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스타일
예전에는 ‘완전 내 스타일이야’라는 식으로 ‘스타일’이라는 말을 많이 썼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취향’이나 ‘성향’은 어쩐지 좀 거창한 느낌이 들어서, 책을 보는(look) 내 ‘스타일’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나는 책을 세워 놓는 것보다 눕혀 놓는 게 좋다. 그래야 표지를 더 잘 볼 수 있으니까. 또 제목이 겉면에 있는 것보다 내용의 일부처럼 책 안쪽에 작게 쓰여 있는 게 좋다. 책의 뒷면에는 유명인의 추천사나 감상평보다는 책을 쓴 작가가 가장 고민했거나 힘을 실은 짧은 구절이 실려 있으면 좋다. 그리고 띠지가 있는 것보다는 출판사의 감각적인 로고가 박혀있는 책이 좋다.
2. 다독과 완독에 대한 환상
세상에 이 많은 책들을 정성스럽게 완독, 다독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의미가 없다. 일단 책 보다 재미있는 것이 너무도 많다. 특히 영상은 책 보다 너무도 재미있고, 시간이 잘 간다. 또 읽는 속도가 신간이 나오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스타일에 맞지 않는 책이나 허술한 책들이 은근히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고플 때가 있다. 이를 테면 어느 날 갑자기 예전에 들었던 주파수를 틀었는데 여전히 같은 디제이가 목소리를 내고 있을 때 약간의 감동을 있는 것처럼, 책도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이 작가 책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지금도 비슷한 이야기를 쓰고 있으려나.” 하면서 한 번쯤 들어봤던 작가의 신간을 펼쳐 들고, 그 책에서 영감을 받아 또 다른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내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속도로 읽으면 그만이다.
3. 골라잡아, 골라잡아書
예전에는 시장에서 ‘골라잡아, 골라잡아’라는 말도 많이 썼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문자 그대로만 들여다보면 고르고 잡는 행위를 의미하니까, 도서관의 많은 책들 사이로 서가 분류번호를 따라 원하는 책을 찾아 대출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래서 “골라잡아서(書)”는 내 스타일대로 골라잡은 책들을 묶어 설명하는 곳이다.
책을 읽고 기록해두는 것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많은 방법을 떠올려보았다. 책을 읽고 좋았던 구절을 공책이나 핸드폰에 적어둔다든가,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그어본다든가, 마음에 드는 페이지 모퉁이를 접어둔다든가…. 일단 첫 번째 방법은 시간이 많이 걸려 지속적으로 실천하기 어려웠고, 나머지 방법들은 다시 보는 일이 없어 기록의 의미가 없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 구절을 그대로 적어두는 일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중요한 건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은근한 질투가 나기까지 하는- 작가들의 천재적인 문장을 읽고 ‘내가 무엇을 떠올렸는지’ 니까.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서 “재밋다ㅋㅋㅋ 읽기의 어려움을 표하는 것도 충분히 독후감!”이라고 쓰인 포스트잇을 발견했다. 노란색 포스트잇이었고, 정갈하지 않은 글씨였다. “그래!!! 이렇게 짧게 휘갈겨 쓴 기록도 충분히 독후감!”이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이 방법을 바탕으로 이곳에 책에 대한 다소 무성의한 기록들을 남겨두기로 했다.
요즘 여러 가지 이유로 혼자 읽고 생각하는 시간이 없어졌는데, 일단 이 첫 장은 꾸역꾸역 그런 시간들을 만들어내려는 힘에 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