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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길모 Feb 21. 2022

내 생애의 수호천사 2

옥심 언니를 찾습니다 ③

현리 여행을 다녀온 후 몇 달 뒤 나는 건설회사를 그만두었다.

나보다 뒤에 건설회사를 나온 언니는 결혼 이벤트 회사를 운영하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논술 공부방을 운영한다고 했다. 몇 년 뒤 나는 부산을 떠나게 되었고 언니와 영영 연락이 끊겨버렸다.     


현리로 떠날 때 우리 두 사람은 많이 지쳐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 시기의 언니의 고뇌가 느껴진다. 옥심 언니는 그 고단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기 위해 혼자만의 현리 여행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런 여행에 내가 혹처럼 달라붙었는데도 언니는 나를 살뜰히 챙겨주었다.

옥심 언니는 말이 많진 않았다. 오히려 수다쟁이인 내가 쉬지 않고 말하면 언니는 들어주는 편이었다. 언니의 대학 생활, 회사 생활 그 외 언니의 사소한 것들에 관해 왜 물어보지 않았는지 후회스럽기만 하다. 나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지키는지 알기엔 너무도 어렸고 어리석었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수록 언니가 생각이 난다. 사실 왜 언니가 이토록 끈질기게 생각나는지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언니가 있어 지옥 같던 회사에도 낙이 있었고 평상시 나라면 들어본 적도 없는 현리라는 곳을 그것도 설 연휴에 절대 가지 않았을 텐데 언니와 함께 가는 여행이라는 이유만으로 야간 버스에 오를 용기가 생겼던 것 같다.

야심한 밤 어깨에 따스하게 스미는 달빛 같은 옥심 언니가 있어 나의 20대라는 산중 험로가 그렇게 깜깜하고 춥진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언니를 다시 만난다면 언니의 첫마디는 뭘까. 결혼은 했을까. 목소리는 여전할까. 살이 좀 붙었을까. 언니의 모든 게 궁금하다. 하지만 잊지 않고 언니에게 묻고 또 물을 것이다. 그런 다음 그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들어줄 것이다. 언니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고 생각하니 벌써 콧날이 시큰해 온다. 옥심 언니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기적이 일어나리라 믿는다.

눈을 감으면 옥심 언니가 날렵하게 회사 유니폼을 입고 슬리퍼를 바쁘게 끌며 나를 부를 것만 같다.        

   



                                                        


갑자기 욕쟁이 신부님은 혹시 옥심 언니의 연락처를 갖고 계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러면 먼저 신부님을 찾아야 한다. 가톨릭은 지역을 교구로 나누고 있는데 그중 군종 교구가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럼 군종 교구에 전화해서 26년 전 경기도 현리의 그 성당을 찾아 당시 주임 신부님을 물어보면 될 것 같았다.

현리에 있는 성당을 찾아보니 현리 성당과 맹호 성당 두 군데가 있었다. 성당을 찾을 수 있는 단서인 ‘계단식’ 내부로 가늠해보니 첫 번째 현리 성당은 너무 작고 아담했다. 그다음 맹호 성당이 남았다. 맹호 성당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진짜 그곳의 내부는 계단식으로 된 성당이었다! 군종 교구에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말하니 26년 전 사목 하셨던 주임 신부님을 찾아 문자로 이름과 현 소속 교구를 알려주었다. 다시 인터넷으로 ‘한국 천주교 주소록’이라는 곳에 들어가 신부님 이름을 넣으니 지금 신부님이 사목 하는 성당이 나왔다! 그곳에는 성당 전화번호와 사제관 전화번호까지 친절히 나와 있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사제관으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노래인 것을 보니 신부님 휴대전화로 연결되는 것 같았다. 역시 한 번에 받지 않으셨다. 그러나 몇 시간 뒤 신부님의 전화가 왔다! 벅찬 마음으로 나는 26년 전 옥심 언니랑 같이 맹호 성당에 갔던 머리가 노랬던 아가씨라고 말씀드렸더니 놀라시는 것 같았다. 나는 옥심 언니를 찾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언니 연락처를 갖고 계시냐고 여쭤보니 안타깝게도 신부님도 5년 정도 언니와 연락이 끊긴 상태라고 하셨다.

실망은 했지만, 신부님과 26년 만에 감격스러운 통화도 하고 옥심 언니의 세례명이 막달레나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신부님께 내가 6년 전 세례를 받은 사실을 말씀드리니 당신의 일처럼 기뻐하시며 축하해 주셨다. 신부님이 계시는 성당에 가족과 함께 꼭 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요셉 신부님과 통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신부님과 통화 후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번엔 옥심 언니를 찾을 순 없었지만, 곧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마음은 부풀어 올랐다.

또 하나의 꿈이 생겼다. 옥심 언니를 찾아 둘이 손잡고 26년 전 그날처럼 요셉 신부님을 찾아가는 것이다.

막달레나 옥심 언니, 얼른 나타나 줘요. 루치아가 기다려요!

경기도 현리 맹호 성당. 네이버 지도엔 이름이 지워져 있다.
맹호 성당의 내부





상위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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