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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길모 Mar 08. 2023

마르지 않는 유산

영화 '데몰리션'을 보고

 영화 ‘데몰리션’은 아내 줄리아가 교통사고로 죽은 후 눈물도 나지 않고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한 남자 ‘데이비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아내의 장례식 다음 날도 평소처럼 출근할 정도로 무덤덤했던 데이비스는 예전엔 보이지 않았던 사소한 것들을 보며 일상에 균열을 감지하기 시작한다. 

  아내가 병원에 있을 때 과자 자판기에서 과자는 나오지 않고 돈만 먹은 게 화가 나서 데이비스는 그날부터 매일 자판기 회사 고객센터에 항의 편지를 쓴다. 그 편지를 계기로 자판기 회사 고객센터 직원 캐런과 그녀의 아들 크리스와 친해진다. 

  ‘파괴’ ‘해체’라는 뜻의 영화 제목처럼 이젠 데이비스는 출근도 하지 않은 채 망가진 냉장고, 멀쩡한 컴퓨터, 아내 이름으로 배달된 카푸치노 기계, 자기 집까지 부수며 답답하게 지탱해 온 결혼 생활을 분해하기 시작한다. 그 분해의 끝에 이르자 아내와 자신은 서로 사랑했음을 그리고 자신이 그 사랑에 무관심했음을 깨닫는다. 이후 데이비스는 도망쳤던 현실로 다시 돌아와 장인 장모와 화해하고 아내가 좋아하던 바닷가에 버려진 회전목마를 고쳐서 아이들을 태우며 영화는 끝이 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데이비스는 어딜 가도 아내의 모습이 불쑥 나타나고 그녀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삶 곳곳에 스며있는 아내의 사랑을 깨닫는다. 완전히 무너트리고 난 후에야 비로소 새로운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것처럼, 데이비스는 모든 것이 무너진 후 자신의 슬픔을 발견하고 맘껏 울 수 있었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데이비스가 아내를 먼저 보낸 후 방황하는 모습을 보며 10년 전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6남매 중 막내였던 나는 다른 형제들보다 가장 짧은 시간을 엄마와 보냈지만, 가장 원숙한 사랑 속에 자랐다. 5년 동안 신부전으로 복막 투석을 하던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하며 퇴원을 요구했고 우리는 그토록 가기 싫어했던 요양원에 모실 수밖에 없었다. 긴박한 상황이었지만, 어리석게도 황소 같은 엄마가 금방 일어나 우리 곁에 영원히 있을 줄 알았다. 요양원에 모신 지 닷새째 되던 날 새벽이었다. 엄마는 갑자기 위독해졌고 요양원에서 병원으로 이송하는 구급차 안에서 돌아가셨다. 손가락 마디가 삐뚤어지도록 6남매를 키웠지만, 아무도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 

  엄마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나의 일부가 사라졌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사라졌다면 어디로 갔는지 미치도록 알고 싶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기에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러나 엄마가 간 곳은 찾지 못하고 나는 누구인지, 왜 태어났는지와 같은 예전엔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책 속에서 답을 찾아 헤매던 나는 방송대 교육학과에 들어가게 되었다. 공부라면 질색했던 내가 졸음을 쫓아가며 듣던 방송 강의, 온종일 앉아 있는 것이 고역이었던 출석 수업, 뇌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의 과제를 해냈다. 그 과정을 통해 부모와 나를 이해하고 흩어진 삶의 조각들이 맞춰지는 희열을 느꼈다. 

  방송대를 졸업하고 불교 신자였던 나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게 되었다. 신앙심도 없이 매달 초하루에 절밥이나 축내고 일 년에 한 번 연등 다는 것이 종교 활동의 전부였던 나이롱 신자였지만, 늘 종교란에는 불교라고 썼다. 그런데 2016년에는 가는 곳마다 십자가가 보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가톨릭 신자요 책을 펴도 성당 이야기였다. 누구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더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 근처에 있던 성당에 전화를 걸어 새 신자 등록을 하고 1년 뒤 김윤희는 루치아로 다시 태어났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2년이 넘게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방황했다. 그러나 그 끝에 다시 학생이 되고, 신앙인 되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예전의 내가 이룬 것은 다 내가 잘나서 이룬 것이라 믿었고 오로지 나 아니면 가족의 안위만을 위해 살았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나의 성취는 가족과 보이지 않는 힘 덕분임을 알게 되었고 타인의 행복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을 만큼 사랑의 그릇은 조금 커졌다.

  가족의 죽음 이후에도 ‘사랑’이라는 유산은 계속 전해졌고 산 자들의 삶을 윤택하게 했다. 영화 ‘데몰리션’의 데이비스는 ‘분해’라는 독특한 애도 방식을 통해서, 나는 공부와 종교라는 새로운 길을 통해서 자신의 조각을 찾는 값진 경험을 했다. 가족의 사랑으로 다양한 모양의 ‘나’를 만나 그것들을 맞추고 분해하는 퍼즐 맞추기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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