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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경 Sep 07. 2019

노인과 노을【단편】

노을을 사랑한 노인의 이야기

노인과 노을     


설날을 맞이해서 마을에 몇 개 되지 않는 집들이 모두 소란스럽다. 명절이라고 도시에서 이 먼 곳까지 달려온 아들이 기특해서 엄마는 아들을 오래 쳐다본다. 아들은 그런 엄마와 눈을 맞추지 않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여기 그 흔한 거미줄도 없어? 이래서 난 시골이 싫다니까”

“시골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마을에 아주 놀라운 사람이 있어서 그래. 얼마 전부터 이 마을의 거미줄이란 거미줄은 모두 그 사람이 가져가버렸어. 우리는 그 사람에게 우리가 가진 거미줄을 모두 내주었지. 마을 사람들 모두 그에게 호의적이었어. 그는 그것을 정말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거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거미줄이 나올 때까지 또 기다려야 하잖아.”     


그 후로도 아들은 계속해서 거미장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엄마가 차린 맛있는 밥을 먹고서야 잠이 들었다.     

그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노인 혼자 살고 있었다. 노인은 예술에 빠져있었고 노을에 빠져있었다. 사실 그는 이성을 잃어버린 듯했다. 그의 눈은 항상 뭔가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다만 그건 증오나 찬양 따위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고민에 빠져있는 얼굴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엄마와 「쪽빛을 찾아서」라는 동화책을 읽은 것을 기억했다. 그에게 ‘어렸을 때’라는 단어는 너무나 오랜 시간을 의미했지만, 이제 그에게 ‘어렸을 때’라고 해봐야 몇 개 장면들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예전의 일들을 차례로 떠올리는 것이 더 이상 슬프지는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그 동화책의 다음 구절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물장이는 푸른 하늘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높은 산에 올라가 한없이 하늘을 바라보았어요.

저렇게 맑은 푸른빛을 만들 수는 없을까......’  *1)     


심지어 그는 그 동화책 속에 파아란 가을 하늘과 갈붉은 산의 삽화까지 어렴풋이 떠올리고 있었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그는 그 동화책을 읽으면서, 노을이 파랗기 만한 하늘보다는 훨씬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노인은 어쩌면 그때부터 자신이 노을빛에 빠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회상했다. 아마 노을빛이 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다. 사전에도 ‘금노을’, ‘은노을’, ‘까치노을’, ‘꽃노을’, ‘불노을’, ‘밤노을’이라는 다소 유치하면서 복잡 미묘한 단어들로 그 빛깔을 얼버무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노인이 하려는 작업은 노을빛을 정의 내리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는 노을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머리가 아닌 몸 구석구석에 그것을 담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기도했다.      


몇 년 전 도시에서부터 거미줄이 상용화되었고 거미(장), 웹건(총알 대신 거미줄을 발사하는 총), 거미줄테이프 등의 신문물이 차례로 농촌으로 유입되었다. 한 대학 생물공학 연구팀이 거미줄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뼈를 서로 붙이는 실험에 성공하면서, 이 기술을 활용해 만든 다양한 생활용품들이 출시되었다. 실로 이 사건의 파장은 엄청났다. 이후부터 사람의 신체는 물론이고 옷, 신발, 가전제품이 찢어지거나 부러지면 거미줄이 해결해주었고 패러글라이딩, 번지점프, 널뛰기와 같은 레저스포츠에도 거미줄이 널리 활용되었다. 거미줄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200m당 15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웃들은 여분의 거미줄과 십여 마리의 거미를 노인에게 보태주었다. 물론 하늘까지 가려면 이보다 훨씬 많은 거미줄이 필요했지만, 더 많은 거미줄을 뽑아내는 건 시간문제였다.     


노인이 계획한 이 거대한 실험의 시작은 거미줄을 기다리는 일이었다. 그는 실험의 규모에 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별 것 없다고 생각했다. 거미장의 거미들이 뽑아내는 거미줄을 잘 모아두는 일을 몇 주 동안이나 이어갔다. 자연산 거미줄에 인도산 약품으로 가공을 하면 거미줄은 그전보다 더한 탄성을 갖으면서도 엉키지 않게 된다. 그는 실전에 앞서 간단한 실험을 해보기도 했다. 예를 들어 노을이 지는 때에 맞춰 웹건을 이용해 구름에 거미줄을 부착시키고 그 구름을 지상으로 끌어내리기를 반복했다. 일주일동안 그는 정확히 19번의 실험을 했고 처음 4번을 빼고 이후에는 모두 성공했다. 구름들의 색깔은 매번 달랐다. 핫핑크 구름, 빨간색 구름,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는 회색구름도 있었다. 그것들은 어느새 그의 방을 가득 매웠다. 방은 언뜻 보면 파티룸 같기도 했다. 그는 방 문 앞에 서서 각양각색의 구름들이 사방을 떠다니고 있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그것들이 참 발랄하다고 생각했다.     


노을을 그대로 느끼려면 구름보다는 더 깊숙이, 해 쪽으로 더 들어가야 했다. 노인은 해 쪽의 노을이 달걀 후라이의 노른자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부분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는 실전에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많은 논문을 읽어보기도 했는데, 그 중에 그에게 가장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놀랍게도 거미줄은 낮은 속도에서보다 빠른 속도에서 훨씬 강한 접착력을 갖는다따라서 거미줄은 날아다니는 곤충은 강하게 붙잡을 수 있지만곤충을 떼어내려고 할 때는 느린 움직임이 되어 접착력이 낮아지는 것이다. *2)     


그는 바람이 많이 부는 날 –가장 가벼운- 맨몸으로 노을을 향해 오르는 게 좋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50여일 뒤에 적당한 날이 찾아왔다. 햇볕, 온도, 바람, 미세먼지 농도 모든 게 노인이 상상했던 정도였다. 처음에 그는 「쪽빛을 찾아서」의 주인공처럼 마을 근처 가장 높은 동산에 올라갔다. 하지만 정작 그때 노인은 자신이 「쪽빛을 찾아서」의 주인공 같다고 미처 의식하지 못했다. 그는 동산의 꼭대기 중에서도 가장 높은 나무 위에서 참새처럼 발을 나뭇가지에 디딘 채로, 눈을 꼭 감고 몇 마디 중얼거린 후 자신이 계획한 모든 것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웹건을 이용해 낮게 깔린 구름으로 그가 가진 거미줄 중 가장 긴 것을 먼저 발사했다. 사실 그는 이때까지만 해도 완벽한 맨몸은 아니었다. 몸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지만 그전까지 실험을 통해 모았던 구름더미들을 담은 큰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노인은 연습 삼아 모아왔던 구름 더미들을 활용해 하늘에 ‘구름 계단’을 만들 계획이었다. 비닐봉지는 구름이 머금은 수분 때문에 약간의 무게감이 있었다. 노인은 점차 그것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봉지 속 구름들에는 거미줄 칠에 되어있어 약간 끈적거렸다. 그는 한손에는 구름으로 연결시킨 거미줄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비닐봉지를 열어 거미줄 칠을 한 구름을 하나씩 떼어 하늘에 띄웠다. 바람의 흐름을 보며 구름을 천천히 흘려보냈다. 이때 노인은 매우 신중했는데, 흡사 오랫동안 공들인 작품들을 전시하는 예술가 같았다. 열 개가 조금 넘는 구름들을 다 내보내고나니, 그가 앞으로 가야할 길들이 흐릿하게나마 보였다. 이때 그는 처음으로 약간의 자신감이 생겼다.  

   

바람이 조금 더 세진 점심 때 즈음, 그는 처음 연결했던 거미줄에 완전히 체중을 실었다. 처음 딛고자 했던 구름계단의 방향으로 바람이 불자 그는 공중에서 발을 구르며 속력을 높였다. 재빠른 속도로 그는 첫 번째 구름계단에 완벽히 정착했고 발은 그곳에 딱 붙어버렸다. 그리고 다음 구름계단으로 오를 기회를 엿보면서 그는 마치 거미줄에 붙잡힌, 거의 죽어가는 거미의 먹잇감처럼 엉금엉금 거미줄에서 발을 떼어냈다. 그는 다음으로 향할 구름계단에 웹건으로 거미줄을 연결시키고, 그것에 의지해 세고 빠르게 목표한 곳으로 뛰어올랐다. 이후에도 그는 열 번 조금 넘게, 웹건으로 다음 오를 구름계단에 거미줄을 쏘고, 빠르게 하늘을 날고, 힘없이 천천히 움직이는 세 가지 동작을 반복했다. 동작을 반복할수록 긴장감은 사라지고 짧은 반복에 대한 익숙함만이 남았다. 그가 마지막 구름에 올랐을 때, 그의 눈은 햇빛으로 가득했다. 그는 마지막 조금 남은-조금이지만 그의 몸을 기대기에는 충분했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거미줄의 탄성은 놀랍고 그는 아주 가벼운 맨몸이었기 때문이다-거미줄을 해와 가장 가까운 하늘 한편에 발사했다. 세상에서 노을과 가장 가까운 하늘 해먹에 누워 그는 해가 넘어가기를 기다렸다. 바람에 맞춰 거미줄 해먹이 살살 흔들렸다. 약간 멀미가 날 것 같았지만 이제 곧 노을을 볼 수 있으므로 그는 행복했다.    

  

하늘이 벚꽃색에서 진철쭉색으로, 텔레비전의 치지직거리는 화면과 같은 색에서 완전한 밤하늘이 될 때까지 그는 온몸으로 노을을 헤엄쳤다. 아니 그는 차라리 노을이 인생 의미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두팔로 해를 껴안을 수 있다는 듯이 지평선 저편으로 해와 함께 넘어갔다. 이제는 받칠 것 없이 가볍기 만한 거미줄 해먹은 밤공기를 따라 흔들렸고, 노인이 하늘에 남긴 무수한 거미줄들이 달빛에 반사되어 조금씩 반짝거렸다. 새해를 맞이해 달을 보며 소원을 빌던 마을사람들은 달도 별도 참 가깝게 뜬 아름다운 밤이라고 생각했다.      



                                                                                   

*1)유애로, 「쪽빛을 찾아서」, 솔거나라, 2005.

*2)한국창조과학회, ‘거미줄이 끈적거리는 비밀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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