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어 프리 (barrier free)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
[출처] 두산백과
고등학생 때 청소년 베리어프리 영화제에 간 적이 있다. 영화 속 배경음악은 청각장애인을 위해 음표와 함께 어떤 분위기의 노래인지에 대한 묘사가 자막으로 나온다. 각종 효과음들도 자막으로 서술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묘사도 내레이션으로 들린다. 처음에는 낯설었고 나중에는 기분이 묘했다. 영화관에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배제되어왔는가에 대해 깨달았다. 소리 해설 자막이 나오고 내레이션 설명이 들릴수록 그동안 내가 무신경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던 누군가의 불편이 하나씩 수면 위로 떠오른 것 같았다.
장애와 관련된 글을 쓰면서 계속해서 나의 무지를 마주하게 된다. 더 많이 배우기 위해 관련 기사와 글을 읽고 영상을 찾아보기가 무서웠다. 새로운 걸 알게 될수록 과거의 무지한 내가 보여 부끄럽기 때문이다. '내가 그때 불쾌할 수도 있는 언행을 한 것일까?'라는 생각에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계속 써야 함을 느낀다. 계속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인식의 지평을 넓혀갈 것이다.
내가 직접 겪은 일에 대해서는 비교적 덜 망설이면서 글을 쓸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당사자로서 느낀 감정과 생각을 적으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는 조심스러워진다. 내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고 혹시나 내가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 섣불리 적었다가 또다시 누군가가 불쾌함을 느끼게 될까 봐 걱정이다. 그렇지만 두렵다고 피해 다니면 계속 무지한 상태로 살면서 더 많은 실수를 할 것 같았다. 계속해서 배우고 몰랐던 부분을 채워가고 잘못 알고 있었던 부분들을 꾸준히 고쳐나갈 것이다.
장벽이 허물어지기를 바라며
휠체어를 탄 사람이 거리에 많이 보였으면 좋겠다. 예능에서 장애인에게 일상인 일들을 웃음으로 소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능에서 장애인 비하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어를 구사하는 농인들을 청인들이 '아름답고 애틋하게'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대화를 하는 것뿐이다. 청인이 소리를 내어 말을 할 때 누군가 옆에서 아련한 눈빛으로 쳐다보면 기분이 이상하다 못해 불쾌하지 않겠나. 티브이에서 수어 해설 화면이 더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모든 지하철역 1역 1동선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이것들 이외에도 허물어져야 할 많은 장벽들이 있을 것이고 앞으로 내가 더 많이 알아가야 한다. 시설, 문화 분야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안에서도 언어와 행동을 고쳐나가며 배리어 프리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배제하는 언어를 쓰지 않는 것부터 한걸음을 떼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