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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주독야독

『7년의 밤』 독후감

2025년 3월의 독서

by 야간선비
한 줄 소감 :
잘 준비된 무대, 섬세한 연출, 저돌적인 각본


『7년의 밤』, 정유정 지음, 은행나무, 2011


정말 재미있다. 거의 6시간을 내리 앉아 읽었다.


간만에 읽기의 즐거움을 순수하게 만끽한 책이다. 빨리 다음 내용을 읽고 싶어서 내 눈이 문장을 훑어내려가는 속력이 너무 빨라진 나머지 글자 하나하나를 제대로 읽지 못할 때가 많았을 만큼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줄거리는 대강 이러하다. 아들을 둔 아버지1이 있는데, 가장으로서 무능하고 심각한 알콜중독이다. 그리고 딸을 둔 아버지2가 있는데, 지역 유지에 변태 싸이코패스다. 각기 다른 의미로 답이 없는 이 남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한 데 얽히면서 모종의 일이 벌어지고, 7년 동안 양 일가족이 서로 쫓고 쫓기면서 사건의 전말이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다.


작가가 배경 설정 및 소재 조사에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마을과 호수는 지도를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되고, 등장인물들이 가진 직업과 특기로 제시되는 것들(잠수, 야구 등)에 대해서는 깊은 수준의 용어 사용과 상황 설명이 동원된다.


정유정 작가의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유의 문체가 돋보인다거나 기가 막힌 문장 내지 수사를 구사하는 류의 작품은 아닌 듯하다. 그래서 오히려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한다. 작가로서의 자의식 과잉이 작품에서 검출되지 않으며, 한국 문학에서 흔히 묻어 나오는 뻔한 서정성과 소화하기 벅찬 특유의 감수성과도 거리가 멀다. 이 작품은 이야기 자체의 구동과 등장인물 간의 운동역학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서사 진행이 대단히 역동적인데, 한마디로 엔지니어링이 끝내주게 잘 되어있다. 시동을 걸고 가속페달을 밟으면 어느새 책 마지막장에 다다를 만큼 거침없다.


출간 연도가 2011년인데 왜 이제야 읽게 되었을까!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다. 인생은 짧고 읽을 책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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