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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길모 Jun 16. 2021

영어는 mymy안에 임시저장!

교정위에 흩어진 나의 청춘의 노래들

고등학교 진학 상담이 시작되었다.

부모님은 나의 학업에 관해 관심이 없으셨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도록 우리 집은 여전히 가난했다. 그런 집안 형편을 생각해서 상고 졸업 후 빨리 돈을 버는 것이 당연한 현실이었지만 진학 상담하러 간 아버지는 이런 생각을 못 하셨다. 우리 집 사정을 모르는 담임 선생님은 나의 성적만을 내세워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 대학 진학이라는 핑크빛 미래를 아버지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이 뭘 뜻하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대학이라는 바람이 잔뜩 든 채로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의 현실 감각은 아버지보다 낫긴 했지만, 학업에서만큼은 두 분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엄마는 아버지의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분 다 인문계가 뭔지 실업계가 뭔지 모르셨던 것 같다. 난 아버지가 몰고 온 대학의 바람에 올라타 인문계 고등학교, 부산여고에 입학했다.     


중학교 때 선생님들이 고등학교에 가면 중학교 등수에서 세 배쯤 떨어진다고 말씀하시더니 과연 첫 시험에서 중학교에선 상위권이던 나의 성적은 중간으로 훅 떨어졌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충격을 받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있고, 성적 향상을 향한 포기가 빠른 학생이 있다. 나는 후자에 가까웠다. 때마침 찾아온, 반갑지 않은 우울한 손님인 사춘기의 영향도 있었다. 내 안의 피는 방황했고, 깊은 상념에 빠지는 일이 많았으며, 책상에 앉아는 있었지만 책 속의 글자들은 읽는 순간 허공으로 제멋대로 사라졌다. 하지만 다행히 내 마음이 정착할 수 있던 곳은 ‘부산여고의 교정’과 ‘팝송’이었다.      


나는 부산여고가 좋았다. 물론 그 안에 있을 땐 알지 못했다. 벚나무들의 우아한 인사를 받으며 교문에서부터 위쪽 매점 건물까지 이어지는 소박한 오솔길, 각 학년 건물의 오른쪽에 있는 단풍나무 숲 사이로 새겨진 비밀의 오솔길, 점심시간이면 보라색 꽃이 포도송이처럼 상냥하게 핀 등나무 벤치 스피커에 울려 퍼지던 게으른 음악들, 오래된 책 냄새와 나무 책상 냄새가 어우러진 나른한 도서관, 지금도 가끔 꿈에 나오는 재잘대는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학년 동과 본관 동으로 이어지던 하얀 길목. 그땐 공부를 향한 열정인 줄 알았지만 나는 그저 학교가 좋아 일요일에도 학교에 갔고 시험이 끝나도 텅 빈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다 집에 가곤 했다.     


학교에서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고난도의 기술과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일단 머리카락을 앞으로 내려 귀에 꽂힌 마이마이 이어폰을 완벽히 가리고 친구에게 부탁해서 이어폰 두 줄을 목덜미에 고무줄로 묶어 고정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선생님께 들키지 않고 수업에 방해받지 않으며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좋아하던 가수 중 아카펠라 화음이 돋보이는 <보이즈 투맨>이 있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Motownphilly>, <It's so hard to say goodbye to Yesterday>, <Uhh Ahh> 등을 듣노라면 마음은 그 속에서 잔잔히 헤엄치고 놀았다. 오빠들의 목소리의 마법으로 그들이 그렇게 잘 생기게 보일 수가 없었다. 얼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한 사람. 글렌 메데이로스다. 데뷔곡 <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은 소년티가 나야 하는 나이임에도 인생의 온갖 맛을 아는 목소리와 얼굴로 세계적 히트를 친 곡이다. 그의 물기 머금은 감미로운 목소리와 설렘으로 가슴이 뻐근해지는 후렴 멜로디가 점심시간 교정에 울려 퍼지면 뼈와 살이 녹아서 그 자리에서 증발할 것 같았다.     


다른 과목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도 무조건 외워야 하는 게 죽을 맛이었고 앉아 있는 시간에 비해 성적은 형편없었지만, 영어만큼은 성적이 잘 나왔다. ‘성문 기본 영어’와 ‘맨투맨’이란 참고서를 교과서 외에 공부했는데 색상이 좀 더 화려한 맨투맨을 주로 봤다. 고등학교에선 ‘독해’라는 것을 해야 하는데 이것을 잘하기 위해선 문법도 알아야 하고 또 단어를 많이 알아야 했다. 설령 모르는 단어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 ‘모호함’을 이기고 문장을 읽어나가는 게 독해에선 꼭 필요했다. 그런데 나는 영어 단어를 별다른 노력 없이 잘 외웠고 영어로 된 긴 문장들이 싫지 않았다. 그러나 고등학교에선 한때 사랑에 빠졌던 영어와 온전한 재회를 하진 못했다. 대신 하루에도 쉴 새 없이 널뛰던 감정들 사이에서 나는 음악에 절박하게 매달렸고 부산여고 교정은 나를 따스히 품어주었다. 영어와 다시 만나기 위해선 내가 선택한 삶에 더 자신 없고, 20대의 막막함을 더 느껴야 했다.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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