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형,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정용준, 민음사)
‘내가 말하고 있잖아’라는 제목에는 ‘그래, 듣고 있어.’라고 짜증 없이 대답하고 싶다. 정용준 작가의 이전 소설 「떠떠떠, 떠」의 연장선상에서 14살의 목소리를 담은, 이번 장편은 따뜻하다. 작가는 밝아진 작품의 분위기에 대해 “슬프기도 하면서 익살스럽게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예전 제 소설의 어둡고 거칠고, 분노가 가득 찬 면들을 좋아했던 독자들은 작가가 나이 들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텐데,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힘을 얻게 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1) 라고 말한 바 있다. 해피엔딩을 갖고 싶었던 작가는 일부로 14살 소년을 앞에 세웠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작가의 『가나』를 좋아하는 나는 자꾸만 『내가 말하고 있잖아』의 어른 버전을 생각하게 된다. 가령 언어 교정원의 원장님 입장에서, 주인공의 엄마 입장에서 상상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해피엔딩이었을까? 우리 엄마를 비롯한 주변에 가까운 어른들은 “네 나이 때는 그럴(뭣 모르고 천진난만) 수 있어”하며 슬픈 눈을 자주 하시는데.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윤이형)
올해 초 이상 문학상의 저작권 관련 조항에서 부당함이 알려지면서, 윤이형 작가는 2019년 이상 문학상을 반납하는 한편 절필을 선언했다. 그의 절필이 계기가 되어, 이상 문학상을 비롯해 작가에 대한 출판업계의 착취 사례를 찾아보게 되었고, 이상 문학상을 받았던 그의 작품도 읽어보게 되었다.
"희은은 기차가 달려가는 방향의 반대방향으로 앉아 있었지만 그랬기 때문에 정민과 마주보고 있을 수 있었다. 순방향 역방향 그런 것이 문제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 문장은 결혼은 한 쪽을 보고 같은 방향으로 가는 거라는 환상 혹은 가야 하는 거라는 제도적 압박을 단번에 풀어낸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기차의 다른 칸으로 옮겨 가는 것이거나 아예 다른 기차를 타는 것과 비유될 만한 이혼을 선택한 이후의, 희은을 면밀히 조명한다. 희은과 정민의 말들에서, 엄마 아빠의 결혼생활을 보며 두려웠던 것들을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다. 내가 읽었던 작품 중 가장 ‘설득력 있는’ 여성 서사였다고 생각한다.
1) 선명수, ‘장편 ‘내가 말하고 있잖아’ 낸 소설가 정용준 “말할 용기 품은 소년에게…더듬어도 괜찮아’, 경향신문, 2020년 7월 20일자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7201734001&code=960205#csidx7b77d627788ca2e9dd6b879279886a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