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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길모 Feb 19. 2022

내 생애의 수호천사 2  

옥심 언니를 찾습니다 ② 

우리는 회사를 마치자마자 버스 터미널로 가서 현리행 야간 버스를 탔다. 

옥심 언니는 대학 때 가톨릭 동아리를 하면서 신부님과 인연이 닿아 군종신부로 가 계신 뒤에도 연락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옥심 언니는 신부님에 대해 미리 귀띔한 게 있었는데 신부님이 욕쟁이 신부님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설마 처음 본 나에게 욕을 할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신부님을 만나고 완전히 박살이 나고 말았다. 

당시 나는 까칠한 성격을 드러내기라도 하듯이 긴 생머리를 노랗게 염색을 하고 있었다. 신부님은 사제관 현관에서 우리를 맞이하며 말씀하셨다.

“야 x 아! 머리는 왜 그렇게 노래? 양 x이 온 줄 알았네!”

나는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러나 나를 첨 보자마자 신부님 입에선 유창한 욕이 나왔고 지금도 그 첫 문장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신부님은 키가 자그마했고 마른 편이었으며 눈썹이 짙고 동남아시아 사람처럼 눈이 깊고 쌍꺼풀이 굵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신부님의 목소리도 일용엄니 목소리 같았다. 신부님은 고음으로 깔깔깔 웃곤 했는데 그럴 땐 영락없이 철없는 10대 아이 같았다. 찬찬히 보니 괴짜 같고 순수해 보이는 신부님이 나쁜 사람 같진 않았다.     


다음날은 일요일이었다.

모두 미사를 드리러 가느라 바빴지만 나는 성당을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더 누워있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부님은 다 같이 미사를 드리러 가야 한다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옥심 언니를 따라나서야 했다. 지난밤에 신학생들과 마신 맥주 탓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기 때문에 성당에 가서 자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성당 안엔 독특한 점이 있었다. 

보통 교회나 성당에 가보면 평지에 미사용 벤치를 놓은 데 반해 그 성당은 계단을 만들어 벤치를 놓았던 것이다. 그래서 밑에서 보면 뒤에까지 훤히 볼 수 있는, 미국 영화에 자주 나오는 대학 강의실처럼 보였다. 옥심 언니는 맨 앞에 자리를 잡았고 나는 혼자 맨 뒤 오른쪽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 자리는 명당자리라 성당 안 모든 사람의 뒤통수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곧이어 군인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몇몇은 멀찌감치 떨어져 내 옆에 앉기도 했다. 나는 내 또래인 그들을 의식했지만, 목을 뻣뻣하게 들고 눈은 내리깔고 관심 없는 척했다. 


미사가 시작되고 지루함과 졸음이 최고조에 달하는 신부님의 강론이 시작되었다.

신부님은 강론을 시작하시더니 곧 강론대에서 내려와 한 손에 성경책을 들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맨 뒤에서 내려다본 군인 신자들의 상황은 처참했다. 하나같이 예수님 생각에 여념이 없는지 까까머리들은 고개가 푹 숙여 있었기 때문이다. 신부님이 강론과 함께 잠을 깨라는 듯 책상을 요란하게 치며 계단을 오르자 까만 군인들의 머리는 도미노처럼 제자리에 돌아왔다. 그러나 신부님이 지나가고 나면 이내 고개는 떨궈졌다. 내 옆에 앉았던 군인들도 이미 꿈나라로 간 지 오래였다. 아까의 도도함도 잊은 채 나도 뒤이어 십자가에 계신 예수님께 절을 하며 졸기 시작했다. 신부님의 이동에 따라 일어나던 까까머리 도미노는 26년이 지난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미사를 마치고 언니와 나는 공주로 떠날 준비를 했다. 

그 당시 나는 좋아하는 팝송을 레코드 가게에 가서 녹음한 후 테이프 두 개로 만들어 마이마이에 듣고 다녔다. 그중 하나를 신부님께 이별의 선물로 드렸다. 신부님과 신학생들에게 다시 만나자는 기약 없는 약속을 남기고 언니와 나는 공주로 향했다.

공주에 도착한 날은 설날이었다. 공주 시내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그 추운 날 금강 변을 거닐며 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공주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다음 날 부산 우리의 자리로 돌아갔다.





상위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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