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의 독서
한 줄 소감 :
공맹노장이 적절히 조화된, 베개맡에 두고서 매일밤 읽을 현대인의 성경책
채근담이야 워낙 유명한 책이라, 이제야 읽은 것이 민망하기만 하다. 고전인 만큼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번역 및 편집 방식을 통해 채근담을 펴내고 있는데, 나는 부모님 댁 책장 왼쪽 하단 구석에 박혀있는 1986년판 버전을 발견해서 읽었다(오래된 책인 만큼, 책값이 1,000원이라고 적혀 있는 게 소소한 재미라면 재미다). 그리고 원래 채근담은 전집 225장과 후집 134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전집은 사회 속 생활신조, 후집은 자연 속 안빈낙도를 다루고 있는데, 이 책은 전집만을 다루고 있어 아쉽긴 하다(그래서 후집까지 다루고 있는 채근담을 손에 넣고자 서점을 돌아다니며 최근 나온 채근담을 이래저래 찾아봤는데, 예상치 못하게도 내가 읽은 1986년도 버전만큼 마음에 드는 것을 찾지 못했다. 내가 읽은 이 책은 원문 해석 + 원문 및 한자음 + 주요 한자 및 단어의 뜻 + 옮긴이의 해설까지 보기 좋게 깔끔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내용이 알차고 읽기도 편하다. 그리고 책 자체가 페이퍼백처럼 작고 가벼워서 항시 들고 다니기에도 좋다).
채근담은 중국 명나라 시절의 이름 없는 선비 홍자성이 지은 수상집이다. 채근담이라는 말을 직역하면 ‘나물 뿌리 이야기’인데, 송나라 학자 왕신민이라는 사람이 했던 말인 ‘사람이 언제나 나물 뿌리를 씹고 살 수 있다면 모든 일을 이룰 수 있다’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쓰디쓴 나물 뿌리를 씹으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욕망을 절제하는 삶의 태도를 지향하는 가치관이 담긴 책이라 할 수 있겠다. 타인과 함께 하는 사회 속에서 개인은 어떠한 태도로 현명하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 수백 개가 담겨 있다.
채근담을 읽으며 느낀 특유의 질감이 있는데, 바로 동양 철학의 이모저모를 적절히 끌어와 참으로 절묘하게도 종합해 내었다는 것이다. 유교사상의 꼿꼿함과 청렴함을 가져오되 답답함과 경직성은 덜어내었고, 도가사상의 자유분방과 안빈낙도를 가져오되 세속에서의 명예와 이익을 완전히 배격하지는 않았다. 동양철학의 큰 줄기들이 한 데 통하는 지점들을 찾아 교차로를 뚫어놓은 셈인데, 책 내용을 따라 그 교차로를 지날 때마다 지혜로운 처세술과 현명한 인생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만약 공맹노장이 상호 합의 하에 공저한 작품이 있다면 아마 채근담과 그 내용이 아주 비슷했겠지 싶다.
나는 요즘 이 책을 가방에 항시 넣어놓고, 출근길 지하철에서 꺼내 20구절 정도씩 읽고 있다. 종교가 없는 나에게 이 책은 복음으로 가득한 성경책과도 같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 하나를 적어본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 구절이야말로 채근담에 담긴 철학 전반을 나타내준다.
<13장>
徑路窄處(경로착처)엔 留一步(유일보)하여 與人行(여인행)하고,
滋味濃的(자미농적)은 減三分(감삼분)하여 讓人嗜(양인기)하라.
此是涉世(차시섭세)의 一極安樂法(일극안락법)이니라.
해석 : 작은 길, 좁은 곳에서는 한 걸음 물러서서 남이 먼저 지나가게 하고, 맛있는 음식은 10분의 3만 덜어 남에게 나눠주어라.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안락한 방법 중 하나이다.
해설 : 좁은 길에서는 걸음을 멈추고 뒤에서 오는 사람이 먼저 지나가게 하고, 맛있는 음식은 혼자 먹지 말고 일부를 남에게 나눠 주어야 한다. 이런 마음이야말로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이다. 어려운 처지에서는 내가 먼저 양보하고, 이익을 상대방에게도 나눠 주는 것이 험한 세상을 옳게 사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