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트 펀치 맞던 날
권투 이야기는 아닙니다,
나는 우리 지역 도서관 강좌 마니아다.
내가 사는 곳은 인구 23만의 작은 도시지만, 도서관이 7개나 된다.
매달 각 도서관은 어르신 대상 프로그램부터 부모와 자녀교육을 위한 강의까지 앞다투어 개설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관심이 가는 강좌에 등록하곤 했는데 올해는 몇 개 도서관에서 글쓰기 강좌를 시작했다. 나는 보자마자 전화를 걸어 등록했다. 몇 달 전 브런치 작가가 되었지만 글만 쓰려면 어찌나 살림이 하고 싶어지고 노트북만 켜면 울리는 카톡이나 핫한 쇼핑 정보와 함께 애초에 글을 쓰려고 했던 의지는 사라지고 시간만 흐르곤 했다. 나는 나 자신을 강제적으로 글을 쓰는 환경에 놓아야 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강좌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번 글쓰기 강좌는 도서관 상주 작가와 매달 새로운 형식을 글을 써보는 글쓰기 기초 교실이었다. 이번 달은 수필을 써보는 시간으로 첫 강의가 마치고 작가님은 자유 주제 아래 의식의 흐름대로 수필을 써오라고 했다. 그런 다음 두 번째 시간엔 작가님이 수강생들의 글을 조언해주었고 세 번째 시간에는 조언을 바탕으로 그 글을 완성해서 오는 것이 최종 숙제였다. 나는 일주일 동안 열 번 넘게 퇴고를 거듭해서 작가님께 메일을 보내고 브런치에도 글을 올렸다. 사실 작가님은 내 글을 두 편으로 쪼개어 써보라고 했지만, 당최 마무리가 안 돼서 그냥 분량을 줄여서 짤막한 한 편으로 만들었다.
강의 시간이 되었다.
작가님은 수강생들의 글을 PPT로 띄워 자신이 읽은 다음 다 같이 합평을 하자고 했다.
그런데 첫 번째 수강생 글부터 작가님은 날카로운 지적을 날렸다. 너무 날카로워서 베일 것 같은 아슬아슬한 말들도 서슴없이 내뱉었다. 다행히 그 수강생의 글은 짧아서 지적도 그리 길지 않게 끝났다.
두 번째는 내 차례였다.
심장이 쿵쾅댔지만 나름 영혼을 바쳐 퇴고했기에 칭찬을 받으리라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작가님은 내 글을 다 읽고 수강생들에게 물었다.
“자,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러분?”
그러자 5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수강생이 말문을 열었다.
“브런치 작가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실망이에요. 글이 너무 가르치려 들어요. 저번 주 글이 훨씬 좋았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뭐…. 뭐라고? 이에 작가님도 거들었다.
“저도 집에서 메일을 읽고 내가 제안한 걸 잊었나 아니면 나를 무시하나 싶어 서운하더라고요. 브런치 작가라고 해서 나도 기대를 너무 했나 봐요. 왜 다 줄였어요? 이건 말도 안 돼요. 글은 보편적으로 써야지. 이게 뭐예요.”
이렇게 시작한 두 사람의 내 글에 대한 난도질은 10분이 넘게 이어졌고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여기서 나가버릴까? 저 사람들 왜 저러지? 브런치 작가가 신춘문예 작간 줄 아나? 화를 내버릴까?’
나는 오만 가지 생각을 하다가 겨우 한마디 뱉어냈다.
“작가님이 제안하신 대로 하려고 했지만 제가 실력이 안 돼서 못한 것뿐이에요. 그만 하세요. 알아들었어요. 그만 하세요. 두 분.”
그러나 눈치가 없는지, 평가에 신이 났는지 두 사람은 멈추지 않았다.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첫 번째 합평의 주인공이었던 수강생의 한 마디로 겨우 다음 차례로 넘어갔다.
“작가님은 말씀이 너무 지나치세요. 좀 말 좀 가려서 하세요.”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 수강생은 작가님과 싸울 기세였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다행히 작가님이 맞대응하지 않으면서 분위기는 겨우 가라앉았고 모든 수강생의 합평이 끝났다.
내 글에 대해서 망설임 없이 충고해주던 그 수강생이 우아하게 또 시작했다.
“나는 작가가 될 생각이 없는데 작가가 되고 싶은 이 두 분께 한마디 할게요. 저는 다독 왕을 놓쳐 본 적이 없어요. 영화도 엄청나게 보고요. 책 좀 읽으세요. 요즘 추세도 좀 익히시고요.”
아, 어처구니는 어디로 갔나.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고개를 획 돌려 한마디 쏘았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다음 주 마지막 강의가 남았지만 나는 가족 여행이 있다는 거짓말을 하고 못 나온다고 말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영원한 나의 아군 신랑에게 전화해서 사건의 자초지종을 말하니 신랑은 뭐 그런 사람들이 있냐고 분개했다. 집에 와서 브런치에 올렸던 그 문제의 글도 꼴도 보기 싫어서 삭제해버렸다. 다시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상처가 너무 깊어 글은커녕 화를 가라앉힐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은 ‘쓰레기’라는 말만 쓰지 않았을 뿐 내 글을 쓰레기 취급했다. 자존감은 지하를 뚫고 맨틀로 향했고 그 사람들에게 속 시원하게 복수하지 못한 게 억울해서 부들부들 떨렸다. 내일은 그 상처로 얼마나 부대낄까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그런데 명치에 걸려 있던 돌덩이가 사라진 것을 느꼈다. 기분도 매우 상쾌했다.
‘왜 이러지? 어, 이상한데? 뭔 좋은 꿈을 꾼 건가?’
신랑과 아이는 회사와 학교로 가고 혼자 집에 남게 되었다. 조용히 식탁에 앉아 생각해보니 ‘내 글은 쓰레기’라는 말이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여졌다. 그뿐 아니라 너무 가르치려 들고, 사례가 보편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수긍이 갔다. 그러나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가 낯설었다. 원래 나라면 눈 뜨자마자 어제의 상황을 시뮬레이션으로 만들고 그 사람들에게 못다 한 복수를 해내어 나 자신을 위로하는데 이번엔 어제의 일이 생각나지도 나를 괴롭히지도 않았다. 오히려 하루가 지나고 새롭게 떠오른 생각은 그 작가님은 표현하는 방법이 다듬어지지 않고 직선적이어서 그렇지 나에 관한 안타까움에서 나온 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적질 수강생은 일관적으로 예의 없는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릇이 간장 종지만 한 나는 남에게 상처 받는 말을 들으면 내 마음이 풀릴 때까지 원인을 제공한 그 사람을 욕하고 또 욕했다. 그렇게 그 사람을 욕해도 평정심을 갖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그런 나 자신이 맘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의연한 사람이 부러웠다. 나를 향한 칭찬과 비난 앞에서도 여름날 서늘한 바람 같은 초연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늘 칭찬 앞에선 우쭐했고 비난 앞에선 파르르 떠는 파충류 뇌가 되곤 했다. 그런 내가 타인의 뼈 때리는 충고를 인정할 수 있었던 원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이런 충격 요법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회복 탄력성이 좋아진 걸까?
나는 성격이 외향적이고 직선적이어서 사람들은 작정하지 않는 이상 나에게 쉽게 충고하지 못한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내 앞에서 충고하는 사람은 점점 사라지고 칭찬과 위로만 하는 사람들이 내 주위를 포진하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정한 쓰다듬질’에 길들여진 내가 작가님의 ‘스트레이트 펀치’를 맞은 것이다. 맞은 첫날은 분노하며 부끄럽고 아팠지만 둘째 날 그 펀치는 근육 저 아래까지 지져질 정도로 시원했다. 그로 인해 주제 파악을 다시 하고 정신을 차려 글을 쓸 수 있었다.
늘 짧은 단발이던 머리를 50대가 되기 전에 어깨까지 길어 5대 5 가르마를 했다. 그랬더니 거울 속에 존 레넌이 서 있어서 흠칫 놀라고 좌절했다. 나이 들수록 한껏 꾸며도 예뻐지기는커녕 자꾸만 ‘잘 생겨지는’ 외모에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나이 먹으면서 정신적 맷집도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