쳐 내려놓으니 집 앞까지 다 와서도 안아달라는 아이가, 힘이 들어가지 않아 안아주지 못하니 목청이 갈라지도록 하염없이 울부짖었다. 미안하기도 하면서도 그런 모습이 미워 아이를 지나쳐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와서도 첫째는 안아달라고 끊임없이 문 앞에 대고 울고 소리 질렀다. 그런 아이가 왜 저럴까.. 유난히 오늘 속상한 일이 있었던 걸까 라며 아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 아이를 들어 올려 집으로 들어와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니, 속상한 일이 있었니
라며 그 갓난아이 때의 안아주기 해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러곤 진정이 되었는지 아이는 입을 조심스레 떼며 말을 했다. "엄마가 보고 싶었어" 훌쩍이는 아이가 어떤 서러운 일이 있어서 이 아이는 엄마품에서 속을 달래고 싶었나 보다. 싶다.
하루하루 바람 잘날 것 없다. 치우면 더러워지고 조용한가 싶으면 사고 치고 둘이 사이가 좋은가 보다 하면 한눈판사이 또 싸우고 울고 있다. 아이들에게 호통치는 내 모습도 어느샌가 내 호통은 통하지 않겠지 라는 생각에 이제 아이들에겐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어렵기도 어렵다. 육아 참 어렵다. 엄마손길이 필요한 이 아이들이 지금으로선 힘겹다. 나는 뭐가 그리 슬픈지 오늘도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