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의 독서
한 줄 소감 :
몸과 말을 삼가며 심신과 영혼을 돌보는 우리나라 선비들의 라이프스킬
아내를 포함하여 주변인들이 내게 한 번씩 얘기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내 모습이 선비와도 같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나 자신이 선비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세상 물정에 어둡고 생활력이 부족한 샌님으로서도 그렇고, 책과 글을 좋아하고 공부하는 것을 즐기는 자로서도 그러하며, 평소 성격이 차분하고 조용하기도 함에 또 그러하다. 이왕 선비 흉내를 낼 바엔 제대로 내보자 싶어 동네 도서관에서 선비와 관련된 책이 뭐가 있나 찾아보다가 집어든 책이 이 책이다.
이 책은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가 옛 서적들을 읽다가 흥미로운 대목을 만났을 때 써 둔 글들을 모아 엮어낸 것이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선비들 - 강세황, 성호 이익, 유득공, 박제가, 박지원, 이퇴계, 이율곡 등의 모습과 더불어, 비교적 덜 알려진 다양한 선비들의 각종 모습들 및 그들이 남긴 작품들을 이 책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자찬묘지명(스스로 쓰는 묘비명)을 남기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던 강세황과 정약용, 13년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쓴 일기 <흠영>을 남긴 조선 영조 때의 선비 유만주, 기묘사화로 조정에서 쫓겨난 뒤 청복의 삶을 마음껏 누리며 팔여八餘라는 아호를 쓰던 김정국, 각종 서화와 골동품을 수집하기 위해서라면 입고 있던 옷도 그 자리에서 팔았던 김광수, 모은 책이 만권이 넘어 충북 진천에 사설 도서관 만권루를 설립한 이하곤, 벼루에 대한 사랑과 집착이 강하여 사촌의 일본산 벼루를 빼앗기도 한 유득공 등,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 선비들의 흥미로운 모습 이모저모를 상세한 설명과 함께 읽어볼 수 있었다. 역사 교과서에서 나왔던 무미건조한 텍스트가 아닌, 각자의 방식대로 선비로서의 삶을 살아낸 옛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은 아주 흥미롭다.
선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책의 큰 챕터들을 모아보면 한눈에 볼 수 있다. 선비란 무릇 스스로의 내면을 돌보며 과도한 욕심을 삼가고 경계한다. 선비는 지식과 예술을 사랑하며 자연을 벗 삼아 지낸다. 선비는 붓과 종이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남긴다. 그리고 선비는 항상 자만심을 물리치며 겸손한 자세로 꾸준히 공부한다. 실로 현대인에게 꽤나 귀감이 될 만한, 대단히 우수한 라이프스킬이 아닌가? 바쁜 일상과 복잡다단한 현실로 마음을 돌보지 못하고, 끝없는 욕심에 만족할 줄을 모르고, 문화적 소양은 메말라가기만 하는 현대인에게 있어 옛 선비들의 면면들은 콤콤한 책 냄새와 그윽한 꽃 향기 가득한 정취 그 자체만으로 위로와 대안이 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소개된 다양한 선비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조선 후기의 예술가 조희룡이다. 안동 김 씨 일가의 횡포로 억울하게 유배 생활을 했던 조희룡은 유배지인 전남 신안 임자도에서 고됨과 슬픔 속에서 지내면서도 유쾌하고도 인간적이며 아름다운 정취로 가득한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그의 작품들 중 그가 친구들과 주고받으며 남긴 척독(주로 감정과 일상을 담은 짧은 형식의 편지) 한 편은 그의 모습을 아주 잘 보여준다. 그가 남긴 편지 한 통을 마지막으로 적어보며, 선배 선비들의 모습을 따라 나 또한 앞으로도 나만의 선비다움을 실천해 보자는 마음을 가져본다.
편지가 마침 도착하여 뜯어보고 한바탕 웃었습니다. 마음속에 그리던 사람이 이렇게 이르렀으니 무엇으로 보답할까요? 창 모서리에 뜬 봄별을 오이처럼 따다가 답장편지 속에 넣어 바로 보내고 싶습니다.
편지를 통해 노형께서 새해를 맞아 기쁜 일이 많아졌음을 알고 위안을 받았습니다. 노형의 불우함을 생각하면 언제나 한숨이 터져 나올 것만 같습니다. 허나 진평처럼 아름다운 분이 끝까지 곤궁하게 살 리 있을까요?
객지의 제 형편은 달리 말씀드릴 게 없군요. 쓸데없이 크기만 한 칠척 몸뚱어리가 달팽이 껍질 같은 초가집 안에 웅크린 채 처박혀 있어 침침한 벽 기우뚱한 기둥이 제가 기지개를 펴면 삐걱삐걱 금세 무너질 것 같다는 점만 말씀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