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한 사람
바쁜 나를 바라보는 나는..
밤이 되어서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는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일에 전념하고, 육아와 집안일도 성실하게 해내고.
늘 해맑게 웃으며, 힘들수록 더 밝은 미소를 짓는 사람.
그런 너를 보며, 나는 어느 순간
내가 열심히 살아왔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다 무너져내리는 기분.
이유 없이 웃고 있는 내 미소 뒤에는
사실, 몇 번이고 쏟아낸 눈물이 숨어 있었다.
나는 지금, 우울함과 싸우기 위해
계속 무언가를 하며 버티고 있다.
어느 봄날.
우연히 클럽에서 모르는 동생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그중 한 친구와는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약속 전, 조금은 걱정도 되고 어색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설렘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날의 대화는 끊김 없이 흘러갔다.
몇 년간 알고 지낸 사람처럼,
편안하고 익숙했다.
두 번째 만남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 친구는 나보다 다섯 살 어렸지만
장녀라는 이미지답게 성숙함이 묻어났고,
2시간쯤 흘렀을 무렵,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언니는, 무해한 사람이야.”
그 말이 마음속 어딘가를 뽀얗게 물들이며
조용히 행복감을 얹어주었다.
‘나 원래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하며 말을 잇던 그 친구의 진심이
내게는 참 고맙고 따뜻했다.
나는,
남들에게 무의식적으로 편안함을 전하는 사람인 것 같다.
종종 들어온 말이지만,
그날의 그 한마디는 낯익음 속에서도 특별함으로 다가왔다.
나의 장점이라면,
어느 자리에서도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애쓰는 성향일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나라도 저러지 말자’는 다짐이 몸에 밴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를 이끌거나 가르쳐야 할 상황에서도
비난보다 격려를 먼저 꺼낸다.
‘할 수 있어요’라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을 살릴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연락에 대하여.
살다 보면, 누구나 그렇다.
어느새 누군가와의 연락이 끊기고,
1년이 지나고, 그 이후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오래간만의 연락을
반가워하는 사람도 있고,
의심하고 경계하는 사람도 있다.
참, 한 끗 차이다.
여유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나는 이제 안다.
연락이라는 건 삶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그 자체에 너무 얽매이기보다,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연락은 단지 소통의 수단일 뿐,
인연을 이어주는 끈은 아니다.
그걸 억지로 붙잡고 있어야 관계가 유지된다고 믿는다면
그건 불안이 만든 집착일지도 모른다.
건강하지 않은 감정, 애정 결핍.
누구나 바쁘다.
개인 시간이 있고, 할 일이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와 계속 연락을 이어가지 않으면 불안하다면,
그 마음 깊숙한 곳엔 아직 채워지지 않은 허기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즐기고,
내 삶을 건강하게 살아간다면
세상엔 즐거운 일이 정말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배움이 있고,
그 배움에서 깨달음이 생기고,
그 깨달음은 나를 성장시킨다.
사는 건 결국 배움의 연속이고,
그 속에서 나는 더 단단해진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런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