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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결 Jul 20. 2023

내 안의 뜰

고양이의 평온함을 닮고 싶어

 계절 학기가 끝났다. 겨우 책상에 앉아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끝냈다는 사실만으로도 후련하다. 지금의 대학교에 와서 교양 과목 수강이 처음이었는데 전공과는 다르게 가볍게 느껴졌다. 학기 중에는 6과목이 전부 전공이라 버거웠기에 더 그렇게 느꼈다. 그래서인지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에 드고 나갔다.

 성적은 애초에 내 관심에서 살짝 발을 빼고 있었기에 쉬는 시간이면 출석만 해놓고 학교 냥이들을 보러 가기 바빴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고갯짓이 좋아하는 걸 뺏겨 다시 되찾으려는 아이처럼 바빴다. 내게서 좋아하는 걸 지키고 좋아하는 걸 자꾸만 뺏는 세상과 멀어지기엔 고양이 옆에 최고였다.

 커피 한잔을 손에 쥐었다가 고양이만 보면 내려놓고 사진 찍기에 열중한다. 조용한 몸짓에 숨죽이고 가만히 들여다보다 보면 어느새 나도 한 마리의 고양이가 된 듯 몸을 움츠린다. 상대적으로 큰 몸을 오므려봤자 작은 솜뭉탱이만큼도 못되지만, 그냥 그렇게 옆에 있다 보면 그 평온함을 닮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다.


 계절 듣는 15일 내내 봤던 덕분일까 다가와 엉덩이를 두들겨달라고 하는 사이가 됐다.

 열꽃이 핀 자리는 흉 져 거뭇해진다. 많던 능소화들이 다 떨어지고 마지막 남은 자리이다. 흉 진 가지들엔 녹음과 열기가 자리를 메우고 한 여름을 받아내기 한창이다. 장마가 내릴 땐 그토록 해가 그리웠는데 막상 열기 받아내는 마지막 능소화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안쓰러워 뒤를 받쳐주고 싶어졌다.

정해진 길 너머 사람이 잘 가지 않는 곳엔 쓸모를 다한 자전거 정거장이 있다. 비록 아무도 쓰지 않지만 자리를 지키며 우거진 숲에 고개를 내미는 모습.

난 시선을 잘 돌리는 편이다. 구석을 찾아가 숨어버리고 싶을 때가 많기 때문일까. 이런 마음이 들어 쳐다본 곳에는 항상 애달픈 것들이 보이곤 한다. 닳도록 쓰이고 버려진 것들 말이다. 기억에서 지워져 자신이 무엇이었는가조차 잊어버린 채 갈 곳을 잃은 걸 보고 있으면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온다. 하지만 이런 감정에도 보통의 사람들처럼 외면하고 자리를 빠져나오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위선이란 생각이 드는 걸 멈출 수 없다.

그럼에도 난 다시 발걸음을 돌려 최대한 곁에 있어준다. 용기 없어 나서지는 못하지만 약간의 위로라도 건네는 나만의 방식이다. 덜어낸 죄책감만큼 채워지는 묘한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내 관점에서는 애달픈 일일수 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자리에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쓸모가 없으면 버려지고 슬픈 일이라 생각한 나의 오만함일 수도 있다. 온갖 생각에 복잡해 보이겠지만 요즘의 내가 그렇다. 정리하면 보기에 편하겠지만 난 날것의 거침이 좋다. 그러면서도 고양이의 평온함을 닮고 싶은 건 어찌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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