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어쩐지 너무 좋더라.

by Nima

“어? 이상호?”

“... 너.”


요상한 외계 생명체가 서식할 것 같은 괴상한 건물들이 가득 찬 구엘 공원은 햇빛이 쏟아졌다.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겨울날 오전의 거리에서도 눈이 부셔 눈을 뜰 수가 없는 스페인, 그런데 난 선글라스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따라서 내가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던 것은 저 여자 탓이 아니다. 단순히 햇빛이 지나치게 넘치는 바르셀로나의 하늘 때문이다. 처음 보는 여자는 좀 특별했다. '너'라는 외마디를 지르며 굳어버린 오빠의 표정을 보니, 오빠 기타 클래스의 친구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사실 나는 매표소에서 티켓을 받아 오빠에게 가는 길이었다. 오빠는 이 낯선 여자 앞에서 잔뜩 긴장하여 서 있느라 그랬는지, 내가 다가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자가 먼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표독스러워 보이는 눈매가 인상적인, 대단한 미인이었다.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이 여자는 오빠와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 쪽은 누구?“

“야, 나영운. 잘 가.“


오빠는 나를 당겼다. 나는 오빠에게 묻고 싶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요. 나는 왜 소개하지 않나요. 묻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나는 조금 미적거렸다. 날카로운 인상의 여자는 내 쪽을 바라보았다. 묘하게 비죽거리는 입모양으로 내게 질문을 던졌다.


“어디가.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그 쪽이 상호 여자친구?“

“나영운, 가라고.”

“맞아? 왜 숨겨? 맞으면 맞다, 아니면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 되는대. 저는 옛날 여자친구, 나영운이라고 해요.“


미녀는 나를 쳐다보았다. 보는 순간 얼음이 되어버리게 하는 그녀는 ‘얼음 메두사’라도 되는 걸까. 나는 한 마디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순간은 예상해보지 못했다. 이상호의 Ex-girl이라는 사람을 바르셀로나에서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 그런 건 못했다.


“무슨 짓이야.”

“왜, 아니야? 여자친구를 만난 지 얼마 안 되서 그래? 아직 내 얘기까지는 못 갔나보네. 여기가 파리도 아니도 런던도 아니고, 아가씨도 여행 초반기는 아니실텐데, 여기서 만나신거예요? 어제 오늘 같이 좀 다녔어요? 아직 여자친구는 아니래요?“


골이 울렸다. 나는 토할 것 같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와인의 잔여물 같은 것은 한낱 걱정거리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 이 여자의 낭창거리는 목소리를 듣다보니, 나는 와인을 탓하고 싶었다. 뭘까. 이상호는 이 여자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 여자는 이상호를 어떻게 아는 걸까. 기괴한 디자인의 구엘 공원에서 건축물을 감상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들, 우리는 우주선이 나오고 말 것 같은 이상한 터널 앞에서 어정쩡하게 서버렸다. 그 때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자기야.“

“여기, 여기에요.“

“자기가 안 보여서. 아, 아니.“


누군가 여기를 서울이라고 해 주면 좋겠다. 이 넓은 유럽에서, 하필 스페인에, 하필 바르셀로나에, 하필 구엘공원에서 지대범이 내게 걸어올 줄이야. 이 아침에, 구엘 공원 한켠에서, 자신을 이상호의 Ex- girl이라고 소개하는 이 낯선 여자에게, '자기야'라고 부르는 지대범을 만나다니, 얼이 빠진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높여 인사했다.


“대범씨. 안녕하세요?“

“아, 지원씨…….“

“뭐야, 둘이 알아? 이 아가씨 재미있네?“


다른 말은 모르겠지만, 그 말은 맞았다. 우린 정말 재미있는 그림이었다. 이상호의 ex-girl이라는 여자, 그 여자의 '자기'가 된 지대범, 열흘이 지나면 한국으로 돌아갈 이상호의 새 여자친구인 나, 그리고 서로 본 적 없는 이상호와 지대범. 우리는 재미있는 모임이었다.


“상호 여자친구. 제 남자친구 아세요?“

“대범씨 아직 여행 중인 줄 몰랐어요. 마드리드에서는 여자친구 없었는데……, 맞죠?“

“둘이 마드리드에서 만났어요?“


여자가 지대범을 돌아봤다. 땀을 흘리는 것처럼 보이는 지대범은 묘하게 당황한 얼굴이었다. 웹툰 제목이 뭐였더라. 동그랗고 하얀 얼굴의 주인공처럼 뽀얀 지대범은 배경화면 가득 땀방울을 솟아낼 것 같았다.


“자기야. 마드리드에서 내가 그 때 서어과 분 만났다고 하지 않았어?“

“들은 것도 같긴 하고.“

“왜, 그 기차역에서 만났다고 한, 기억나지? 되게 맛있는 맛집도 소개시켜 주셨고, 하하하하하하. 내가 다 말 했다고. 하하하하하.“


지대범은 정말 정말 어색하게 큰 소리로 웃었다. 그것은 자신감 충만하여 묘하게 고깝던 예비 변호사 지대범도 아니었고, 세상 끝에서 혼자 남겨진 사람처럼 넋 놓고 두려움에 떨던 소매치기 피해자 지대범도 아니었다. 아무튼 오늘의 지대범은 무지하게 어색했다. 나는 갑자기 지대범에게 할 말이 생각났다.


“맞아요. 대범씨, 제가 정말 고맙다고 인사해야 되는 일이 있는데, 연락처를 몰라서 인사를 못했었어요. 그 60유로(Euro).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 하하하. 그랬던가?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하하하하하하.“


지대범은 나를 보고 소리치던 순간과는 달리 무엇인가 불편해했다. 어색하게 웃으며 두리번거리는 지대범은 정말이지 마드리드의 그 지대범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그를 보면서 계속 '땀을 뻘뻘 흘리며 당황해 하는' 4등신 웹툰 그림이 생각났다. 하긴, 지대범이 나에게 여자친구가 있는지와 같은 수다를 떨 일이 있었나. 우리는 고작 저녁을 한 번, 아니 두 번 먹었다. 하지만, 지대범이라면 이렇게 예쁜 여자친구가 있다는 이야기는 백 번을 하고도 남았을 캐릭터가 아닐까. 나는 자꾸 마드리드를 떠올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 '영운'이라는 아가씨가 손뼉을 쳤다.


“우리 이러지 말고 어디 앉아요. 저기 노천카페 있는데 거기 가요. 이렇게 만나는 거 정말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렇죠?“

“카페요?“

“저기 있어요. 커피 안 마실래요? 난 카페인 좀 필요한 것 같은데.“


나영운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오빠를 쳐다보았다. 오빠는 여전히 입을 앙다물고 있었다. 지대범은 계속 땀 흘리는 표정으로 '허허'거렸다. 나도 땀을 흘리고 싶었다. 이렇게 당당한 '전 여자친구'가 나타나 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우리가 그렇게 ‘4자대화’같은 구도로 은색 노천카페 테이블에 둘러앉았을 때에도 나는 그 상황이 와닿지 않았다. 나영운이란 아가씨와 지대범은 계속 서로를 가리켜 '자기'라고 부르는 상황은 아주 어색했다.


“자기가 우리 마실 것 좀 사다줘.“

“아, 그럴까.“

“같이 가요.“


오빠가 일어났다. 오빠는 지대범을 따라 가려고 했다. 그 때 나영운은 오빠의 뒤통수에다 대고 조금 비죽거리며 말했다.


“나 별말 안 할게. 뛰어 갔다 오지 않아도 되.“


오빠는 잠깐 멈춰선 듯했다. 하지만 오빠는 지대범의 뒤를 따라 커피를 볶는 쪽으로 걸어갔다. 테이블에는 나와 나영운만 남았다. 나는 나영운이라는 초면의 이 여자가 나를 때릴 것처럼 무서웠다. 나영운은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주 벌벌 떨고 있었다.


**


“지원씨 몇 살이에요?“
“왜요?“

“어머, 왜라니? 그게 뭐 대단히 중요한 비밀이에요? 한국 사람이 나이 묻는 건데.“


나영운이 웃었다. 웃는 모습이 꼭 고양이 같았다. 나는 이 여자가 괜히 싫었다. 그냥 너무 아름다워서 싫었던 것 같다. 나는 촌스럽게도 티나게 ‘틱틱’대며 말했다.


“그 쪽은 오빠랑 동갑이에요?“

“네. 지원씨는 그럼, '상호오빠'보다 얼마나 어려요?“

“…… 왜요?“

“나 참, 한 마디를 안지네. 대범씨는 마드리드에서 만났다면서요. 상호, 여기서 만났어요? 바르셀로나 여행하면서?“

“그건 아니고요.“


나는 입술을 매만지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지면 안돼. 나는 지금 여자친구로 등극한지 첫 날이니까, 지고 싶지 않다, 밀리고 싶지 않다.


“그럼, 영국에서부터 알았던 사이에요?“

“아뇨. 파리에서 만났어요.“

“언제? 상호 파리에 오래 안 있었을텐데 언제 만났다는 거죠?“

“파리 기차역이요. 스페인으로 내려오는 기차를 탈 때.“

“뭐요? 그러면 한참된 거 아니에요? 그 쪽은 마드리드 계셨던 거 아니에요?“

“맞아요.“

“그런데, 그 때 한번 보고 바르셀로나를 왔다고요? 오빠를 보러?“

“네.“

“오빠가 오래서? 그 말을 믿고 여행도 할 겸? 학생이라 경비 좀 줄일 필요는 있겠지만, 그래도 대단한데요. 마드리드에서 벌써 돈 다 쓴 거예요?“


무슨 소리일까. 돈을 줄이는 것과 나의 바르셀로나 행이 무슨 관계인가. 무엇보다도 나는 일방적으로 나 여사가 캐묻고 내가 대답하는 구조가 신경질 났다. 아니 그것은 핑계다. 나는 오빠의 전 여자친구라는 이 여자가 너무 예쁘다는 데에서 신경질이 났다. 아름다운 여자였다. 햇살에 비친 머리칼이 금빛이 도는 파마머리를 눈이 부시게 해주었다. 까무잡잡한 얼굴, 묘하게 못 되 보이는 인상, 금빛까지 감도는 아름다운 머리카락. 나는 무엇인가 자꾸 주눅이 들었다. 반항하고 싶었다.


“본인은 어디 여자친구에요? 독일에서 소싯적 만난 사이?“

“하하. 그 사이에 독일 이야기를 해요? 엄마 이야기도 벌써 했겠네?“

“뭐라고요?“

“왜요, 혼자만 아는 비밀인 줄 알았어요? 나 전 여자친구라니까요. 암튼, 난 독일사람 아니에요. 나는 서울대 다녀요. 영국 어학연수 왔다가 오빠를 런던에서 만났고.“

“오빠 대학 다닐 때 알았다구요?“

“영국서 대학 다닌 것도 알아요? 하하하, 깊은 대화를 나누었네? 짧은 시간인데 어디까지 갔어요? 잤어요?“

“뭐라고요?“


나는 서울대 나오셨다는 이 분을 하마터면 때렸을 수도 있다. 여자의 '자기' 지대범이 때 맞춰 뜨거운 커피를 어렵사리 들고 오지만 않았으면, 나는 은빛 노천카페에서 이 여자를 먼지나게 ‘몽둥이 찜질‘ 해 줄 수도 있었다. 여자는 '자기'가 오자 언제 그런 불쾌한 질문으로 사람을 쑤셔댔는가 싶을 정도로 애교 있는 여자친구가 되어버렸다. 소름 끼치는 변신이었다.


“자기야 고마워.“

“아니야, 자기야.“


지대범이 처음 하던 말이 생각났다. '튕기실 필요 없다.'였다. 그렇게 자신감 넘치던 그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자기’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다니. 역시 여자는 예쁘고 봐야하나. 모두가 착석한 것을 확인하자 아름다운 나 여사가 이야기하셨다.


“인연이야. 안 그래요?“


나영운은 나를 보고 말하고 나는 지대범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대범은 나를 보며 또 ‘이마에 땀을 흘리는 만화 캐릭터’가 되더니 이내 오빠를 보고 한마디 했다.


“여기는 어디서 뭐 하시는 분이신지.“


그 때였다. 전 여자친구, 나영운 여사는 멋지게 오빠의 이력서를 읊었다.


“케임브리지 대학 나오셨어. 런던에 본사를 두고 있는 위스키 회사, 디아지오의 런던 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취직 하셨고.“

“케임브리지 대학이요? 아이고, 이런. 수재시군요.“


통성명하기 좋아하는 예비 변호사님은 귀에 쏙쏙 들리는 '케임브리지'라는 말에 갑자기 오빠를 향해 상냥하게 웃었다. 가물거렸던 지대범의 모습이 되살아났다. 지대범의 그 익숙한 모습이 반갑기까지 했다. 나는 오빠의 대학 같은 것은 알지도 못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이라. 오빠가 자기 전공을 '식물관능'이라고 소개한 것이 기억났다. 그것이 위스키와 관련이 있구나. 나는 또 이 얄미운 여자에게 로우 킥 정도는 당한 느낌이었다.


“영국에서는 서로 언제 만나셨던 거예요?“

“우리 언제 만났지?“

“…….“


오빠는 말이 없었다. 커피를 사온 이후, 아니 이 여자를 만난 이후, 구엘 공원에 들어온 이후, 오빠가 입을 연 것이 없었다. 오늘 아침, 나를 위해 손수 미역국을 끓이던 사람은 이 괴상한 공원에서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나영운은 오빠를 향해 살살 발길질을 시작했다.


“어머, 상호는 지원씨 되게 좋은 가보다. 상호, 우리 얘기 하지 마? 응? 하지 말라면 안 할게. 저는 대범씨한테 영국에서 남자친구 있었다는 얘기 했거든요. 지원씨 사람 착해 보이는데, 왜 그렇게 벌벌 떨어?“


나는 묘하게 기분이 상했다. 내가 어딜 봐서 착해 보이니. 너 나를 언제 봤는데 착하다고 하니. 갑자기 고등학교 때 우리 반이었던 어떤 여자애가 생각났다. 그 여자애는 유독 내 비누를 제 것처럼 썼다. 엄마가 주셨던 이스라엘에서 수입한 오이비누는 내 기억에도 좀 좋았지만, 뚜껑을 열면 쏟아지는 달콤한 오이냄새는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매일같이 내 비누를 '빌려'달라고 말하던 그 애. 쓰면 없어지는 비누를 어떻게 빌려주는 가도 웃겼지만, 쓸 때마다 그 애가 내게 하던 말이 기억났다. 그애는 내게 '왜 이렇게 착해졌어.'라고 했다. 하하. 하하하. 매일 나는 착해졌다. 별 일 안하고, 빈둥대도 유선인지에게 오이비누를 쓰라고 허락해주면 나는 착해졌다. 그 때 나는 '착하다'는 말이 진짜 거슬렸었다. 그리고 오늘 지금, 전혀 다른 이 여자가 내뱉는 '착하다'는 이 말이 너무 거슬렸다. 나는 그간 날리지 못한 하이킥을 날릴 때가 왔다. 오늘 너는 상대를 잘못 만났다.


“저는 오빠가 영운씨랑 영국서 살림이라도 차리셨다거나, 애가 둘이 있었다거나 해도 괜찮아요. 근데, 영운씨는 대범씨랑 어디서 만나셨어요? 대범씨가 마드리드를 떠난 지도 얼마 안 되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만나셔서 '자기'라고 하시다니. 제대로 궁합이 맞나봐요.“


나는 이것이 하이킥, 니킥 이상의 효과가 있길 바랬다. 하지만, 나영운은 지지 않았다. 나를 보고 환하게 웃기까지 하던 그녀는 내게 물었다.


“지원씨는 오빠랑 딱 맞아요?“

“그럼요. 그러니까 마드리드에서 날아왔죠.“

“하하하하하하하하. 재미있다. 그럼, 마드리드에서부터 둘이 뜨거웠다는 거예요? 자기야. 자기가 만났을 때, 자기도 이 두 분 본 적 있어? “

“아, 아니. 아닌데. 하하하하.“


마드리드 이야기를 해 보겠다고? 너 우리 오빠가 얼마나 천사인 줄 알아? 나는 촌스럽게도 꾸역꾸역 에피소드를 하나 꺼내들었다.


“대범씨가 마드리드를 떠났을 때, 제가 소매치기를 당했거든요. 그 날 오빠가 바르셀로나에서 택시를 타고 마드리드로 와 줬어요. 이런 남자가 어디 있어요? 안 맞는 궁합이라도 다 맞춰지게 되어 있어요.“


난 나영운이 더 아파했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대범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나는 무엇인가 잘못 말했나 잠시 고민했다. 다행히 나영운이 너무 신나했다.


“어머, 대단해. 역시 오빠는 한국 여자들에게 너무 약해. 그렇지?”

“그래서 온 게 아니라니까요.”

"지원씨. 둘 만 그렇게 궁합 맞추지 말고, 우리 자기한테도 좀 알려주세요. 우리랑 커플놀이 좀 같이 해요.“

“커플놀이요?”

“뭘 놀래요. 비싸게 굴 필요 없잖아요. 여기 아니면 언제 또 만나요, 이번 생에."


나영운이 나긋나긋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영운의 어깨를 지대범이 신나게 문질렀다. 지대범의 손을 마주보고 있던 나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언제 만나랴. 그 말은 귓속을 맴돌았다. 너네 아무리 슈퍼 궁합이래봐, 서울까지 갈 일 있니. 이런 말. 아쉽고 서운하지만, 그것은 내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하는 현실. 머리가 아팠다. 오빠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오늘 저녁부터 같이 먹을까요, 아니지, 저녁 한 번 같이 먹는 거는 아쉬운데? 우리 한국 커플들끼리 만났는데 커플 여행을 가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잖아요?“

“그거는...”

"아, 상호는 독일 사람인가?."


순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켜주고 싶었던 오빠의 얇은 부분, 긁히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다.


“오빠는 여기서 학교 일정도 있고요.”

“지원씨, ‘상호 오빠’도 유럽 사람이라 쿨해요. ex-girl friend 가 신경 쓰여서 망설이는 게 아니라 지원씨하고만 있고 싶어서 괜히 대답을 안 하고 저러는 거에요. 학교는 무슨 학교. 아유, 배 아파라.“


나영운은 오빠를 흘겨보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지대범의 도톰한 손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럼, 우리 이렇게 해요. 오늘 마음을 정하시고, 상호가 저녁때 나한테 메일 보내면 되겠다. 우리는 사실 바르셀로나 거의 돌았어요, 대신 몬세라트(근교 관광지)를 못 갔거든요? 상호랑 지원씨도 어차피 몬세라트 갈 거면, 우리 같이 가요. 둘 보다는 넷이 재미있잖아요.“


나는 오빠를 올려다보았다. 오빠는 여전히 입술을 앙다물었다. 이제 미역국을 사이좋게 호호 불며 먹던 두 남녀는 모두 입술을 앙다문 것 같았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 명확하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홀린 듯, 구엘 공원에서 말을 잃어버렸다.



**


지대범과 나영운, '자기야 커플'이 자리를 뜬 뒤에도 우리는 계속 그 노천 카페에 앉아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앉아 있었던 것인가. 우리가 앉은 은빛 테이블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의 태양이 높이 솟아올라 은빛 테이블로 내리 쬐는 모양을 보니 정오가 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빠와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계속 생각했다. 나영운이 누구냐고 왜 묻는가. 나는 자격이 없다. 저 나이에, 저 얼굴에, 저 몸에. 여자친구가 없었다면 그것은 ‘게이’라는 말이겠지. 그러니까 여기서 '조강지처 코스프레'나 하면서 징징댈 일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화낼 입장이 아니다.


하지만, 어머니 이야기는 나에게만 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이것은 확인해야 했다. 어머니를 팔아 한국여자를 만나는 족족 세레나데를 불러주는 남자라면 나는 이 남자를 위해 이 곳에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 수줍음이 묻어나는 멋진 미소로 궁지에 빠진 여자들을 구해주고, 기절하게 아름다운 저녁을 대접하고는 발가락이 모조리 펴질 것 같은 대단한 키스를 퍼 붓는 것이 당신의 레퍼토리라면 나는 어서 여기를 떠나야 한다. 모든 여자를 제 집에 데려와 눕혀 놓고도 입던 옷 고이 두고 손수 해장국을 끓여 주는 것이 취미라면 나는 어서 당신에게 '안녕'이라고 말해야 한다. 내가 더 당신에게 깊이 빠져들기 전에. 나는 웃으며 질문하기로 했다.


“얼굴 펴요. 돈 쥬앙. (난봉꾼 아저씨.)”

“지원아. 할 말이 없어, 미안해.”

“뭐가 미안해. 돈 쥬앙으로 태어난 건 어쩔 수 없지, 게이가 아니라는 것은 익히 알았지만, 이렇게 건강한 남자라는 것까지는 확인해줄 필요는 없었는데.”

“미안해.”


화가 난다. 뭐가 미안해. 바보야. 설마 나를 수녀원에서 갓 나온 여자로 보는 거야. 나는 나영운을 따라 최대한 밝게 웃었다. 거울은 안 봤지만, 아마도 매우 소름끼쳐보였을 것이다.


“뭐가? 설마 진짜 살림 차린 거예요? 하하.”

“아니야.”

“오빠가 뭘 미안해요. 그러지 마요.”

“이렇게 만날 줄 몰랐어.”

“남자랑 여자랑 사귈 수도 있고, 헤어질 수도 있지. 오빠는 내가 오빠에게 어떤 여자도 없어야 한다고 징징댈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아니.”

“오빠. 나는 몇 가지만 물어보고 싶어요. 오빠의 대답이 마음에 들면, 나는 이 바르셀로나를 더 망치고 싶지 않아요. 그 여자 때문에 오늘 아침까지 너무도 훌륭했던 바르셀로나를 망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좋은 기억만 하고 싶어.”


내가 아무리 웃으며 말해도 오빠는 ‘죄인’ 코스프레 중이었다. 그럴 필요 없다. 잘못한 일이 아니니까. 나는 오빠의 과거를 캐물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니까. 나는 여행 중 사귀게 된 '갓 잡은 여자친구'니까. 괜한 트집에 미안해하는 모습을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질문을 하는 건, 오빠를 미워하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에요.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오빠를 더 마음 놓고 좋아하고 싶어서, 더 노력하려고, 더 알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좋아하는 사람이 무슨 노래를 좋아하는지, 영화배우는 누구를 좋아하는지 물어보잖아요. 그런 거 물어봐도 되죠?”

“…….”

“오빠가 싫다면 난 물어보고 싶은 것도 없어. 난 갑자기 나타나서 뻔뻔하게 자기를 전 여친으로 소개하는 여자한테 관심 없어요. 그것 때문에 오빠가 나한테 미안해하면서 이 아름다운 바르셀로나를 우울하게 돌아다니고 싶지도 않아요. 우린 어제 막 뽀뽀했던 새로운 커플이라고…….”


오빠는 나를 바라보았다. 오빠의 얼굴에 바로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오빠는 가만히 내 옆에 조금 다가왔다. 그리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를 줘서 고마워.”

“그럼, 질문할게요. Y/N Question (예/아니오 로 대답하는 것) 이에요.”

“응.”


나는 잠시 숨을 고르기로 했다. 떨리긴 하지만 들어야 하는 것. 어렵지만 넘어야 하는 언덕 같은 것. 차분하게 넘어가보자. 당신이란 사람에게 무조건 실망하고 싶지 않으니까. 나는 이미 당신에게 대단히 매료되어 있으니까. 이 정도는 넘어야할 과정이라고 기꺼이 받아드리리라. 나는 오빠를 바라보며 물었다.


“누구에게나 어머니 이야기를 하나요? 어머니의 사연, 오빠의 스페인 아버지. 이런 거 만나는 한국여자마다 하는 이야기에요?”

“뭐? 누가 그래, 영운이가?”

"‘예, 아니오‘로 대답해주세요.”


오빠는 고개를 흔들었다.


“No.“

“그럼, 도와주는 여자들 모두에게 고백하곤 했나요? 그러니까 나 말고 세레나데를 불러주러 간 적 있어요? 8시간 넘게 걸리는 지역으로.”


오빠는 고개를 흔들었다.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었다.


“No.”

“마지막 질문이에요.”

“응.”

“디너 데이트를 하고 술을 마신다음, 오빠 집으로 데려가 해장국을 끓여 주는 게 코스에요? 안타깝게도 나는 골아 떨어졌지만, 그게 코스에요?”


오빠는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No. 아닙니다.”

“그럼, 세 가지 질문 모두, ‘아니오’라고 대답한 거네요.”

“네.”


나는 오빠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을 겪어본 것은 아주 잠깐의 시간이지만, 나는 이 사람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고? I don't know. (나는 모른다.) 틀릴 수도 있지만, 두렵지 않았다. 오빠를 믿고 오빠를 더 알고, 오빠와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 이 생각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오빠에게 악수를 하자고 했다. 오빠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스페인 국경에서 우리가 헤어지던 아침처럼 오래도록 오빠 손을 출렁거리며 악수를 했다.


“고마워요. 진지하게 대답해줘서. 오빠 덕분에 바르셀로나가 완전히 미워지지는 않았어요.”

“고마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오빠가 설사 진짜 ‘돈 쥬앙’이어서 나에게 밥 먹듯 거짓말을 뱉어냈어도 나는 그 날 기분이 편해졌을 것 같다.


“사실 애가 있다는 말만 안 했으면 오빠가 그 여자랑 정말 사귀었다고 해도 난 상관 안 해요. 난 은근히 이해심이 넓다구. 오빠가 게이가 아닌 이상 여자가 없었다는 게 더 비정상이잖아.”

“난 영운이 때문에 너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내가 어디서부터 무슨 말을 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어. 다시는 안 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 여기가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여행 장소라는 걸 까먹은 것 같아.”

“Ex- 여자친구는 맞죠?”

“음, 우린 두 번 잤어.”


하하. 이거 또 통역이 필요한 일인가. 나영운 여사의 이야기도 오빠의 이야기도 같은 일을 달리 말하는 것일 수는 있겠다. 한국 남자들이라면 뭐라고 할까. 우리 친오빠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나는 웃음이 날 뻔했다.


“흠, 들어보고 판단해야겠어. 이야기해줘요.”


오빠는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은빛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오빠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영운이는 어학연수 왔다고 했어.”

“오빠네 학교로?”

“아니, 그냥 근처 학원 같은 데로. 한국에서 유학원이 속인 것 같았어. 처음 본 것은 피카디리 서커스 (영국, 런던의 다운타운 가운데 하나) 근처였는데, 처음 보는 여자가 서툰 영어로 다짜고짜 자기는 복스 홀(영국 런던의 지하철 역 이름)근처로 가야 되는데 여기서 무슨 버스를 타야 되냐고 물었어. 그 때는 이미 버스가 안 다니는 시간이었고, 거기 가는 버스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나는 조금 머뭇거렸어. 그런데 여자애가 혼자 용감하게도 그 시간, 그 곳에서 ‘복스 홀’만 외치며 버스를 찾았지.”


오빠는 잠시 입술을 매만졌다. 눈썹을 조금 치켜 든 모습은 런던을 떠올리는 중 같았다. 나는 런던이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 오빠의 마음은 감이 잡힐 것 같았다. 또 허둥대는 한국 여자를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겠지. 바보. 바보. 바보.


“버스가 없을 거라고 했더니 나에게 복스 홀로 데려다 달라고 했어.”

“오빠는 나영운을 데려다줬겠지?”

“응…….”

“차로? 차가 있었어요?”

“아니, 택시를 잡았어. 복스 홀, 국민 주택이 있는 곳이야. 안전지대와 무법지대가 조금 섞여 있거든. 민박집에 간다는 말을 들으니까 그 우범지대가 생각났어. 국민 임대주택을 싸게 받아서 하는 불법 민박집들, 그런 골목에는 늘 나쁜 사람들이 기다리니까.”

“걱정되었구나.”


오빠가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눈부시게 빛나는 은빛 테이블 때문에 오빠의 피부도 빛이 나보였다. 오빠는 빛 때문에 잠시 눈이 가늘어졌다. 그래서 그 눈이 머금은 말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나는 테이블을 내려다보았다. 오빠는 천천히 다시 말했다.


“응. ‘병’이잖아. 그냥 지나쳐도 되는데 데려다줬어. 민박집 앞에서 나한테 명함이 없냐고 묻더군. 난 학생이라 명함이 없다고 했지. 그랬더니 어느 학교를 다니는지 물었어. 그래서 케임브리지라고 했고, 영운이는 우리 학교가 런던에 있는 줄 알더라.”

“케임브릿지는 런던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는 근교, 아니에요?”

“맞아. 교외선 타고 30분은 가야지. 그 얘기를 했더니 내 전화번호는 없냐고 물었어. 자기는 곧 어학연수를 시작하는 데, 런던에 올 일 있으면 자기하고 같이 놀자면서. 붙임성 좋고 발랄해보였어. 번호를 주면서 말했지. 나는 학교를 다니니까 주말에나 런던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오기 때문에 이렇게 복스 홀에는 다시 올 일이 없다고. 그래도 연수하면서 필요한 일이 있으면 말하라고. 그리고 헤어졌어.”

“런던에서 아르바이트 했어요?”

“응, 식당에서. 한인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지.”


오빠는 눈썹을 매만졌다. 오빠가 고백한 대로, 오빠의 최대 약점은 ‘혼자 다니는 한국 여자’ 다. 어머니의 그림자를 입은 한국 여자들은 늘 이상호로부터 넘치는 대접을 받게 된다. 나는 계속 이야기를 재촉했다.


“그래서? 그 때부터 만났구나?”

“음, 다음날 오전에 내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어. 대학교 구경을 하고 싶다더라. 런던에서 케임브리지까지 가는 교통편을 알아봤대. 가기 너무 쉽다고 좋아하는 거야.”

“하하.”

“자기 곧 기차를 탈거니까 기차역으로 데리러 오라더군. 내가 수업이 있어서 갈 수가 없다고 했더니. 괜찮대. 자기가 기차역에서 기다린대. 자기는 책을 보고 있으면 된다고 했어. 사실 기차역에서 안내 버스를 타고 대학 타운으로 들어와야 되는 건데, 그걸 전화로 설명하는 게 좀 어려우니까, 그 얘기를 하려고 좀 머뭇거렸더니 전화를 끊었어. 이따 보자고.”

“갑자기? 오빠를 기차역으로 나오라 하면서?”

“응. 몇 시차를 탄다느니, 그런 설명도 없었어. 내가 말 할 틈이 없었어. ‘가서 봐요’, 하는 말을 하고는 바로 끊었어. 그건 공중전화였는데도.”


나의 마드리드가 생각났다. 오빠는 참 참을성이 있는 사람이구나. 이런 무례한 여자들을 다 견디고 다 참다니, 나는 새삼스럽게 나의 ‘강도 드립‘을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오빠가 계속 고백했다.


“수업을 하고 있는 중에도 한 시간이면 도착할 거라는 생각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어. 나는 애써 모르는 척을 해 볼까 했는데, 결국 오후 수업은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기차역으로 달려갔지. 자전거를 타고, 배낭을 메고 미친듯이 달려갔어.”

“정말 와 있었어요?”

“응. 케임브리지는 관광명소이기도 한 곳이라, 시간마다 열차에서 사람들이 엄청나게 내려. 개찰구를 기웃거렸어. ‘이렇게 저렇게 생긴 동양 여자가 런던 방향에서 온 거, 알아볼 수 있냐고 했는데, 그 날따라 깐깐한 역무원이 들어가서 살필 수 없다고, 방송을 해준다고 하더라. 한국 사람들은 영어 방송 못 알아듣잖아. 나는 마음이 바쁜데, 이 사람하고 싸우기는 싫고. 어째야 되는가 싶었는데, 개찰구로 여자애가 걸어오더라. 나영운이었어. 그냥 방향에 맞춰서 걸어 나온 거였는데, 용케 나랑 타이밍이 맞았던 거지.”

“반가워했겠다.”

“무지하게. 여기 왜 이렇게 사람이 많냐고 하더라. 내가 관광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내 이야기를 차분히 들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 무지하게 신나했지.”

“그래서, 영국의 여자친구가 된 것은 그 날부터?”


오빠는 나를 다시 바라보았다. 고개를 흔들었다. 잠시 멈춘 이야기는 다시 점심식사 데이트 이야기로 이어졌다.


“케임브리지를 보여주기 전에 점심을 먹여야 될 것 같았어. 거기서 별로 안 비싼 레스토랑으로 데려갔는데도 정말 좋아했어. 자기는 맥도날드만 먹었대. 이런 레스토랑에 처음 들어와 본다더라고. 난 그 말이, 여행객이라 레스토랑 같은 걸 잘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어.”

“처음엔 다들 맥도날드만 찾아가서 먹잖아요.”

“그러니까. 그래서 그 말을 하는 줄 알았어. 그래서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가끔 연락하라고 했어. 시키는 거야 뭐, 가르쳐 주면 되는 거고, 나도 어차피 혼자는 레스토랑 안 가잖아.”

“예쁜 여자랑 가면 가도 말이지.”

“음.”

“이거 농담이야. 웃으라고 하는 소리라고.”


오빠는 웃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불편해하지도 않았다. 오빠의 눈은 홀로 케임브릿지를 헤매고 있었다.


“내 실수는 ‘펀팅’(Punting)을 하게 되면서야.”

“펀팅?”

“응. 케임브리지 학교 주변에 운하 있잖아. 거기에 관광객들 상대로 베네치아처럼 나무배를 띄우고 운하를 한 번 돌아주는 코스가 있어. 관광 코스로 인기가 많지. 나는 나영운이 한국에서 온 사람이니까, 케임브리지에 놀러온 기념으로 그냥 시켜주려고 했는데, 그게 나영운에게는 뭐랄까. 내가 능력 있는 사람처럼 보였던 모양이야.”

“하하하. 능력도 있지 뭐. 돈 쥬앙.”

“한 바퀴 운하를 다 돌 무렵이었는데, 곧 내리면 되는데도 무리하게 사진을 찍으려고 했어. 노 젓는 학생이 위험하다고 했는데, 정말 아랑곳하지 않았어. 그러다가, 운하에 빠졌어.”

“누가요? 영운씨가?”

“응. 거기 정말 빠지기 어려워. 나도 당황하고, 가이드도 나룻배를 멈췄어. 우리 둘 다 물에 들어갔지. 깊지는 않았지만, 당황했어. 울더라고.”


그것은 이상호에게 치명적인 장면이었을 것 같다. 물에 빠진 여자, 우는 여자.

나는 모든 게 상상이 되었다. 애처로운 지경의 사람을 그냥 지나보내지 못하는 당신이, 그래서 더 좋아진다고 하면 나는 바보일까. 아무 여자나 보고 도움을 주지 못해 안달하는 당신을 못마땅해해야 여자친구 1일째인 여자로서 제대로 하는 것일텐데. 내가 어떻게 구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 고민하는 동안, 오빠는 잠시 눈을 감았다.


“내 방에 데려다 놓았어. 나는 여자 옷이 뭐가 필요한지 몰라서,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지. 어렵게 여분의 옷들을 구해오고, 샤워를 마치길 기다렸고, 저녁을 먹이고, 런던으로 데려다 줬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겠지. 당신이라면, 그러고도 남았겠지. 오빠는 계속 이야기했다.


“난 사실 그 때까지는 그냥 해프닝으로 끝났다고 생각했어. 이메일은 몇 번 오겠지. 언젠가 영국을 떠나기 전에는 다시 연락한 번 올 수도 있겠지. 그 정도.”

“그런데?”

“다음 다음 날인가, 전화가 왔어. 자기 감기에 너무 심하게 걸렸는데, 약국은 어디 있냐고. 드럭 스토어를 잘 모르는 것 같더라……. 너 어디 사니, 그 근처에 이런 드럭 스토어 못 봤니, 이런 걸 물었는데 잘 몰랐어. 대충 기억나는 슈퍼드럭을 전화로 알려주었는데, ‘알았어’라고 대답하는 목소리가 정말 감기에 걸린 목소리 같았어.”


런던행 기차를 탔겠군. 예상하기 쉬운 당신의 코스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게 밉지 않았다. 나는 모자라는 여자가 분명하다.


“난 드럭 스토어에 들렸어. 감기약, 두통약, 이런 거. 치킨 누들 수프하며 뭐 그런 거 사들고, 자기가 살고 있다는 flat으로 갔지. 감동받은 것 같았어.”

“오빠 감동적이긴 해.”

“나보고 여자친구가 있냐고 물었어.”

“자기가?”

“응. 없다고 했지.”

“이런, 여자친구가 있냐고 묻는 사람한테, 자기는 여자친구가 없다고 말하는 건 ‘네가 내 여자친구가 되어줬으면 좋겠다’는 말이야.”

“아냐, 대답할 때는 그런 의도는 없었어. 나 정말 여자친구 없었거든.”


바보. 고지식한 모범생. 아니,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는 제일 먼저 올라가면서. 나는 흘겨보는 시늉을 했다. 오빠는 멋쩍게 웃었다.


“나한테, 자기가 여자친구가 되어줄 수 있대. 계약을 하자고 했어. 한 달만. 한 달만 여자친구를 시켜 줘보고, 자기가 싫으면 없던 일로 하래.”

“정말?”

“응. 당돌하지? 영국에 온지 5일 되는 감기 걸린 여자한테 프로포즈 받았어.”

“그 때 여자친구가 된 거네?”


오빠는 잠시 나를 보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한달 뒤, 내가 싫으면 아닌 걸로 할 수 있잖아. 그러니까 그 동안은 여자친구 아닌 거 아니야?”

“오빠 진짜 깐깐한데? 이미 된 거지, 나중에 헤어져도.”

“하하하.”


오빠는 웃었지만, 오빠가 다시 이야기를 이을 때는 아주 가느다란 한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오빠의 영국이 정말 궁금해졌다. 내가 모르는 그 시간들을 질투할 자격이 없는 나로서 쿨하게 가만히 들어주기로 마음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쿨한 여자친구라는 게 사실 정말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 계약, 내용이 뭐냐고 물었지. 그랬더니, 그건 나 하기 나름이래. 자기는 나를 남자친구로 생각하고 대할 거래.”

“그건 뭐야.”

“난 아플 때 감동받아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보통의 여행객들이 또 보자고 인사하는 거랑 비슷한 말이 아니었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어. 그 다음 날 키스하고, 그 다음날 처음 잤어.”


나는 침이 꿀꺽 넘어갔다. 도대체 유러피안들은 이 므흣한 이야기를 이렇게 쉽게 꺼내는 특수 과외를 받은 것인가. 나는 내가 괜히 창피해져 볼이 또 뜨거워졌다. 오빠는 나를 바라보았다.


“난 언제부터인지 영운이가 나랑 한 계약이 뭔지, 그래서 그걸 이행해주려면 언제에 맞춰서 여자친구가 되라며 고백해야 하는 건지, 그런 건 다 생각나지 않았어. 영운이가 싫지 않았어……. 솔직히, 믿을 수 없을 만큼 빠졌어. 매주 드나들던 런던이 달라 보이고, 한참을 정신 차리기 어려웠어.”

“그러는 것이 당연할 만큼 아름다운 여자야. 나도 첫 눈에 반할 뻔 했어. 나한테 어렵게 말 할 필요 없어, 오빠.”


오빠의 눈은 또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럴 필요 없었다. 나란 여자, 여자 랭킹 매기는 일에 아주 쿨 한 여자라니까. 나란 여자 이런 여자, 믿어줘요. 나 역시 내 메시지를 전하려고 더욱 초롱초롱한 눈을 해 보였다. 이상하게도 오빠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란 여자 정말 이해심이 이정도로 깊은 여자였단 말인가. 오빠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는 힘없이 계속 이야기했다.


“그런데 나만 그랬던 것 같아. 언젠가부터 나는 빈말만 듣는 느낌이 들었어.”

“누구에게서.”

“만나자는 약속은 약속시간 직전에 취소되고, 영운이한테 연수 프로그램에서 내 주는 숙제도 많아지고, 연수 프로그램에서 영운이가 1박 2일로 가는 아웃팅 프로그램도 매주 이어졌어. 나는 늘 약속을 믿고 기다렸고, 영운이는 늘 일이 생겼어. 영운이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이 꽤 오래되었어. 그래도 나는 그 말들을 모두 믿었어.”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오빠가 나를 바라보았다. 오빠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다, 식당 사장님이 그러더라고. 유학생 중에 한국에서 유명한 집, 부잣집 아들이 있는데, 영운이랑 주중에 시내에서 데이트하는 걸 몇 번 봤다고. 난 믿지 않았어.”

“어머.”

“그런데 그 말은 믿었어야 했어. 나와 매일같이 만나던 것은 이미 옛날 일이었는데도 나는 우리가 이상하게 변했다는 거 눈치를 못 챘어.”

“정말 cheating했어? (바람피웠어?)”

“어느 금요일 밤, 작정하고 전화를 했어. 식당을 예약했다고 오라고 했더니. 온다고 했어. 시간이 되어 전화를 했는데 안 받더라. 나는 그날 런던, 그 flat으로 달려갔지.”

“현장을 잡았어?”

“응. 10시 반이었나? BMW에서 내리는 영운이를 봤어. 차에서 내린 남자는 나보다 어려보이는 한국 남자였어. 나는 정말 변태처럼, 맞은편 보도블럭에서 그걸 보고 있다가, 영운이네 flat으로 올라가려고 했어.”

“근데.”

“남자가 따라 올라가는 거야.”

“어머.”

“그게 나와 나영운의 런던 생활의 끝이야.”

“뭐야?”

“정말이야.”

“아니 그걸 그냥 둬? 가서 죽여놨어야지.”

“영운이랑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 내 친구가 사는 보머스(영국의 남부지방)의 해변 이야기를 했더니 영운이도 가고 싶어했어. 함께 여행하자고 하더라. ‘샌드뱅크’라는 해변이 있거든, 여름에도 여전히 추운 곳이지만, 아름다운 곳이야. 난 조금 많이 기대했어.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중이었지, 연락이 안 되는 이유를 알아볼 생각은 못했고. 바보 같이 기다렸어. 왜 안 되는지 한 번 묻지도 못하고.”

“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생각났다. 오빠는 나를 처음 만났던 기차에서, ‘바르셀로나를 함께 여행 하자’는 나의 빈말 인사에 ‘빈말로 온다는 사람을 마냥 기다리는 것은 내 몫인가’라며 깐깐하게 따져 물었다. 그 때 나는 그의 진중함을 괜한 오버라며 비웃었다. 안 그래도 되는 일을 어렵게 대하는 태도, 놀려주고 싶었다. ‘사육신 코스프레’라며 혼자 우습게 봤다. 그것은 자기 방어였는데, 다친 상처를 또 다칠까봐 자기를 보호하려는 노력이었는데, 우습게 봤다. 미안했다. 그리고, 화가 났다. 일 년 어학연수를 온 나영운은 도대체 몇 명과 계약연애를 한 것일까. Flat에 올라갔다는 BMW의 남자는 지대범이 아님이 분명하다는 것이 억울했다. 오빠를 바라보았다.


“나중에 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그랬더니 영운이는 웃으면서 말했어. 내가 계약을 갱신한 적 없지 않았냐고. 한 달 뒤에 프로포즈 안했기 때문에 자기는 끝난 줄 알았데. 그냥 두 번 잔 걸로 자동으로 자기랑 사귄다고 생각했냐고. 나보고 그런 일은 한국 사는 한국 남자도 안 하는 일이래.”

“갈아탔구나, 세상에.”

“나보고 좋은 기억만 가지게 도와 달랬어. 나는 그냥 런던에 적응하던 시절, 공짜 저녁이나 사주고, 관광지나 가이드 해 주던 좋은 오빠라고 기억하고 싶대. 지금 이 남자는 자기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 같대. 나한테 자기를 정말 좋아하냐고, 자기를 한국에서 영국으로 데려와서 살 자신이 있냐고, 이도 저도 아니면, 좋은 추억으로 남기라고 하더라.”

“어떻게 그래. 어어어어? 얄미워!”


나는 나영운의 화려한 행적이 어디까지인지를 아는 것보다 오빠의 마음이 너무너무 궁금했다. 다치진 않았을까. 오빠는 정말 그 싸구려 계약 연애를 진짜 발전시키고 싶었을까. 나는 안다. 혼자 키워진 모진 사랑은 열 배 더 큰 상처로 남는다. 오빠도 나처럼 다친 게 아닐까. 나영운은 멀쩡한데 오빠만 다친 게 아닐까. 나는 속이 상했다. 오빠가 나를 바라보았다. 오빠가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늠름한 척 웃으며 대답했다.


“생각해보면 그게 맞는 말이야. 나는 데이트라고 생각하고 내가 계산 할 때, 영운이에게는 그냥 공짜 저녁일 수도 있었어. 나 혼자 데이트라고 생각하고 보여줬던 뮤지컬은 관광 가이드가 주는 공짜 이벤트일 수도 있었고.”

“오빠, 나 속상해.”

“그래서 나는 다시는 한국 여자랑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어. 이 말은 내가 한 번 한 적 있는 것 같아.”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속이 상했다. 이것은 너무 억울한 이야기다. 우리 오빠는 완전히 나영운에게 홀딱 빠져있었구나, 그리고 끔찍한 상처를 입었구나. 나는 질투가 나야 하는 이 상황에서 오빠가 얼마나 마음을 다쳤는지가 몹시도 걱정되었다.


“영운이가 지난달에 어학연수가 끝난다는 소식을 듣고, 런던에 가기 싫어서 바르셀로나에 와 있었어. 한 달이나 지나면 한국으로 돌아가겠지, 이제 가겠지, 돌아오지 않겠지 싶어서.”

“그런데 만났구나, 세상에…….”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좋아하는 여행지인 줄 알았으면 여기 오지 않았을 거야.”

“오빠, 나 한 가지 더 질문해도 되?”

“뭐든.”

“오빠는 아직 그 여자가 생각나?”

“지원아.”

“솔직하게 말해줘. 난 쿨하다니까.”


오빠는 내 손을 잡았다. 내 눈을 바라보는 오빠의 눈은 아름다웠다. 나는 오빠의 따뜻한 손이 나에게 어떤 상처를 주게 되더라도 저 눈만은 미워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누구도 너한테 쿨한 여자가 되라고 강요하지 않아. 쿨하지 않다고 소리쳐도 나는 지원이한테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어.”

“오빠가 전에 만난 여자를 사랑했는지 내가 시비를 걸사람 같아? 난 말이야……, 아까 나를 당장 여자친구라고 소개하지 않았던 것이 서운했었어. 그거하고, 오빠가 나를 만나기 전에 그 여자를 먼저 만났던 거하고는 다른 문제야. 오빠는 나를 여자친구라고 선택한 거 아니야?”

“지원아.”

“나 바보라고 해도 좋아. 오빠, 나는 오빠를 편하게 해주고 싶어. 오빠가 안 다쳤으면 좋겠어, 그 이쁘장한 나쁜 년은 멀쩡한데 오빠만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면, 나 정말 속상할 것 같아. 오빠는 그렇게 다치기엔 너무 좋은 사람이니까. 내가 오빠를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다치는 게 안타까워. 그래서 속상해.”


오빠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오빠는 조금 젖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고마워.”

“그런 말은 이제 그만하라며.”


그것은 진심이었다. 그것이 ‘러브 스토리’라는 케케묵은 옛날 영화의 명대사인 것은 나랑 상관없는 일이다. 그것은 오로지 내 진심이었다. 나는 당신이 좋고, 당신이 아픈 게 싫다. 그래서 당신을 아프게 한 그 여자가 밉다. 뭐, 이런 간단한 논리에 감사할 일이 있는가. 내가 당신이 좋다는데, 내가 좋아서 속상해하겠다는데, 당신이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스타일 확 구겨지도록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오빠에게 고개를 저으며 열변을 토했다.


”나는 바보 맞나봐. 이럴 때는 화내는 척도 하면서 오빠를 길들여야겠지? 그런데 그렇게 못 하겠어. 그 여자한테 마음 다친 이야기만 안했어도 나 엄청 바가지 긁을 수 있었는데, 왜 나를 당당하게 새 여친이라며 소개하지 않냐고, 나도 막 따지고 그럴 수 있었는데, 오빠가 선수 쳤어. 나빴어.“

“…… 지원아, 넌 어디 있다가 이제 와 줬니.”

“나? 서울에서 왔지. 헤헤.”


나는 오빠의 손목을 잡았다. 아까의 나 여사가 생각났다. 도톰하고 뽀얗던 지대범의 손목을 쓰다듬어주던 나 여사를 따라하며 나도 오빠의 멋진 남자 손목을 쓰다듬어보았다. 각진 뼈마디가 따뜻하다. 나는 어떻게 이렇게 한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게 된 걸까. 신기하다. 신기하다.


“오빠.”

“응?”

“우리 커플 여행하자.”

“뭐?”

“내가 남자와 유럽에서 사랑의 여행을 가게 된다면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은 아니지만, ‘몬세라트‘를 이번 기회에 가는 게 맞을 것 같아. 나 여사가 지대범을 ‘자기’라고 부르는 걸 보면, 그 부잣집 아들하고도 또 계약이 끝났다는 거 아니야? 오빠도 마음의 짐을 풀어.”

“지원아. 나 때문에 그럴 필요 없어.”

“오빠. 이것은 나 때문이야. 오빠가 바르셀로나에서 내 전화받자마자 택시를 잡을 때, 오빠가 좋아서 했다며. 나도 그래. 나 오빠한테 뭔가 잘 해주고 싶어.”


오빠는 가만히 웃었다. 뿌듯하다. 보람차다. 당신의 미소는 나를 춤추게 한다. 나는 더 신나게 말했다.


“그 아줌마한테 끝내주게 후회되도록 열 받는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

“어떻게.”

“나랑 오빠를 커플 세트로 보여주면 되지. 커플티 살까?”

“하하하.”


오빠의 웃음소리는 가열찬 찬성은 아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이것은 나를 위한 옵션이었다. 나 여사, 당신은 이제 아니올시다, 안녕을 외치시오. 뭐 이런, 일종의 영역표시다. 오빠가 당신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남자라는 것, 보여주고 싶었다.


“바보.”

“히히.”


오빠는 손을 잡았다. 나도 오빠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또 그렇게 오래도록 악수를 하며 손을 출렁였다. 나는 그렇게 오빠와 몬세라트의 커플 여행을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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