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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독후감

2025년 11월의 독서

by 야간선비
한 줄 소감 :
책과 서점과 도서관을 좋아한다면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우치다 다쓰루 지음, 박동섭 옮김, 유유, 2024


이 책으로 올해 우치다 다쓰루 선생의 책을 4권째 읽었다. 읽을 때마다 신선한 관점과 지적 충만함을 선사하는 우치다 선생의 책들은 펼칠 때부터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책에 대해 다룬 책이다. 우치다 선생이 도서관•책•출판에 관한 주제로 여기저기 기고했거나 강연했던 내용들을 한 데 엮어 만든 것인데, 같거나 비슷한 주제로 이미 완성된 여러 글들을 엮어내다 보니 중언부언하는 부분이 여럿 있지만, 내용 자체가 워낙 좋다 보니 여러 번 읽으며 되새긴다는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도서관에 대한 저자의 철학은 명확하고 확고하다. 도서관 이용객의 숫자가 늘어야 한다거나, 대출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책은 폐기해야 한다는 식의 신자유주의적 운영체제를 도서관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도서관은 일반 상업 점포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나의 무지를 가시화하는 공간이다. 내가 암만 책을 열심히 읽어도, 일평생 책을 끼고 살아도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책의 99.9%조차도 다 읽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것이라는 지엄한 사실이 도서관에 끝없이 진열되어 있는 책들을 통해 드러난다. 인간의 앎이 무진하게 쌓여온 이 무한한 공간에서 내가 실제로 더듬을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이 우글거려서 후끈한 열기로 가득 찬 도서관을 사람들이 좋아할 리는 없다. 고요하고 적막한 도서관에 울려 퍼지는 나의 발자국 소리, 사방팔방으로 무한히 펼쳐진 책들, 그 사이를 배회하며 나를 부르는 운명의 책을 찾아 서고 이곳저곳을 거니는 그 순간... 저자는 도서관을 종교시설이라고 설명한다(종교시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내가 왜 도서관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도서관에 가면 왜 심적으로 고요하고 평온해지는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무교로서 살아가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집 앞 횡단보도 건너에 있는 동네 도서관이 나의 예배당이므로).


책에 대한 저자의 설명도 흥미롭다. 책, 무엇보다도 종이책은 지금 여기 있는 우리를 다른 시공간으로 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창문이다. 저자는 책이 없는 집에 방문했을 때 엄청난 답답함을 느낀다는데, 책이 없는 공간은 창문이 없어 바람이 통하지 않는 갇힌 과과 다름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매우 와닿았다. 그리고 책장에 대한 설명 또한 재미있다. 책을 책장에 진열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자아상을 전시하는 것과 같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내가 읽은 책만을 꽂아놓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읽고 싶은 책, 사놨지만 읽지 않을 것 같은 책, 남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책 등등 나의 맘속을 이루는 지적 욕망들이 얽혀있는 곳이 바로 책장인 것이다. 당장 읽지는 않을 책들이지만, 그 무수히 나열된 책등으로부터 '언젠가는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나를 향해 쏟아진다. 아직도 읽고 공부해야 할 것이 산더미라는 사실에 스스로 겸손해지고, 언젠가 이 책들을 모두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 스스로를 규정함으로써 그 사람은 미지의 앎이라는 곳에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이런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을 골라 읽는 것은 불가능하며, 어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래, 이런 책을 읽고 싶었던 거야!'라는 사후적 감상만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독자의 수요를 미리 예측해서 집필되는 책이란 있을 수 없으며, 그렇게 쓰인 책이 있다 한들 그것은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독자의 수요라는 것은 책이 쓰이기 전에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 쓰인 후에 창조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우치다 선생의 설명에 무릎을 치게 된다. 한 명의 작가가 진정으로 가슴 깊이 하고 싶은 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서라도 꼭 들어줬으면 하는 말이 책으로 쓰이는 것이고, 이를 읽은 독자는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며 '그래, 이런 책을 읽고 싶었던 거야!'라는 탄성을 조용히 내뱉게 된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이 바로 이것이다. 그래, 이런 책을 읽고 싶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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