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학기가 끝났다. 겨우 책상에 앉아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끝냈다는 사실만으로도 후련하다. 지금의 대학교에 와서 교양 과목 수강이 처음이었는데 전공과는 다르게 가볍게 느껴졌다. 학기 중에는 6과목이 전부 전공이라 버거웠기에 더 그렇게 느꼈다. 그래서인지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에 드고 나갔다.
성적은 애초에 내 관심에서 살짝 발을 빼고 있었기에 쉬는 시간이면 출석만 해놓고 학교 냥이들을 보러 가기 바빴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고갯짓이 좋아하는 걸 뺏겨 다시 되찾으려는 아이처럼 바빴다. 내게서 좋아하는 걸 지키고 좋아하는 걸 자꾸만 뺏는 세상과 멀어지기엔 고양이 옆에 최고였다.
커피 한잔을 손에 쥐었다가 고양이만 보면 내려놓고 사진 찍기에 열중한다. 조용한 몸짓에 숨죽이고 가만히 들여다보다 보면 어느새 나도 한 마리의 고양이가 된 듯 몸을 움츠린다. 상대적으로 큰 몸을 오므려봤자 작은 솜뭉탱이만큼도 못되지만, 그냥 그렇게 옆에 있다 보면 그 평온함을 닮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다.
계절 듣는 15일 내내 봤던 덕분일까 다가와 엉덩이를 두들겨달라고 하는 사이가 됐다.
열꽃이 핀 자리는 흉 져 거뭇해진다. 많던 능소화들이 다 떨어지고 마지막 남은 자리이다. 흉 진 가지들엔 녹음과 열기가 자리를 메우고 한 여름을 받아내기 한창이다. 장마가 내릴 땐 그토록 해가 그리웠는데 막상 열기 받아내는 마지막 능소화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안쓰러워 뒤를 받쳐주고 싶어졌다.
정해진 길 너머 사람이 잘 가지 않는 곳엔 쓸모를 다한 자전거 정거장이 있다. 비록 아무도 쓰지 않지만 자리를 지키며 우거진 숲에 고개를 내미는 모습.
난 시선을 잘 돌리는 편이다. 구석을 찾아가 숨어버리고 싶을 때가 많기 때문일까. 이런 마음이 들어 쳐다본 곳에는 항상 애달픈 것들이 보이곤 한다. 닳도록 쓰이고 버려진 것들 말이다. 기억에서 지워져 자신이 무엇이었는가조차 잊어버린 채 갈 곳을 잃은 걸 보고 있으면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온다. 하지만 이런 감정에도 보통의 사람들처럼 외면하고 자리를 빠져나오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위선이란 생각이 드는 걸 멈출 수 없다.
그럼에도 난 다시 발걸음을 돌려 최대한 곁에 있어준다. 용기 없어 나서지는 못하지만 약간의 위로라도 건네는 나만의 방식이다. 덜어낸 죄책감만큼 채워지는 묘한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내 관점에서는 애달픈 일일수 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자리에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쓸모가 없으면 버려지고 슬픈 일이라 생각한 나의 오만함일 수도 있다. 온갖 생각에 복잡해 보이겠지만 요즘의 내가 그렇다. 정리하면 보기에 편하겠지만 난 날것의 거침이 좋다. 그러면서도 고양이의 평온함을 닮고 싶은 건 어찌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