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브라스 거리는 우리식으로 하면 명동같은 곳이다. 번화한 거리, 젊은이들로 가득 찬 거리는 활기찼고, 그 거리의 끝에 있는 콜론 동상 (콜롬부스 동상) 옆으로는 바르셀로나에서 제일 큰 영화관이 있었다. 만국공통의 데이트코스가 가능한, 바르셀로나의 핫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빠가 램브라스 거리를 외친 것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그 거리에서 만국공통의 데이트를 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거리를 등지고 꽤 걸었던 우리는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나무 데크길에 도착했다. 아무 말 없이 손을 잡고 걷는 내내 무지하게 배가 고팠던 것이 새삼 느껴질만큼 타박 타박, 밟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리는 이 데크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나는 듯했다. 발걸음 맞추어 걷고 있는 이 남자가 내 옆에 있다는 생각 덕분에 배고픔을 잊어주다니, 나라는 사람은 내가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로맨틱한 사람이었나보다.
“저기야, 바르셀로나에서 제일 유명한 감바 레스토랑 (새우 등의 해산물 전문 레스토랑).”
“이야, 예쁘다.”
야자수를 드리운 넓은 노천 테이블마다 사람이 넘쳐났다. 오후의 햇살이 노천 테이블 위로 쏟아졌지만, 사람들의 식탁에는 이미 디너 메뉴가 넘쳐났다. 화이트 린넨 테이블보가 바람에 펄럭였다. 새우를 자르느라 부딪히는 나이프 소리, 경쾌하게 부딪히는 와인잔 소리, 무엇보다도 코를 찌르는 레몬향. 없던 식욕도 미친듯이 솟구쳐오를 것 같았다. 산처럼 쌓여있는 새우들이 나를 보고 인사하는 것 같았다. 오빠는 세고비야에서처럼 마치 무도회장으로 이끄는 기사님처럼 손을 내밀었다.
“들어갈까요.”
“좋아, 좋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기뻐 날뛰는 어린 딸같은 나를 앞세우고, 오빠는 웨이터와 자리를 가지고 상의하기 시작했다. 나는 잠깐 기다리는 동안 메뉴판을 성의 없이 훑어보았다. 해산물과 관련해서 배웠던 모든 단어들이 이 메뉴판에 모조리 있는 것 같았다. 내 위장은 한국을 떠난 이래 해산물 근처에 가 본적 없었는데 호사를 누리겠구나. 엉엉엉.
“뭐 시킬까?”
“아무거나.”
“하하하. 정말? 와인은?”
“아무거나.”
“하하하, 좋아하는 거 없어?”
“음. 스파클링 있는 거.”
“나도 스파클링 좋아해.”
아. 눈물이 나려했다. 도대체 와인까지 내 맘에 쏙 드는 걸 좋다고 해 줄 수 있어? 너 정말 이러기야? 너는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내 앞에 나타났니. 물 한 모금 먹지 않고도 이미 취해버린 것 같은 내게 보타이를 멋지게 맨 모델 몸매의 웨이터가 눈웃음 살살치면서 요리를 가져다주었다. 코 끝을 자극하는 새우의 고소한 냄새는 레몬 향기와 함께 내 마음을 흔들었다. 나는 노래를 부르기까지 했다.
“하하하. 노래하는 거야?”
“노래가 절로 나와.”
“하하하하하. 좋아. 맛있게 먹어.”
“건배, 건배 안 해요?”
“Sante!“
“Sante!“
쨍그랑 부딪히는 와인잔, 부드럽게 흔들거리는 스파클링 와인. 파리에서 오빠를 만났을 때, 이 순간을 상상할 수 있었던가.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왜 당신은 single (싱글)인데 available (가능한) 한가. 당신 정말 영국에 가정을 꾸려 놓고 여기서 이러는 거 아닙니까.
“오빠.”
“응.”
“오빠를 좋다고 하는 여자가 나만 있어?”
“하하하. 나 인기 있냐고?”
“음, 비슷한 말인데, 여자친구, 나만 있었어? 아니지? 어쩜 그러겠어, 이런 사람을 왜 가만히 둬.”
오빠가 웃었다. 오빠는 와인잔을 홀짝이면서 내게 웃었다. 그 때, 나는 오빠가 잠깐 머뭇거렸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나 혼자 너무 신이 나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분명히 오빠가 조금 멈칫했던 것이 기억날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 일이었다. 어쨌든 흡혈 청년 에드워드보다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이상호는 왜 싱글일까. 그것도 이 유럽에서. 대학만 들어가면 동거를 시작하는 이 엄청난 동네에서. 당신은 사실 아들 둘 딸 하나가 있는 사람이 아닐까. 아니지, 아무려면 어때. 나는 지금 샤도네이 더러 묵직한 와인이 아니라며 마다하지 않는 남자와 함께 앉아있는데.
“지원이는? 왜 지원이 같은 여자를 가만히 두지?”
“그러니까. 누구든 이거 횡재하는 건데.”
“맞아. 지원이를 만나는 남자는 횡재하는 거야.”
“오빠는 횡재했네.”
“맞아. 하하하. 지원이 남자친구가 없다는 거 이해가 안돼. 지원이가 아주 욕심이 많은 사람이어서 한 명만 사귈 수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
“빈 말 싫다더니 완전 잘해.”
“하하하하.”
우리는 원래 그렇게 금슬 좋았던 부부처럼 바르셀로나에 노을이 질 때까지, 그야말로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레스토랑의 로열석에서 그렇게 웃으며 만찬을 즐겼다. 우리와 눈이 마주치는 모두가 우리를 보고 웃어줬다. 너희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니. 궁금하다는 듯한 호의적인 미소들. 나는 완전히 와인에 취해버린 것 같았다. 마음껏 취했다. 이보다 더 취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던가. 남자를 만나 이만큼 신이 난 적이 있었던가,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무지하게 신이 난다.
“조금 걸을까.”
"응"
“저기가 해변이야. 걸을 수 있겠어?”
“해변? 당연히 가야지.”
세상에. 이 한 겨울에 해변을 걸을 수 있단 말인가. 분명히 두툼한 외투를 입었는데도 바람이 차갑지 않았다. 그것은 와인의 뜨거운 기운 때문만은 아니다. 내 눈앞에는 야자수들이 높이 치솟은 모래사장이 펼쳐졌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상관 없었다. 나는 신발을 벗어 들었다.
“야아아아아아아아아, 신난다.”
“하하하하. 조심해. 발 다쳐.”
“와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여기 해변이야. 나 겨울에 스페인와서 해변을 걸어. 바르셀로나가 해변 도시네.”
“신발 신어. 발 다친다니까.”
“그건 모래사장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하하하. 알았어, 알았어. 그치만, 조심해. 부드러운 모래가 아니라구.”
맨발에 닿는 모래의 감촉을 나는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차가운 모래들은 내 발길이 닿을 때마다 내 발등까지 깊숙이 적셔줬다. 분명히 차갑다고 날뛰어야 하는데도 나는 이렇게 걷는 것이 너무 짜릿했다. 즐거웠다. 나는 이 밤에 톡 쏘는 스파클링 와인을 몇 병 뚝딱하고, 당신과 함께 해변에 왔다. 그것도 맨발로 걷는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당신과. 이런 기분을 ‘날아갈 것 같다’고 하나보지. 벨라를 업고 산천을 뛰던 에드워드가 생각난다. 워싱턴 주의 무성한 숲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는 듬성듬성 야자수 해변. 나는 흡혈귀가 아닌 천사와 산책을 했다. 나는 계속 실실 웃음이 나왔다.
“와아아아아, 예에쁘으다아아아.”
“벌써 가로등이 다 켜졌구나.”
“바르셀로나는 너무 아름다워.”
“하하하. 그래.”
“오빠, 바르셀로나는 사랑의 도시야, 너무 사랑스러워.”
“사랑의 도시는 파리 아니야?”
“파리는 쇼핑의 도시야. 사랑스러운 것은 여기를 따라 올 수가 없어. 어쩜 겨울 해변에 야자수가 있어.”
“사랑의 도시가 갖추어야할 요소에 ‘야자수’가 있었군요, 지원씨.”
“지금부터, 오늘부터 딱 그렇게 정한 거예요. 하하하하하.”
어둑해진 야자수 해변에는 오렌지빛 가로등이 켜졌다. '로열 코펜하겐'이었나. 내가 제일 아끼는 색연필 꽁무니가 생각났다. 아름다운 네이비 칼라의 그 색연필의 꽁무니에는 분명히 로열 코펜하겐이라는 도자기 회사 이름이 찍혀 있었다. 바르셀로나의 하늘은 로열 코펜하겐으로 변해있었다. 아마 저 로열 코펜하겐 뒤, 오렌지 빛 가로등의 끝에는 로열 코펜하겐 빛의 겨울바다가 있겠지. 나는 모래사장에서 너무 신이 나버렸다.
“오빠, 나 여기 너무 좋아.”
“너 이렇게 좋아해줄 줄 몰랐어.”
“나 너무 행복해.“
“나도.”
“아악.”
나는 오빠를 향해 돌아보려다 그만 중심을 잃었다. 모래 깊숙이 맨발로 들어간 채, 갑작스럽게 뒤를 돌려다가 그랬다. 오빠는 또 넘어지려는 나를 잡으러 몸을 날렸다. 우리는 둘 다 백사장에 넘어졌다. 두툼한 겨울 코트를 입은 우리는 백사장에 넘어졌다.
“괜찮니.”
오빠는 머리를 백사장에 푹 담궈버린 나를 일으켰다. 핑 도는 느낌, 몽롱하게 어지러운 이 느낌. 기분이 좋았다.
“오빠, 고마워. 나 바르셀로나에 해변 같은 건 생각도 못했어.“
“뭘.…….”
“오빠가 흡혈귀라도 좋을 것 같아.”
“피를 좀 빨아야 되는데 말이지.”
“기꺼이 물려주겠어.”
“다행이야. 나보고 늑대가 되어 으르렁 거리라는 소리는 안 하네.”
“하하하하하. 사실 난 제이콥이 더 좋아.”
오빠는 모래가 묻어 있는 내 어깨를 조심스럽게 털었다. 정신은 없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드디어 내가 눈을 감아야하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으으으음.”
“아가씨, 왜 눈을 감는데?”
“오빠 이빨 나오는 거 볼까봐”
“하하하. 제이콥이 좋다며? 나 에드워드 안 할래. 나 늑대 할래.”
“하하하하하하, 늑대 이빨 있어.”
“맞네.”
“히히히, 빨리 달려가지만 마. 그럼, 늑대 시켜줄게.”
“음. 그럼 늑대로 변신할테니까 눈 다시 감아봐.”
실눈을 떴다. 나만의 천사, 나만의 에드워드, 나만의 제이콥은 웃고 있었다. 오빠는 내게 나직하게 속삭였다.
“지원아.”
“응.”
“난 이제 너를 내 가방에 넣어야겠어. 서울로 못 도망가게 몰래 어디로 데려가야지.”
“어디로오오?”
“어디든, 내가 가는 곳에 함께 가도록, 바르셀로나도, 런던도.”
오빠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나는 눈을 떠야할까, 그 짧은 순간 수천 번 고민했다. 그때, 오빠의 손가락이 다시 느껴졌다.
“너는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이야.”
오빠가 가만히 내 볼을 만졌다. 오빠의 몸이 다가오는 느낌이 났다. 오빠가 내 어깨를 감싸는 느낌, 오빠의 코가 내 코끝에 닿는 느낌, 오빠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는 느낌이 났다. 꿈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눈을 꼭 감았다. 눈을 뜨면 깨어질 것 같아서. 하지만, 오빠의 혀끝이 닿는 순간, 이 뜨겁고 부드러운 감촉은 꿈일 수가 없었다. 나는 실눈을 떴다. 내 코 앞의 남자는 가짜가 아니었다. 눈을 감고 키스를 퍼붓는 이 남자는 살아있는 사람이 맞았다. 나는 오빠의 목을 감쌌다. 오빠는 내 등을 바짝 당겼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그렇게 오래도록 키스를 나누었다. 첫 키스치고는 좀 뻔뻔하게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해변에서의 키스였다.
**
여느 때처럼, 나는 또 중천에 뜬 태양이 나를 향해 혀를 끌끌 찰 때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꼼지락 거리며 눈을 떠보았다. 눈이 시린 파란 시트가 보였다.
‘헉. 파란 시트. 나 여기 알아.’
나는 갑자기 머리털이 쭈뼛거렸다.
여기가 어디인가. 오빠 방이다. 어제 본 오빠 방이 아닌가. 오빠는 어디 있나, 아니 나는 옷을 입고 있나. 내 옷을 보았다. 내 다리를 만져보았다. 어제 입은 옷 그대로였다. 버석거리는 소리가 났다. 손에는 모래가 묻어났다. 별 일 있었던 건 아니구나. 아니, 그 와중에 ‘별 일’ 걱정을 다하다니. 나는 역시 요조숙녀였던가.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런데 정말 오빠는 어디 있나. 방 어디를 살펴봐도 오빠는 없었다. 방바닥을 볼까. 침대 밑으로 몸을 기울여도 사람이 있지는 않았다. 나무 바닥 아래에는 남색 러그가 보였다. 어제 마지막으로 봤던 하늘은 꼭 이 러그 색깔처럼 아름다운 남색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방을 살펴보기로 했다.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가늘고 긴 창문은 유럽의 건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창문이었지만, 이방이 오빠의 방일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은 기타였다. 수줍게 세워져있는 스페니쉬 기타. 내가 너 때문에 여기를 왔다. 기타를 보자, 나는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하늘색 방문을 열었다. 거실 너머의 부엌에는 이미 사람의 인기척이 들렸다. 왼쪽 머리가 또 쑤셨다. 나는 또 와인을 마셨던 것이었다. 나는 엉금엉금 기어나갔다.
“Buenas dias. (굿모닝.)”
오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갑자기 거울을 보고 싶었다. 눈꼽은 안 된다. 나의 생명은 착한 척 깜빡이는 눈이니까. 나는 부리나케 눈을 비볐다. 하지만, 차마 머리라도 묶을 찰나도 주지 않고 오빠는 부엌에서 잠깐 나왔다.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나는 이불 속으로 얼른 숨었다.
“잘 잤어? 샤워하고 와. 아침 다 되려면 좀 걸리거든.”
“언제 일어났어요?”
“방금.”
“에이, 거짓말. 앞치마를 두르고 있으면서, 이렇게 거짓말을 잘해.”
“하하. 너 완전 잘 자더라?”
“나 또 기억이 안 나. 여기는 언제 왔죠?”
“와인을 먹으면 기억이 상실되는 아가씨, 맘 편하게 씻고 오세요. 한참 걸리니까.”
앞치마를 두른 남자는 다시 부엌으로 사라졌다. 내 왼쪽 머리가 이렇게 쑤시는 걸로 봐서는 이 상황이 꿈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코끝에 풍겨오는 이 맛 좋은 냄새는 한국음식이었다. 오빠는 마법사일까. 향긋한 미역국 냄새가 맞는다면 오빠는 마법사 혹은 요리사임이 분명하다.
나는 착한 학생처럼 작은 샤워실에 들어갔다. 휴지. 샤워 코롱. 클렌저. 샴푸. 남자 둘이 사는 화장실은 세간이 단출했다. 물을 틀었다. 따뜻했다. 따뜻한 물 아래 얼마간 서 있었다. 아무 생각도 안 났다. 몽롱하고 행복했다. 잠이 덜 깬 사람처럼 기지개를 켜며 화장실을 나섰다. 주방에는 이미 새로운 한식당이 오픈한 것 같았다.
“이거 다 오늘 아침에 한 거라고?”
“아가씨가 오셨으니까요. 감기 들겠는데? 머리 말리게 시간을 더 끌걸 그랬나.”
문득, 그 차가운 마드리드 거리를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으로 활보하던 기억이 났다. 이름은 지대범이었던가. 그래, 대범이 너, 감히 샤워실을 나서는 내 앞에서 시계 보는 척을 두 번이나 했겠다! 야무지게 저 이로운 일만 읊어대던 그 놈이 떠오르자 나는 오빠가 같은 ‘남자’라는 사실을 더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남자는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걸까. 모조리 독일에 있나, 아니면 영국에 있나. 희귀한 남자, 이상호는 수건을 하나 더 가져왔다.
“우선은 이걸로 ‘업’ 머리 해봐. 머리를 다 말리지 않으면 감기 걸리거든. 이집이 추워서 그래. 이렇게 올리는 거 알지?”
“하하하하.”
“왜?”
오빠가 머리를 올리는 시늉을 하는 것이 너무 귀여웠다. 나는 수건을 건네주는 오빠 손을 잡았다.
“오빠, 고마워. 고마워요.”
“뭐가.”
“그냥. 다.”
“아침이 고맙다는 건 좀 생각해 보고 말해야 될 거야. 아니, 먹어보고 다른 말을 해도 이해해. 사실 나 제대로 해 본 거는 몇 번 안 되거든.”
“냄새는 완전 한인 식당인데?”
“참기름에 속아서 그럴 거야. 맛은 보장 못해.”
“그래? 그럼 내가 한 번 먹어보나?”
오빠가 내 앞에 앉았다. 나는 ‘I am cook (요리 콘테스트의 제목)’ 심사위원처럼 긴장한 표정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오빠의 표정에도 긴장감이 서려있었다. 내 얼굴을 조금 긴장해서 쳐다보는 그 순간이 너무 재미있었다. 나는 숟가락을 꿀꺽 삼켰다. 오. 이것이 정녕 당신이 만든 미역국인가요. 왜 걱정하나요. 미역국의 맛은 이렇게 훌륭한데. 시원한 조개맛과 미역의 어우러짐에 박수를 보낸다는 멘트를 쳐야할 것 같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합격. 조개의 시원함이 미역국을 더 고급스럽게 표현한 것 같아요.”
“하하하하하하하. 감사합니다.”
우리는 또 깔깔거렸다. 도대체 웃을 일이 뭐가 있었는가. 그래도 우리는 너무 웃겼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왼쪽 머리가 아픈 것도 까먹을 것 같았다. 오빠가 내 눈앞에 있기 때문이었다.
“어제 여기 언제 왔어요?”
“비밀이야.”
“하하하하. 욜리는 없었구?”
“욜리는 어제 외박했어.”
“왜?”
“음……. 우리가 일찍 들어오는 줄 알고, 신경 안 써도 됩니다. 다른 친구 집에 갔어.”
하하. 우하하하하. 그랬구나. 그것이 두 싱글남 룸메이트간의 불문율인 것이야? 나는 또 웃음이 터졌다. 오빠도 웃음보가 터졌다. 불쌍한 욜리. 갈 곳은 있었던가.
“아깝네. 어제 완전 전세 내는 건데.”
“하하하. 아까워?”
“어. 욜리가 이렇게 어렵게 비워준 집인데. ”
“하하하하. 아쉬움이 남았나본데, 아가씨?”
“흠흠. 흠흠흠.”
우리는 또 깔깔거렸다. ‘욜리’, 어눌한 스페인어발음이 어울리지 않는 키 큰 총각, 눈이 부신 금발에 하늘빛 눈동자는 고향이 스칸디나비아반도 근처여야 어울리는 사람이지만, 정작, 어디에서 온 것인지 물어보지를 못했다. 하지만 욜리 안부는 문제가 아니었다. 뜨끈하고 시원한 미역국, 이렇게 맛있는 미역국이 있는가. 나는 ‘후르륵’ 소리를 안 낼 수가 없었다. 오빠는 뿌듯해했다.
“보람차군. 이렇게 잘 먹을 줄 알았으면 다른 메뉴도 해 보는 건데, 미리 말 해주지.”
“내 참, 스페인 와서 이렇게 호강스러운 해장국은 처음 먹어봐.”
“맨날 해장국을 먹을 만큼 술 먹고 다닌 건 아니지?”
“하하하하하. 네네. 네네.”
“안나 말로는 착한 학생이랬는데, 안나가 거짓말 한 거야?”
“아냐. 안나는 천사야. 거짓말 못해.”
“하하하하하하하. 알았어. 그럼 착한 학생, 오늘은 어디 가고 싶어? 피곤해? 쉴까?”
“오빠, 학교 안가요?”
“응.”
“나 때문에?”
“학교는 너도 안가잖아.”
뭐라고 해야 하나, 할 말은 없다. 할 필요도 없다. 오늘은 오빠의 여자친구가 되어 맞이하는 첫 번째 날이니까. 학교를 아니 가겠다는 당신을 첫날부터 바가지 긁는 무시무시한 사람은 되지 않겠어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어디 가고 싶냐고?"
"응, 어디 갈까?"
"좋은 데는 어제 다 갔고."
"집에만 있겠다? 하하"
나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오빠는 팔을 의자에 걸친 채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나는 가우디가 생각나버렸다.
"오빠, 바르셀로나 왔는데, 내가 가우디를 너무 무시한 것 같아.”
“마음이 바뀌었어? 알았어. 가우디 하우스 갈까? 어디 갈까?”
“구엘 공원! 거기가 제일 넓고, 야외니까.”
“하하, 알았어. 그럼 우리 선탠 좀 해볼까.”
한 겨울의 선탠, 구엘 공원에서 맞이할 바르셀로나의 햇살은 어떤 느낌일까. 나는 식탁에서 일어났다. 옷을 챙겨 입으러 하늘 색 문의 오빠 방문을 열 때, 하마터면 노래를 부를 뻔 했다. 징글징글 요상스러운 가우디 건축도 오빠와 함께라면 까미유 끌로델의 조각품을 보는 것보다 더 감동적일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