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 뭐 어때서
사람이 사람을 처음 만나면 으레 하는 인사가 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나이는? 직업은? 결혼은? 가족관계는? 무슨 공식이나 되는 것처럼 사람들은 처음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에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한다. 시대가 변해 요즘은 인스타를 하는지, 어떤 유튜브를 보는지 묻기도 한다.
나의 경우엔 상대의 기호 파악을 하기 위한 이유가 가장 크다. 한 번의 만남이 끝일지, 한 번 이상 더 보고 싶은 사람일지, 어떤 장르를 재밌어하는지, 나와 성향이 맞지 않아 부딪힐 일은 없는지 등등. 지금은 그렇게까진 아니지만 예전에는 가끔씩 그 사람의 기호를 기억해두었다가 선물을 하기도 했다. 내가 사람을 사귀는 방법이었다.
다시 첫인사 이야기로 돌아가, 첫인사 중 나의 콤플렉스 중 하나인 이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 이름이 너무 싫었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목소리로 놀림을 당하던 시절 또 하나 나를 힘들게 했던 콤플렉스는 이름이었다. 지인들 중에도 학창시절 이름으로 놀림 한 번 안 받아본 사람이 없겠지만 내 스트레스의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친구들처럼 예쁘지 않은 남자 이름이기 때문이었다.
초딩시절 종이접기로 티비에 나오던 유명한 아저씨가 있었다. 그 아저씨의 이름과 내 이름은 그야말로 '점 하나만 찍으면~' 되는 이름이라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날까지 난 그 아저씨의 딸이라는 루머(?)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것뿐인가.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친구들의 아빠나 오빠와 꼬박 인사를 해야 했다. 남자 이름을 부르며 너무 다정하게 통화를 한다는 이유였다. 성인이 되어서는 내 이름 뒤에 하트를 붙인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남사친과 통화한 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내게 가장 큰 상처를 준 건 돌아가신 친할머니였다. 이름처럼 남자애가 태어났어야 했는데 다른 집 애랑 바뀌었다는 헛소리를 돌아가실 때까지 들었다.
성인이 되면 이름부터 바꿔야지 수도 없이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난 아직 그 이름으로 살고 있다.
김영민, 괜찮지 않아?
이름을 소개할 때, 내 이름을 한 번에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다. 김영민입니다. 라고 하면 거의 김영미로 알아듣거나 그나마 알아듣는 사람은 진짜 니 이름이 이게 맞는지 응? 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싸이월드를 가입해서 제일 먼저 한 일도 누구나 그렇듯 동명이인의 동년배를 검색하는 일이었다. 82명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했다. 나처럼 힘들게 사는 사람이 또 있었구나. 생각하니 어쩐지 위로가 되는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 내가 내 이름이 괜찮다고 느낀 건 아주 사소한 계기였다. 20대 초반에 어떤 친구가 내게 '난 니 이름이 좋아. 뭔가 멋있고 다정한 보이그룹 멤버 이름이어야 할 것 같잖아.' 뒷말만 했으면 또 놀리는 거라 생각하며 개명을 생각했을 테지만 그런 이유로 좋다고 하니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학교 다닐 때는 영민오빠가 풀네임이었다. (혹은 태사자 김영민의 본명이었던 김영득을 따와 영득오빠라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내 이름의 유래(?)를 묻기도 했다. 원래는 돌림자로 '은기'였는데 너무 싫어서 엄마가 다시 지어 호적에 올린 이름이라는 것이다. 왜? 하필? 영미도 아니고 영민이야? 물으니 엄마가 젊은 시절 재밌게 읽은 소설이 있는데 그 주인공 이름이 영민이었고 나중에 결혼해서 첫아이를 낳으면 여자아이든 남자아이든 영민이라고 이름을 짓는 게 엄마의 로망이었다는 것이다. 어쩐지 그 말을 듣고 나니 개명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름의 서사를 즐겁게 얘기했다.
내 이름은 요즘 핫한 드라마의 출연자의 본명이기도 하고, 슈가맨에 나왔던 추억의 아이돌 그룹 보컬의 이름이기도 하다. 지금은 바뀌었을 것 같은데 한때 SM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사 이름이기도 했다. 내 이름만큼 대충 지은 거 같으면서도 유니크한 서사가 있는 이름이 또 있을까. 그래서 조금 더 내 이름을 괜찮다고 생각하며 좋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