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것(斯사)’ _다산 정약용
우리는 언제부턴가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라는 신조어를 즐겨 사용하듯 ‘here & now’(지금 여기) 단어 안에 담긴 의미를 깊이 음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래전 우리 선조들이 이미 이러한 단어를 사용했고 그 뜻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래의 글은 50대 중반에 들어선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 시절에 썼다. 전라우도 청해(완도)의 수군절도사 이민수가 그의 거처에 어사제於斯齊(바로 이곳)라는 편액을 달고 그에 관한 글을 써달라고 다산에게 부탁한 것이다.
내게 없는 물건을 바라보고 가리키면서 '저것'이라고 한다. 내게 있는 걸 알아차리고 굽어보면서 '이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내가 이미 지닌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미 지닌 것으로는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 마음은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걸 사모할 수밖에 없어서 그걸 바라보고 가리키며 '저것'이라고 한다. 이는 천하의 병폐다.
지구는 둥글고 사방의 땅은 평평하다. 그러니 내가 있는 곳보다 더 높은 곳은 세상에 없다. 그런데도 곤륜산이나 형산, 곽산을 오르며 높은 곳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지나간 과거는 쫓아가 잡을 수 없고, 다가올 미래는 기약할 수 없다. 지금 이 상황보다 더 즐거운 때는 없다. 그런데도 좋은 수레를 갈망하고 논밭에 마음 태우며 기쁨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땀을 흘리고 평생토록 헤매면서 오로지 ‘저것’을 바랄 뿐 ‘이것’을 참으로 누려야 하는 줄 모른 지가 오래되었다.
다산은 멀리 있는 ‘저것’을 갈망하지 말고 가까이 있는 ‘이것’을 즐거이 누리라고 말한다. 그가 유배된 지 15년이 넘었고 언제 해배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글을 썼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다산의 넓은 마음을 생각하면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공자는 선량하고 온화한 인물들이 한꺼번에 배출되었던 과거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며 말했다. "요순시대 이후 '이때'가 가장 성대하였다." 또한 순임금이 만든 음악의 훌륭함을 칭찬하며 말했다. "음악이 '이것'과 같은 경지에 이룰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공자의 말씀으로 본다면 천하의 아름다움이나 훌륭함은 모두 '이것'에서 지극하게 된다. '이것' 위에는 어떤 것도 더 보탤 수 없다.
‘이곳’은 한 치의 물러섬도 나아감도 없는 자리이며, 지극한 진실과 아름다움도 바로 ‘이것’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다산의 생애는 결코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강진 유배 시기는 관료로서 암흑기였다. 하지만 오랜 귀양살이를 통해 당시 사회의 피폐상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위기에 처한 조선왕조의 현실을 개혁하고자 그 이론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연구와 글쓰기에 전념했다. 다산은 이상적인 왕도정치가 이 땅에서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하기에 그는 좌절하지 않고 방대한 개혁사상을 전개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이것이다. 가장 중요한 곳은 어디인가? 바로 이곳이다.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바로 지금, 이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