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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길모 Mar 05. 2022

가자! 브레멘으로!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 서평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말처럼 내 ‘열심’이 누군가에게 버림받았다고 우울하게 찌그러져 있기보다 평범하고 무료한 일상을 가볍게 살아야 한다. 열심히 살아도 소용 있는지 없는지는 관 뚜껑 닫힐 때 알아보도록 하고 일단 침대에서 일어나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           

  우리의 마지막 논제는 「나에게 ‘브레멘’은 무엇이며 그것을 찾았는가」였다. 브레멘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이도 있고 브레멘은 ‘성공’이라고 하는 이, ‘안식처’나 ‘이상적인 삶’이라고 말하는 이, 이 순간이 브레멘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브레멘은 ‘연대하는 사회’라고 말한 회원은 전원주택에서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고 맛있는 요리를 해서 먹이는 게 자신의 브레멘이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의 브레멘으로 향하는 길을 응원하며 토론을 마쳤다. 

제26회 황금 도깨비 상을 받은 이 책은 그림 형제의 ‘브레멘 음악대’를 패러디한 것으로 주인공인 당나귀, 개, 고양이, 닭이 성실히 일했지만, 나이가 많아서, 직장이 이사 가서, 장애가 있어서, 불법 행상이라는 이유로 일터에서 쫓겨나게 된다. 여기까지는 원작과 비슷하지만, 도둑들을 만난 이후의 이야기는 ‘브레멘 음악대’와는 완전히 다르다.

  일터를 떠나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당나귀, 개, 고양이, 닭은 산동네에 도착한 후 불이 켜진 집에서 흘러나오는 대화를 엿듣게 된다. 못된 짓도 이젠 못할 만큼 늙어서, 너무 멍청해서 보스에게 혼이 났다는 푸념을 들은 그들은 자석처럼 복면 4인조 도둑들에게 끌리게 된다. 

  운명적인 만남에 배는 왜 이리 고픈지 이들은 뭔가를 해 먹기로 한다. 직장에서 해고될 때 받은 퇴직 선물이었던 참치 통조림, 김치 한 통, 삼각 김밥, 두부와 도둑들이 가지고 있던 냄비와 가스버너 그리고 촛불로 맛있는 김치찌개를 해 먹는다. 그러다 이들은 ‘오늘도 멋찌개’라는 식당을 열어 하얀 촛불을 켜고 신나게 장사하는 달콤한 상상을 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독서 모임 ‘지음’의 세 번째 책인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는 회원들에게 높은 별점을 받았다. ‘열심히 사는 엄마’라는 공통점을 가진 우리는 특히 네 동물의 처지에 유난히 공감하며 읽은 듯했다. 열심히 살았지만, 삶의 터전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난 이들에 대해 할 말이 많았고 ‘열심’이라는 단어를 낯설게 바라보게 되었다. 

  어떤 회원은 열심히 무언가를 했다는 것은 하나를 위해 다른 또 하나를 희생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비슷하게 ‘열심’이라는 단어의 뜻은 무언가를 위해 마음을 활활 태운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열심히 한다는 것은 하기 싫은 일을 마음을 태워서 한다는 뜻이 된다.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말하지만, 게임은 열심히 한다고 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쇼핑도 나는 열심히 쇼핑하지 않는다. 그저 신나게 할 뿐이다.

  우리는 하기 싫은 일을 우리의 무언가를 희생시키며 열심히 한다. 여기서 ‘나는 열심히 한다.’라는 말은 주관적인 개념이다. 그 ‘주관적’이라는 단어 속에는 한 개인의 DNA 기록, 고유한 기질, 부모의 교육 방식 등 개인의 우주가 들어있다. 그러므로 각자가 말하는 열심히 살았다는 판단과 그 인생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직장 상사의 열심의 잣대와 달라서, 남들보다 튀어서, 돈 없고 빽 없어서, 때로는 딱히 이렇다 할 이유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열심히 살았지만, 실패와 거절이라는 쓰디쓴 맛을 보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인생은 원인과 결과가 꼭 들어맞지 않는 혼돈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시험에서 떨어질 수도 있고, 나쁜 짓을 하는 인간들은 벌도 받지 않고 떵떵거리며 잘만 사는 것 같다. 그렇다고 예상치 못한 결과 앞에 소주 한잔에 신세 한탄과 남 탓이란 안주만 찾아야 할까? 

 

상상 속에서든 현실에서든 역경을 만나면
자기 연민이나 절망에 빠지지 말고
그저 다시 시작하라.
이런 식으로 바라보면
삶은 더 이상 실패한 서사나 망쳐버린
결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진실이 아니다.
결말 같은 건 없다.
무한한 시작의 사슬만이 있을 뿐.

-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중 아우렐리우스 황제편 p.99-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말처럼 내 ‘열심’이 누군가에게 버림받았다고 우울하게 찌그러져 있기보다 평범하고 무료한 일상을 가볍게 살아야 한다. 열심히 살아도 소용 있는지 없는지는 관 뚜껑 닫힐 때 알아보도록 하고 일단 침대에서 일어나 집 밖으로 나가 무한한 사슬 위를 걸어야 한다.           

  우리의 마지막 논제는 「나에게 ‘브레멘’은 무엇이며 그것을 찾았는가」였다. 브레멘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이도 있고 브레멘은 ‘성공’이라고 하는 이, ‘안식처’나 ‘이상적인 삶’이라고 말하는 이, 이 순간이 브레멘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브레멘은 ‘연대하는 사회’라고 말한 회원은 전원주택에서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고 맛있는 요리를 해서 먹이는 게 자신의 브레멘이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의 브레멘으로 향하는 길을 응원하며 토론을 마쳤다. 





사진  TeeFarm,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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