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합총서閨閤叢書”_빙허각 이씨
가부장제도 안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조선의 여성들. 그렇지만 그들은 변화하는 환경에 고요하고도 능동적으로 대처해나가고 있었다.
돈이 있으면 위태로운 것을 편안하게 할 수 있고 죽을 사람도 살리는 반면, 돈이 없으면 귀한 사람도 천하게 되고 산 사람도 죽게 한다. 그러므로 분쟁도 돈이 없으면 이기지 못하고 원한도 돈이 아니면 풀지 못한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고 하는데 하물며 사람이랴.
이 글은 "규합총서"에 나오는 대목이다. "규합총서"는 빙허각 이씨가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지식들을 모아 저술한 책이다. ‘규합’은 안주인이 거처하는 방을 의미한다. 돈이나 경제에 대해 무심한 것을 미덕으로 여긴 조선사회에서 ‘귀신도 부린다’는 직설적인 표현을 한 것도 파격적이지만 이 글을 쓴 사람이 여성이라는 사실도 놀랍다. 그런데 당시 의식주에 대한 탐구는 여성이기에 갖는 관심이 아니라 실학자들이 주의 깊게 연구한 대상 중 하나였다. 빙허각이 다룬 주제들은 "지봉유설" "산림경제" "임원경제지" 등에도 들어 있다. 새롭고 다양한 지식에 목말라한 학자들의 탐구 대상으로서 실용의 학문을 추구하고자 한 의도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빙허각 이씨의 남편 서유본 집안은 이용후생의 학문에 큰 관심을 가졌으며 박지원·박제가·이덕무 등과 교유했다. 농업백과사전 "임원경제지"를 저술한 서유구가 빙허각의 시동생이고, "태교신기"를 지은 이사주당은 외숙모가 된다. 빙허각이 「태교신기발문」을 썼으며, "규합총서"에도 태교에 관한 내용이 있어서 빙허각이 이사주당의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인용한 책 이름을 각각 작은 글씨로 모든 조항 아래 나타내고 내 소견이 있으면 ‘신증’이라 썼다.
‘신증’이란 본인의 의견을 새롭게 보탰다는 의미다. 빙허각이 "규합총서"에서 인용한 저서만 80여 종에 달한다. 내용의 출처를 밝히는 연구 방법은 청에서 유행한 고증학의 영향이었다.
빙허각은 "규합총서"에서 조선 후기 사회의 변화를 여성의 눈으로 관찰하고 분석하여 ‘한글’로 기록을 남겼다. 남성들이 한자로 쓴 방대한 지식을 일상생활의 담당자인 여성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했다. 그야말로 실용의 학문을 추구한 것이다. 그런데 빙허각이 지은 "규합총서"는 여성 생활 경제서 정도로 이해되고 있다. 다른 실학서들은 경세치용의 실학사상으로 이해하면서 빙허각의 "규합총서"는 ‘가정학’으로 따로 분류하려는 태도는 빙허각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