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연길모 Aug 16. 2021

거지 같은 내 인생 1

그러나 그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거였어.


  건설회사 총무과에 근무했던 때 정말이지 그 회사를 벗어나고 싶었다. 머리로는 경력과 실력을 쌓는 것이 우선이고 이직은 미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매일 신문의 구인란을 보면서 이력서를 쓰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여자 직원이 새로 들어오면 회사에 대해 낱낱이 알려주면서 이 회사를 빨리 떠나라고 종용하는 오지랖이 넓은 여직원이 되어있었다. 그러던 중 경미라는 나와 나이가 같은 여직원이 들어왔다.      


예식장에서 경리 업무를 했던 경미는 난전에서 생선장사를 하시며 자신을 뒷바라지한 엄마를 위해 얼른 성공해서 효도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경미는 커피 타는 일에서부터 업무 처리, 어른들 대하는 태도까지 모든 면에서 나보다 언니 같았고, 아무 때나 웃어대는 푼수기가 새어 나올 때는 대책 없는 철부지 동생 같기도 했다.  

 

그런 경미가 입사와 함께 자주 통화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동창이었는데 그 친구의 삼촌이 서울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그 친구는 그곳에서 근무하게 되었다고 했다. 내심 경미도 그 회사에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 애와 통화를 할 때면 삼촌 회사에 대해 자랑을 꽤 하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한 반년 정도 지났을까 경미도 그 친구 삼촌 회사에 자리가 나서 가게 되었다. 나는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좋은 자리가 있으면 나도 불러라는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부탁을 하며 그녀를 보냈다. 경미는 다른 여직원들과는 다르게 정이 많이 들어서 더욱 그녀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그렇게 경미가 회사를 그만둔 지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경미가 회사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로 간 경미가 궁금했는데 한참만의 반가운 전화였다. 경미는 회사가 너무 좋다고 했다. 환경업체인데 보수도 좋고 복지도 잘 되어있어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그래서 내 자리도 눈치를 보며 물어보고 있다고 했다. 경미의 그 말에 내 가슴은 기대에 찬 바람으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전화 후 경미의 전화는 더 잦아졌다. 점점 더 희망적인 얘기를 해주었다. 그 회사 사장님 조카라는 경미의 친구에게 경미가 내 얘기를 잘한 모양이었다. 마침 직원이 나가는 바람에 당장 일할 사람이 필요했고 내가 영어를 할 줄 알아서 사장님은 더 마음에 들어 한다고 했다. 일단 이력서를 보냈고 사장님은 나를 서울에서 면접을 보고 싶어 한다고 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나는 엄마한테 이 사실을 알리고 1년 넘게 다닌 회사에도 사직 통보를 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건설회사를 그만두었다. 이직으로 향하는 길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서울로 향했다. 나는 이제 서울에서 사는 것이다. 설레고 두려운 마음으로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렸다. 그날은 경미가 회사 언니와 자취하고 있는 곳에서 지내기로 했다. 그런데 경미가 만나기로 한 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질 않았다. 그녀는 한 시간 정도 지나자 혼이 빠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같이 사는 언니의 아버지가 고향에서 오셔서 지금 자취방에서 난리를 피우고 있어 늦게 왔다고 했다. 그러니 오늘 밤은 여관에서 자고 내일 아침 면접을 보러 가자고 했다. 그때부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경미의 회사 언니 아버지 사건도 마음에 걸렸지만, 무엇보다 눈빛이 달라진 경미의 모습이 나를 불안케 했다. 맑디맑던 내 친구 경미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불안은 약한 기미만을 풍길 뿐 의식 수준으로 떠오르거나 입 밖으로 표현할 만큼의 무게는 지니지 않았다. 경미가 이끄는 대로 회사 근처로 갔다. 네온사인으로 속을 가린 술집들과 여관들이 화려하게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런 곳에 회사가 있다니 꺼림칙했다. 갑자기 밀려드는 불안감에 속이 메슥거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My name is Nikita!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