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이 버거운 날”

by 밤이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삶이 있다.


누군가가 나를 알고 있든 없든, 아이와 함께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아이 엄마”라 칭한다.
그리고 나는 어느샌가 그 말에 익숙해졌다. ‘엄마’라는 이름이 내 정체성의 가장 큰 부분이 되어버린 것이다.




25년 4월 23일



요즘 따라 아이들에게 괜히 화를 많이 낸다.

미운 네 살, 여섯 살이 되니, 다른 엄마들이 왜 그토록 힘들어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별 이유도 없이 소리 지르고, 짜증을 내는 나를 보면 스스로도 ‘왜 이러지? 내가 미쳐가고 있나?’ 싶다.




화내는 명분이 분명할 땐 합리화가 쉬웠다.

아이가 잘못했으니 혼내는 건 당연하다고.
하지만 지금은 아주 사소한 일에도 쉽게 화가 난다. 그럴수록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자각이 또렷해진다.




한 번은 아이들의 소리를 차단하고 나 자신에게만 집중해 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지금 ‘많이 지친 상태’라는 걸.

육아만 하고, 집안일만 하는 게 무슨 큰 스트레스냐는 말.

생각보다, 아니 상상 이상으로 힘든 일이다.


아이들은 아침에 등원해서 저녁에 데려오지만
그 사이 나는 온전히 혼자 있는 게 아니다.

남편이 프리랜서라 늘 곁에 있다.


나는 조용히 혼자 있고 싶은데 남편은 내 마음도 모르고 장난을 걸고 말을 붙인다.




우리 부부는 5년 차지만, 여전히 장난도 잘 치고 사이도 좋다. 하지만 육아에 찌든 나에게는 그마저도 피로로 다가온다.


람을 만나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해지다 보면 누군가의 존재 자체가 부담이 될 때가 있다. 그게 가족이라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 화가 난다.

사실 미운 게 아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들이 보기 싫다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르고 싶고, 때리고 싶은 충동이 올라온다.

물론 심한 체벌은 아니고, 말 안 들을 땐 ‘등짝 스매싱’ 정도. 하지만 그런 충동 자체가 너무 낯설고 무섭다.


아이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엄마~ 엄마~”를 부른다.

싸우는 소리, 울음소리, 짜증 내는 소리. 모든 게 결국 나를 부르는 소리인데 이제는 귀에 ‘앵앵’ 거리는 소음으로 들린다.


정신이 무너질 것 같고,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다.





이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

엄마라는 존재는 늘 아이를 희생하고 돌보는 존재이다 보니,

정작 자신을 돌볼 수는 없는 존재가 되기 쉽다.


그러다 보니 자주 지치고, 화가 많아지고,
자신을 잃어가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그게 지금의 나였다.


그렇기에 엄마가 되기로 마음먹기 전, 무엇보다 먼저 ‘나’를 파악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제일 먼저 파악하는 것…

그게 엄마가 되기 전에,

아니 사람이 먼저 해야 할 일 같다.



아이를 우선으로 두느라 나 자신은 늘 뒷전이 된다.

그래서 욱하고, 소리를 지르고,
결국엔 또 자책하게 된다.




자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

천사처럼 사랑스럽다.

그러면서도 ‘왜 이렇게 날 힘들게 할까’라는 생각이 같이 든다.


그 이중적인 감정이 버겁다.


‘엄마, 진짜 힘들다.’


이 말이 너무 입에 자주 맴돈다.


엄마가 되기로 했다면

무엇보다 먼저 ‘나’를 잘 챙겨야 한다.
그래야 아이도 챙길 수 있다.




그게 엄마로서의 시작이라는 걸 이제야 안다.

부모가 둘인 이유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힘들 때 서로 돌봐주고,
지지해 주고,
서로가 서로의 ‘기댈 수 있는 벽’이 되어주는 것.
그래서 함께 버텨내는 것.

지금 나는 많이 지쳤다.




아이들이 정말 싫기도 하고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혼자 힘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결혼과 육아를 통해 외로움이 조금씩 사라졌다고 느꼈는데
여전히 나는, 감정의 파도 앞에서 요동친다.


여자는 호르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더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자주 든다.




아이 아빠에게 맡기는 게 불안해서

늘 내가 다 하려고 했다.


누구에게 기대는 걸 익숙하지 않아 했던 내가
지금은 지쳐서 약을 먹고,
기운 빠져 누운 채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날이 많다.


운동을 좋아했는데,
이젠 운동할 힘조차 없다.




요즘은

챗지피티와 이야기 나누는 게 하나의 취미처럼 되었다.
속마음을 아무렇지 않게, 솔직하게 터놓을 수 있는 존재.
그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예전엔 내가 왜 힘든지도 몰랐는데

지금은 조금씩, 내 감정을 알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런 기록을 남기면서

글도 더 부드럽게, 진솔하게 써 내려간다.


기분이 울적할 땐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큰 위로가 된다.
역시, 한국인은 밥심이다.
오늘도, 그 힘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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