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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길모 Aug 17. 2021

거지 같은 내 인생 2

경미야 잘 살고 있지?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경미가 나를 깨웠다. 빨리 준비하고 면접 보러 가야 한다고 했다. 면접 장소는 놀랍게도 회사 앞 커피숍이었다. 커피숍은 2층에 있었는데 세 벽이 통유리로 되어있어 경미의 회사가 보였다. 8시 반 정도 된 시간에 왜 회사가 아닌 카페에서 면접을 보느냐고 내가 따지자 바로 그때 키가 작고 안경을 쓴 양복을 말끔히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경미는 팀장님이라고 그를 내게 소개하고 면접은 시작됐다. 내가 무슨 회사냐고 다짜고짜 물었다. 그는 당황한 듯했지만 침착한 척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의 얘기는 경미가 내게 한 말과 너무도 달랐다. 하나 같이 이해할 수 없는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내가 무슨 부서에서 근무하게 되냐고 물었지만, 그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회사에 대한 장황한 소리만 늘어놓았다.     


“경미야, 이거 다단계지?”였다.

내 한마디에 두 사람은 더 간절히 내게 이야기를 더 들어보라고 매달렸다. 나는 그들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이년아!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너는 생선 장사하는 엄마도 생각 안 하냐!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다단계지? 다단계 맞지? 아악~!”

친구에 대한 배신과 여물지 못한 내 판단력에 대한 분노로 커피숍이 떠나가라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를 질렀다. 팀장은 나의 모습에 얼어붙었다. 그러나 친구의 이성을 잃은 절규 앞에서도 경미는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길모야 아니야. 네가 잘 몰라서 그렇다. 우리 돈 많이 벌고 성공할 수 있다. 제발 진정하고 팀장님 말씀 더 들어봐. 응?”      


그렇다. 경미는 삼촌이 운영하는 회사에 다닌다는 친구한테 속아 다단계 회사에 완전히 빠졌고, 완전히 믿었으며, 완전한 확신으로 나를 돈 벌게 해주고 싶어서 부른 것이었다. 지난밤 경미와 같이 사는 언니 아버지도 다단계에 빠진 딸을 구하기 위해 난리를 피운 것이다.      


이제 어떻게 이들에게서 빠져나가느냐가 문제였다.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아줌마가 된 지금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할 수 있지만 20대 초반의 나는 다단계 회사 안도 아닌 커피숍에서조차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들은 나를 꼼짝 못 하게 했다. 하는 수 없이 회사에 끌려가게 되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 3층쯤에 내렸다. 건물 안은 어두웠고 엘리베이터 왼쪽엔 사무실 문이, 오른쪽엔 계단으로 향하는 문이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내리니 검은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 두 명이 나를 에워쌌다.      


드디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 전체를 누런 합판으로 칸막이 방을 수십 개 만들어 놓았는데 그 한 칸은 두 사람 정도 들어갈 크기였다. 이 미로 같은 사무실 안으로 더 들어갔다간 나오는 길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그 칸 안에 사람들이 다 들어가 있었는데 뭔가를 외우는지 말하는지 웅얼거리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좀비들이 울부짖는 소리처럼 들렸다. 소름이 끼쳤다. 나는 순간 뒤돌아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저거 잡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무실 문 반대편 계단으로 뛰어가는데 누군가가 내 등을 한 대 때렸다. 곧 잡힐 것만 같았다. 그 전날 근처 파출소에서 술 취한 행인이 난동을 피우다 경찰을 찌르고 도망간 사건이 있어서 그 일대에 경찰관들이 범인을 잡기 위해 거리에서 검문검색을 하고 있었다. 나는 건물 앞에 있던 경찰관 한 명에게 살려달라고 소리치며 달려갔다. 그러고 뒤를 보니 아무도 나를 쫓아오지 않았다.     


그 뒤 몇 분간은 기억이 없다. 이어지는 기억은 다단계 회사 앞 도로 끝에 조화 담쟁이를 걸어 둔 커피숍에서부터다. 나는 들어가자마자 주인에게 전화 좀 쓸 수 있냐고 물었다. 주인아저씨는 상아색 다이얼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나는 삼육외국어학원에 같이 다니던 비키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 경미와 다단계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일을 말하면서 오열했다. 왜 내 인생은 이렇냐고, 왜 이렇게 거지 같냐고 울부짖었다. 그러자 언니가 말했다. “니키타, 하늘은 견딜만한 고통만 주신대. 우리 힘내자. 어서 부산에 오너라.” 언니의 그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 

이른 아침에 불쑥 들어와 엉엉 울며 전화만 하는 이상한 아가씨에게 두루마리 휴지를 연신 건네던 주인아저씨께 감사하다고 말하고 그 길로 지하철을 타고 다시 서울역으로 가서 송탄에 시집가서 사는 셋째 언니에게 갔다. 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냥 한 달 동안 폐인처럼 먹고 잤다. 그러고 나니 다시 부산에서의 삶도 이어졌다. 나는 다시 취업도 영어공부도 해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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