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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경 Mar 13. 2019

인터뷰【단편소설】

솔직한 건 어려워

내몽골 여행에서 몽고빠오(蒙古包 : 직역하면 몽골가방)라는 곳이 기억에 남는다. 몽고빠오는 내몽골 전통주거형식인데, 내가 내몽골 사람이라면 절대 그곳에 살지 않을 것 같다. 몽고빠오의 문을 처음 열었을 때 얼어 죽은 듯한 벌레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또 따뜻한 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아 전기포트로 물을 끊여서라도 씻어보려고 했지만, 전기포트 안에는 녹이 잔뜩 슬어있었다. 밤에 잘 때는 옆 침대에서 자는 언니와 누워서 수다를 떨었던 자세 그대로 얼어버려 다음날 아침에 깨기도 했다. 몽고빠오에서 오들오들 떨었던 밤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지만 내몽고의 밤은 아름다웠다. 수많은 별들이 까만 하늘에 박혀 깜빡깜빡했다. 고개를 젖혀 나와 밤하늘이 평행이 될수록 별들은 많아졌다. 그렇게 고개가 꺾여 질 때까지 밤하늘을 구경하는데, 친구들이 소리를 질렀다. 별동별이 가끔씩, 꽤 자주 떨어졌다. 나는 별동별에게 정말 빌고 싶은 소원이 있었으나, 그 소원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그때는 구체적으로 소원을 빌어야 별동별이 들어줄 것 같았다-만약 그 소원이 마법처럼 바로 현실이 된다면 그때는 행복할 수 있을지 같은 것을 생각하느라 정작 별동별을 보지 못했다. 기억으로는 5번 정도 기회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냥 ‘알죠?’ 한마디면 심플했을걸.      

하지만 내가 진짜 후회를 하는 일은 따로 있다. 나는 새로 산 DSLR을 여행에 가져갔다. 굳이 DSLR을 산 이유는 사진이 찍힐 때 찰칵하는 소리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내몽고에 도착해서 넒은 초원, 쉬고 있는 말무리, 사막에 풀어져있는 낙타들을 찍은 사진은 제법 그럴 듯 했다. 그리고 밤하늘이 찍고 싶어졌다. 이 밤하늘을 그대로 담을 수만 있다면 컴퓨터 배경화면에 나오는 화려하고 정갈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찍어대도 별은 절대 찍히지 않았다. 카메라 렌즈에 손바닥을 대고 찍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까만 사진만 찍혔다. 그렇게 10장정도 찍다가 인터넷에 ‘별 사진 찍는 법’이라고 검색했다. ios값을 어찌 해야 하고, 조리개 값을 어찌 해야 하고, 삼각대가 필요하고, 결국 지식과 돈이 필요하고... 광활한 내몽고 초원 위에서, 깊은 밤하늘 아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카메라는 결코 셔터만 눌러대는 도구가 아니었다. 카메라는 사진을 찍는 것보다는 만드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봤을 때 ‘별이 가득한 밤하늘’인 사진을 찍어내기 위해서는 카메라를 다룰 줄 알아야했다. 그때는-지금도 마찬가지지만-‘앞으로 배우면 되지’와 같은 의지와 낙관보다는 허탈함이 컸다. 내가 어느 정도 카메라를 배우면 그때는 내가 보고, 느낀 그대로의 밤하늘을 찍을 수 있을까? 그럼 지금 이 카메라에 찍힌 까만 사진들은 내몽골의 밤하늘이라고 할 수 없는 건가? 사진을 찍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사진을 보여주고 그것이 무엇인지 맞춰보라 는 게 사진의 의미인가? 어떤 장면을 선명하게 담아낼수록 잘 찍은 사진인가?      

저번 주는 여행 때문에 일주일 통째로 알바를 빠졌기 때문에 오늘은 괜히 사장님 눈치가 보인다. 이따 두시쯤에 사장님이 한번 들르실 텐데 그전까지 깨끗이 테이블 닦아놔야지. 대학을 입한 한 후 이곳저곳에서 알바를 여러 번 해봤지만 카페 알바는 처음이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후 처음으로 지원한 카페 알바였다. 카페알바는 생각보다 내 적성에 맞았다. 운이 좋게  사장님도 깔끔하시고 진상손님도 거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끔씩 백색소음을 뚫고 들어오는 손님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이 나름 재밌다. 누가 바람을 폈는데, 이번에 누가 편입을 하는데, 누가 결혼하기 전에 등등. 가끔씩 저 손님이 그냥 지어낸 얘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드라마 같은 얘기들을 재미나게 들을 수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손님들의 얘기를 훔쳐 듣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나는 자주 오는 손님들의 얼굴이나, 특이 사항 같은 것을 거의 다 기억하는 편이다. 계산대에서 가장 가까운 창가 자리를 닦으면서도 한 손님이 떠올랐다. 그는 거의 매번 월요일에 이 자리에 앉는다. 그의 또 다른 특징은 카페에 올 때마다 다른 사람과 온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말하기 보다는 듣는 쪽이었다. 짧게 상대에게 말을 건네고 상대가 길게 풀어서 설명할 수 있도록 차분하게 기다리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오늘도 오려나?     

사장님이 다녀가신 다섯 시쯤 예상대로 그가 왔다, 오늘도 그는 그 자리에 앉았고 라떼를 시켰으며 이전과는 다른 사람과 왔다. 오늘은 평소보다 사람이 없어서, 그와 상대방의 대화가 카페의 음악소리보다 또렷이 들렸다.      


S : 저는 아무런 일정이 없어요. 학교나 회사도 가지 않아요. 처음 며칠은 편했죠. 하지만 한 이주쯤 후에는 아무 곳에서도 저를 불러주지 않는 것 같아 무언가에게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어요. 따지고 보면 일부러 제가 이런 상황을 만든 것 같아요. 저를 위해서. 그러니깐 아무 일정도 없는 거죠. 뭘 배우러 다니고 싶어도 그러면 정해진 시간에 움직이고 해야 하니까요. 평소에 그런데서 좀 갑갑했던 것 같아요. 제 말 이해되세요?      


오늘 그가 데려온 사람은 S라고 했다. S는 음료를 주문하지 않았다. 그는 S에게 무엇을 마실 거냐고 물었지만 S는 집에서 미리 가져온듯한 텀블러를 꺼내보였다. 그와 S에게서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요즘 내가 제일 관심이 가는 사람이다.      


K : 사실 모두 S씨 같은 삶을 꿈꾸잖아요. 간단히 말하면 토일토일토일 뭐 이런 생활을 하고 계신 건데... 신기하네요. 아니 그럼 밥은, 당장 먹을 거는 어떻게 해결하세요?     

S : 먹을 거라면, 뭐, 냉장고에 먹을 거 정도야 있죠. 그냥 간단하게 먹어요. 예전에-그러니깐 제가 이렇게 살기 전에는-그게 노력해도 잘 안 되었는데, 이제는 잘 되요. 즐겨먹는 요리로는 리코타 샐러드나 밥에 들기름, 간장, 계란을 비벼 만든 계란밥 정도요?     

K  : 계란밥. 진짜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저희 집에서는 그걸 ‘계란 후라이밥’이라고 불렀는데, 집집마다 그 비슷한 요리 이름은 좀 다른 거 같아요. 제 친구 집은 밥, 고추장, 계란 섞어서 먹는 밥을 ‘계란비빔밥’이라고 부른 던데요. 아 어째든 사실 제 질문의 의도는 그건 아니었어요.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밥벌이를 어떻게 하시냐는 거죠.     

S : 엄마가 가끔씩 반착을 채워주고 가시죠. 생활비라고 사실 해봐야 별거 없어요. 책값이나 교통비정도인데, 그런 것들은 예전에 번 돈으로 충분히 해결가능해요. 제가 이 생활을 아주 오랫동안 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안한지는 이제 겨우 두 달째 되가는 중이에요. 제 생각에 이 ‘아무것도 아닌’ 생활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에’ 익숙해지기 쉽고 또 익숙해 보이기 쉽죠. 가족들이나 친구들은 가끔 이런 제 생활을 스님 같다고 해요. 그럴 때마다 기분이 묘해요. 왜 스님들은 산속에서 도를 닦잖아요. 그렇지만 저는 굳이 산에 들어가지 않고 속세에 묻혀 도를 닦는 거죠. 왠지 좀 뿌듯하기도 하네요,     

K : S씨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물어보고 싶은 게 더 많아지네요. 많은 질문들이 떠오르지만 일단 예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또 아무것도 안하는 생활은 어떤 걸 하는 생활인지도요. 제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생활이라고 해서 정말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아니시죠? 예를 들어서 지금 저랑 이렇게 얘기도 하고 계시잖아요.     

S : 맞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생활은 좀 더 명확히 말하자면 내 삶의 중심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까요? 애초에 이 생활을 시작한 목적도 그렇고요. 저는 예전에 작은 출판사를 다녔어요. 처음엔 책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정작 사람에 관한 문제가 더 컸어요. 동료부터 시작해서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만나는 거래처 사람들은 아주 다양했죠. 뭐 사회에서 조금만 일해 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느끼는 거지만 세상에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많아요. 그 사람이 꼭 악한 사람이 아닐지라도요. 이대로 회사를 다니다가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까지 흥미를 잃을 것 같았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회사를 그만 둔건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학교를 다닐 때도,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회사를 다닐 때도 사람에게서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아왔어요.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사람들하고 친해지는 일, 마음을 열어놓는 일, 싸우고 화해하는 일 같은 것들이 일정한 패턴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속을 알 수 없는 문제니까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서 한발짝 떨어져서 혼자 제 삶의 중심을 잡아가는 연습을 하려고 이 생활을 시작 한거에요. 명확히 해두고 싶은 건 이건 실업자와는 다르다는 거에요. 저는 구직하려는 의지가 없거든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미래를 위한 엄청난 준비를 하는 것도 아니에요. 뭐랄까,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생존“운동(運動)”을 하는 거죠.      

S는 ‘운동’이라고 말할 때 양 손으로 큰 따음표를 만들어보였다. 그것 말고도 S는 종종 외국인 제스처를 취했다. S는 전체적으로 말과 행동이 과장되어 보였다. 아니, S는 화가 나있는 것처럼 보였다. K와 S는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인 것처럼 보였는데, 그런 것 치고는 조금 무례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는 차분히 다음 질문을 이어나갔다. (냉철한 질문이었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K : S씨의 말을 정리해보면 사람이 싫어서 사람들과 멀어지는 생활패턴을 만들었다는 말이네요? 그러면 그건 도피 아닌가요? 히키코모리 같이 말이에요. 실업자나 백수도 아닌 자기수양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하지만 세상과 사람이 무서워서 숨어 지내고 계신 것과도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S :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제가 사람들과 친해지고 어울리지 못한 이유가 저의 중심을 잡지 못해서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뭘 읽고 싶은지 알고, 어디를 놀러가고 싶은지 알고, 뭘 먹고 싶은지 안다면 사람들하고 얘깃거리도 더 많아지고 자신감도 높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렇게 중심을 딱 잡고 있으면 사람들이 뭐라고 얘기하건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거죠. 싸울때도, 즐거울 때도 그냥 당당히. 저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연구하고 있는 거에요.     


S는 자신의 ‘중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는 마시고 있던 텀블러를 가볍게 내리쳤다. 하지만 가볍게 내리쳤다 하더라도 카페 테이블이 나무 재질이라 소리는 제법 크게 났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S에서 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 이후로는 최대한 창문이나 가게 문을 응시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애썼다.


K : 음... 지금 S씨가 지내고 있는 이 과정이 처음엔 굉장히 간단한 생활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좀 어렵게 느껴지네요. 그러니까 S씨는 자신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는 건데...(잠깐 S씨의 눈치를 보며) 그건 어디에도 결과가 나와 있지 않은 거라 상당히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방법을 쓰고 계시나요? 뻔한 방법들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S : K씨 말 대로라면 저는 ‘자기학’을 하고 있는 셈이네요. 뭐 방법들이라면 아주 많죠. 어쩌면 좀 황당무계할 수 있어요. 책 읽고, 영화 보고 그거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하고...뭐 이런 방법들을 쓰기도 하는데, 이런 게 뻔하다고 생각하세요?     

K : 음... 오랫동안 생각하신다구요? 어떻게요? 사실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정말 궁금해 하는 부분이거든요. 저는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그 순간은 좋아하는데, 그 후에는 재빨리 일상으로 돌아오는 타입이에요. 그래서 그 책과 영화를 더 음미하고 싶은데 아쉬울 때도 많거든요. 뭔가 큰 걸 놓치는 느낌이랄까. 그럴 때마다 슬퍼요.     

S : 오랫동안 생각하는 건 별다른 게 없어요. 저처럼 그냥 시간이 많으면 되죠. 의식적으로 계속 그 책이나 영화의 주인공, 아니면 이야기에서 잠깐 튀어나왔던-별다를 것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엄청난 의미를 가질 수도 있는-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이 있어요. 근데 신기한 게 이 방법의 끝에서는 결국 쓸데없는 것들이 어찌 됬든 어떤 의미를 갖게 되거든요. 그게 저한테는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좀 더 자세히 얘기해보면, 사실 우주에 비하면 우리가 사는 게 정말 먼지 같은 건데-왜 천문학자들의 자살률이 일반인에 비해 높다고 하잖아요. -그 먼지가 의미를 갖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 같은 거죠. 물론 누군가 그것에 대해 오래 생각해줘야 가능한 일이지만요.      

K : 예를 들어서요?     

S : 최근에 봤던 영화중에는... 저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거든요. 일단 솔직하잖아요. 솔직하고, 인물들의 말투가 차분하면서도 힘이 있어요, 어쩔 때는 그 영화 인물들의 말투를 따라하고 싶어져요. 실제 생활에서요. 근데 그게 정말 잘 안 되더라구요. 차분하면서도 용기 있게 얘기하고 싶은데 그게 어려워요. 아무튼 예를 들어 홍상수 감독의 영화중에서 ‘우리 순희’ 라는 영화가 있는데 거기서 두 번이나 배달시켜먹는 치킨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순희의 교수가 쓴 첫 번째 추천서와 두 번째 추전서는 서로 어떻게 달라졌는지... 뭐 이런 것들이요. 이것에 대해서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 때 실제로 깊이 생각했을 수도 있고 안했을 수도 있죠.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제 마음대로 깊이 생각해보는 거에요. 사실 답이 없을 수도 있고, 답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제 나름대로, 잠정적으로 결론지은 것일 뿐이죠.       

K : 그러면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아 이게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는데? 그냥 시간낭비 한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들면 어떻게 하죠?     

S : 그런 것 정도야 감수할 수 있죠. 인생에서 잠깐 고민한 것에 대한 결론이 아무의미가 없다는 건 ‘아무 일’도 아니에요. 우리는 몇 십년을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도 가끔 그 모든 게 아무의미가 없다고 느낄 때도 있잖아요. 그런 거에 비하면 진짜 별거 아니죠. 그렇지 않으세요?     

그와 S는 예술작품에 대해서 얘기할 때 진지해보였다. 어쩌면 저들이라면 사진에 대한 내 고민을 이해할지도 모른다. 카메라를 샀는데 밤하늘 사진을 못 찍은 이후로는 카메라로 도대체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 사진을 찍는다는 게 정말 어떤 의미인지 혼란스럽다고 친구들에게 얘기해본 적이 있다. 물론 그때는 내 생각을 완전히 정리해서 말하지 못했다. 원래 하려고 했던 얘기가 아니었다. 술자리에서 다들 조금씩 취기가 올라 수다는 떨고 싶은데 이야기 거리가 다  떨어졌을 때 “야 너는 무슨 고민 없어?”라고 물어봐줘서 얘기한 것뿐이었다. 완전한 이해를 바란 것도 아니었지만 횡설수설하며 내 고민을 열심히 털어놨는데 분위기가 이상해져서 서운할 정도였다. 친구들은 그건 고민도 아니라고 다른 곳에 가서는 그런 얘기를 꺼내지도 말라고 했다. 전문가도 아닌데 일단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으며 요즘은 좋은 핸드폰 카메라 어플이 많다며 그걸 다운받아서 쓰라고 했다. 내가 괜히 진지한 거였나? 그가 내 친구였다면 적어도 질문 하나쯤은 해줬을 텐데. 그는 S의 이야기를 듣고 이번에는 좀 오래 고민하더니 또다시 ‘자기학’의 또 다른 방법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생각해냈다.       

S : 또...저는 가끔 그냥 밑도 끝도 없는 상상을 해요. 주로 사막에 가 있는 상상을 하는데, 아마도 그건 잠들기 전에 깜깜한 천정을 보면서 주로 상상을 시작하기 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 잠들기 전에 천정은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까만 거뿐이니까 사막의 밤하늘처럼 느껴지거든요. 한번은 사막에 누워 별을 보는 상상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별들이 꼭 죽은 자들의 영혼 같이 느껴지는 거예요. 이거야 말로 죽고 나서 천국도 지옥도 없고 그냥 별로 박혀 평안하게 빛날 수 있는 행복한 사후세계라고 생각했어요. 사막에서는 별들이 모두 또렷이 보이잖아요. 인공위성처럼 밝게 빛나는 별도 있고, 그보다는 덜 밝은 별도 있고, 가끔씩 떨어지는 별 기둥도 있고. 끝도 없이 별들이 많을 거잖아요. 이런 게 꼭 한명 한명이라고 느껴지는 거예요. 이제는 인간이라는 육체를 떠나 별들에게로 영혼을 옮겨 담은 거죠. 오랫동안 이곳에서 피로했던 몸을 떠나 우주에 기대 떠다니는 기분이 어떨까도 상상해봤어요.      

K : 멋진 상상이네요... 멋있긴 한데 이게 도대체 자신을 알아가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죠? 혹시 그냥 좀 있어 보이려고 없는 생각을 지어내시는 건 아닌가요? 그래서 이런 사막이니 영혼이니, 좀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하시는 거라면, 그냥 솔직하게 얘기해주셔도 되요. 자신을 알아가는 거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질문 같은 거, 이를테면 “내가 누구일까, 나는 어디서 왔나, 이런 뻔한 질문을 계속 던지다 보면 잠이 오는데 그럴 때는 잠을 자면 되죠...” 뭐 이런 식으로요.      

S : 뜬구름 잡는 얘기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디서 온 것일까? 이 질문들, 식상하면서도 가장 직접적이죠. 저도 당연히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여러 번 답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K씨말대로 진짜 저 질문들을 10번 아니 3번만 반복하면 답이 딱 떠오르기는커녕 졸음이 오던데요. 그래서 저는 자기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상상이상으로 훨씬 더 많은 시간과 간접적인, 정성스러운, 구체적인, 역동적인, 열정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K : 그럼 그 간접적이고 정성스럽고 열정적이고 또... 아무튼 그런 자기를 알아가기 위한 공들인 노력중 하나가 상상하기라는 건데, 이제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해주세요. 사막의 별과 같은 것들이 S씨 본인과는 진짜 어떤 관련이 있는지.     

S : 어떤 커-어다란 의미는 없어요. 누구나 까만 천정을 보면서 사막의 밤하늘을 상상할 수 있고, 이런 상상을 이어나간다고 해서 눈에 확연히 보이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단지 이 상상을 한 그날 밤은 기분이 정말 상쾌했어요. 사막의 별을 보면서 그것이 죽은 자의 영혼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어떤 ‘초월적인 힘’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 만족스러웠어요.      

K : 초월적인 힘이라... 그게 어떤 거죠?     

S : 엄청난 힘이죠. 상상을 통해 얻어낸 이 이야기는 앞으로 제가 밤하늘을 볼 때마다 생각날 수 있고, 운이 좋아 사막에 가게 된다면 더 생생하게 떠오르겠죠. 그럴 때마다 저는 행복할거에요. 한 번에 이해 못 하시는 게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이런 ‘상상하기’에 대해서는 남들에게 말해본적도 없고, 특히 이 사막에 관한 이야기는 언어화해본적인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초면에 너무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늘어놓은 건지 모르겠네요.     

K : 저도 이런 부류의 얘기는 처음 들어보는데요. 친구의 연애사, 가정사 같은 것만 속 깊은 얘기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나름 깊은 대화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면 이제 이 생활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 계획이세요? 그러니까 자신을 잘 알게 되었다고 느끼게 될 즈음에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S : 음... 솔직히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거든요. 아무것도 아닌 생활을 하면서 하고 싶은 게 많다는 게 아이러니 한데, 생각하고 싶은 거리들이 아직 많거든요. 요즘에는...2500년에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 같은 생각을 해요.      

K : 2500년이요? 왜 하필 그때죠?     

S : 고려며 조선은 500년정도 되는 단위로 건국되고 멸망했어요. 그렇다면 2500년 정도에는  우리나가 멸망할지도 모르겠어요. 또, 한 나라가 300년이 넘어가면 꼭 삼정의 문란 같이 심한 부패가 일어나고 농민 봉기가 일어나고 하는데, 2500년에는 그런 것에 대응시킬 만한 현상들이 일어날까요? 역사를 거시적으로 볼 때 지금은 대한민국의 초기지만, 벌써 많은 부패사건들이 일어났잖아요. 좀 더 시간이 흐른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같은 것들을 생각해보곤 해요. 시간이 흘러도 사람 사는 건 비슷하니까요.     

K : 듣고 보니 궁금하네요. S씨 이야기를 들으면 예측 할 수 없는 방향과 크기로 구멍이 여러 군데 뚫리는 기분이에요. 재밌네요. 그러면...     


S는 처음보다 좀 더 편안한 자세로 자신의 이야기를 조리 있게 풀어나갔다. 그의 말대로 S의 이야기는 듣는 사람을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다. S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생각이 많아졌다. S를 따라 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다가 그들의 대화 몇 토막을 놓쳐버렸고, 그 다음에는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려 들어왔다. 


S : 저도 초면에 만난 사람에게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렇게 자세하게 말해본 적은 처음이라 떨리기도 하고 재밌었어요. 요 몇 주는 사람을 아예 만나지 않아, 오늘 이렇게 많이 말한 것이 버겁게 느껴지기까지 하네요.     

K : 오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책을 좀 읽고 일어날게요. 안녕히 가세요.     

S : 네, 저도 즐거웠습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다시 그들의 대화를 의식했을 때는 이미 서로 작별 인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S가 가고, 그는 작은 공책을 꺼내 무언가를 끼적였다. 이후 1시간 동안은 책을 읽고 메모하기를 반복했다. 카페마감 한 시간 전쯤 되었을 때 카페에는 그만 남았다. 그가 책을 넘기는 소리가 카페 배경 음악의 일부처럼 들렸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아니 그보다도 그와 S의 대화를 듣고 나서부터는 이미 그와 친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S처럼 그에게 내 얘기를 하고 싶었다.  

    

“저기, 저는 이 카페 알바생인데, 잠깐 얘기드릴 게 있어서요. 앉아도 될까요?”     

K :(살짝 당황한 듯 눈이 커지며) 네? 네, 일단 앉으세요. 무슨 일이시죠? 벌써 카페 닫을 시간인가요?     “아니요, 사실 제가 아까 여기 앉으셨던 분과의 대화를 흥미롭게 들었는데요, 그 분을 인터뷰하시는 것 같던데, 그분이 유명한 분이신가요?”     

K : (웃으며) 아, 그거요, Frip이라는 어플에서 모집한 일종의 ‘강의’에요. 강의라고 하기 에는 부끄럽지만 모집할 때는 ‘심리상담’이라는 주제로 인터뷰할 사람을 모집했어요. 인터뷰라고 하셨는데, 이 어플에 사람들을 모집할 때도 제가 그 단어를 썼거든요. 흥미롭게 들으셨다니, 기분이 좋네요. 직접 보여드릴게요, 잠시 만요.     

잠시 후, 그는 어플을 통해 자기 강의의 소개 글을 보여줬다.     

K : 사실 심리 상담이라고 했지만, 그건 명목상 붙인 이름이구요, 전 그냥 다른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이걸 시작했어요.     

“정말 인터뷰네요, 신기해요. 이런 게 있다니. 그러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따로 글을 쓴다든가 다른 작업을 하시는 건가요? 혹시 이런 것과 관련된 일을 하세요? 작가이시거나 기자세요?”     

K : 아니요, 저는 작은 공장에서 납품 일을 하고 있어요. 제가 이 인터뷰를 시작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아까 인터뷰 하신 분이 여덟 번째쯤 일거에요. 서로 적당한 예의를 지키면서 너무 친하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듣고 나면 깨닫게 되는 것들이 많아요. 어떨 때는 그런 이야기를 나눈 것만으로도 가족이나 친구보다 더 가깝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그 사람의 이야기가 제 생각과 같든 다르든, 그게 맞든 틀리든 상관없이요. 쓰기 위해 듣는 건 아니지만 가끔씩 영감 받는 것이 있으면 글을 써두기도 해요. 

“인터뷰하는 취미에 대해서는 처음 들어봐요. 그럼 혹시...저도 인터뷰 대상이 될 수 있을까요? 꼭 나누고 싶은 고민이 있어서요.”     

K : 제가 감사하네요, 사실 이 강의에 관심 갖는 사람이 없어서 인터뷰 대상을 찾기가 쉽지 않거든요. 미리 얘기하고 싶은 건, 제가 명쾌한 답을 드리는 건 아니에요, 점쟁이처럼 예언을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애초에 저는 해결책을 드리지 않습니다. 오늘 들으셨다고 하니깐 이미 느끼셨겠지만, 저는 질문만을 하는 편이에요, 계속 듣다가 질문하는 게 제 역할입니다.     

“네, 제가 끌렸던 게 바로 그 질문이에요. 그러면 혹시 언제 시간 괜찮으세요?”     

K :(핸드폰 달력을 꺼내며) 이때 괜찮으세요? 장소는 여기로 할까요? 그냥 편한 마음으로 오시면 됩니다. 따로 이야기 거리를 생각해오시지 않아도 되고요, 아까 그 고민이라는 것도 간단한 말로 정리해오지 않아도 됩니다.      

“이날 여기서 뵐게요, 감사합니다. 좋은 기회를 만난 것 같네요.”   

  

S의 일상, 그의 취미 그리고 나의 다음 인터뷰. 신비로운 얘기를 듣고 신비로운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 다음 인터뷰에서 나는 사진에 대한 고민을 말하고 싶다. 하지만 정말 그것에 대해서 말하게 될지, 아니면 가족, 과거 유학생활, 전에 잠깐 다녔던 회사에 대해서 자세하게 털어놓게 될지 조차 알 수 없다. 누군가 처음부터 끝까지 내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기우려 준다면 나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 어디까지 전달할 수 있을까. 카페 문을 잠그고 깜깜해진 그의 자리를 보며 인터뷰하는 것과 사진 찍는 것을 연이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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