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Pivot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수백 번의 지원 끝에 얻어냈던 디자이너 리모트 잡을 그만두고 나는 다시 백수가 되었다.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근처 잡센터를 방문해 상담을 받았다. 유럽 경기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독일에서 몇 년간 쌓아온 디자이너 경력이 있는 만큼 이번엔 첫 구직 때보다는 수월할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내가 쌓아온 프로젝트들을 발전시켜 포트폴리오를 다듬고, 개인 웹사이트를 다시 개설했으며, 그간의 경험과 성과를 요약한 CV도 완성했다. 모든 준비가 끝났고, 이제 남은 건 단지 지난번처럼 기계적으로 반복해서 지원서를 제출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지원서를 넣은 회사들은 꽤 많았지만, 되돌아오는 건 대부분 자동화된 거절 메일이었다. 처음 독일에서 구직하던 때에도 이지경까진 아니었는데,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드물게 몇 군데서 인터뷰 제안이 들어왔지만, 결과는 모두 1차 불합격이었다. 몇 년 전과 비교해서 도데체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혼란스러웠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또 몇 달이 지나도, 여전히 기대했던 일자리 소식은 없었다. 매일 반복되는 거절 메일에 차츰 자신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꾸준히 쌓아온 경력이 이번에는 아무런 효과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포트폴리오와 CV를 다시 검토하고, 새로운 형식을 도입해보기도 했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문득, 내가 가진 실력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품게 되기도 했다.
시간이 더 흘러 몇 개월 뒤, 비로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불경기가 유럽 전역을 덮쳤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레이오프를 여러 차례 진행하고, 신규 채용을 오픈 하지 않으며, 내부 이벤트도 모두 취소했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물론 이런 불경기에도 이직에 성공하고 계약을 따는, 스타 디자이너들은 당연히 있다. 하지만, 나는 경기에 강하게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외노자이기에 이 상황은 비단 나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지원서와 반복된 불합격 통보 속에서 비로소 내가 마주한 현실이 얼마나 거대한가를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이 단지 나의 재능이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에, 나는 깊은 무력감을 느끼게 되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