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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의 꿈』 독후감

2025년 11월의 독서

by 야간선비
한 줄 소감 :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삶을 조명할 때 비로소 드러나는 것들


『기차의 꿈』, 대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문학동네, 2020


이번엔 무슨 책을 읽어볼까 고민을 거듭해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을 때, 나는 스마트폰의 문자메시지함을 들어가 보곤 한다. 각종 서점에서 시시때때로 보내는, 그래서 알람을 꺼버리고 읽지 않은 채 쌓아 둔 광고문자를 뒤적거리는 것이다. 문자들을 훑다 보면 요즘 인기가 많은 책이라든지 새로 나온 작품이라든지 등을 알 수 있게 된다. 개중에 구미가 당기는 책이 있으면 (서점에겐 미안하지만) 서점에서 구입하는 게 아니라 일단 도서관에 그 책이 있는지 찾아본다. 신간이 아닌 이상 어지간하면 도서관에 책이 있기 때문에, 사기 전에 일단 빌려보고서 소장 여부를 결정한다. 읽고 싶은 책이 있다고 그 자리에서 구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용돈을 아껴 써야 하는 애아빠이기 때문에…


기차의 꿈이라는 이 작품, 그리고 이 작품을 쓴 대니스 존슨 또한 위 내용처럼 광고문자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책을 빌렸더니 꽤나 얇다. 그리고 책 내용도 그렇고 원제목이 train dreams인걸 보니, 기차의 꿈이라기보다는 ‘기차 꿈’이 보다 맞는 번역이겠다 싶(은데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 작품은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중반까지 미국에서 살았던 로버트 그레이니어라는 주인공의 삶을 압축적으로 그려놓았다. 주인공은 벌목꾼, 철도노동자, 마차 짐꾼 등 변변치 않은 직업으로 미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일한다. 모종의 사건들로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잃어가는 주인공의 인생을 작가는 담담한 필체와 압축된 전개로 보여준다.


이 작품은 소재가 탁월하거나, 문장이 수려한 류의 작품은 아니다. 설정된 주인공 및 주인공의 삶도 사실 별 볼 일 없다. 셀 수 없이 많은 미국인 중 한 명으로서, 셀 수 없이 많은 일용직 노동자 중의 한 명으로서, 인생에 있어 그 어떤 것도 남기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다가 불우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삶이 곧 우리들의 삶 아니겠는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나의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인생, 대단한 업적을 쌓는 것도 아닌 하루하루, 이따금씩 삶을 할퀴고 지나가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 무관심과 무가치의 어둠에 묻혀있는, 너무 어두워서 그 인생의 주인조차도 자신의 생애가 어떠했으며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알아볼 수 없는 초라하고 비루한 인생일지라도, 가만히 빛을 비추면 비로소 그 나름의 입체감과 굴곡짐, 양감과 질감이 보이게 된다. 작가는 주인공의 황량한 인생에 억지로 분칠을 하거나 의미부여를 위한 일장연설을 늘어놓지 않는다. 장황함과는 정반대에 있는 짧고 간결한 분량, 수사와 논설을 배제한 건조하고 깔끔한 문체를 이용하여 주인공의 인생을 향해 조명빛을 한 줄기 쏘았을 뿐이다. 화려한 사이키 조명이나 눈부신 태양빛이 아닌, 일직선으로 뻗는 작고 하얀 무대조명.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설득하는 게 아닌, 그저 빛 한 줄기에 들어오는 부분만을 가만히 보여주는 것. 그 단순하고도 미니멀한 조명빛으로 주인공의 삶을 조명해내는 이 구성이야말로 이 소설의 백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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