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사랑의 도시, 바르셀로나

by Nima

이 길을 도대체 어떻게 온 것일까. 그것도 벌써 이 길을 서너 번의 왕복했다니. 역시 사람이 아니라 천사였나.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는 맘 먹고 바로 떠나기엔 어려운 구간, 완전히 다른 나라로의 여정이었다. 바르셀로나로 가는 야간버스에 올라탄 나는, 내가 오빠를 천사로 오해했던 순간이 순전히 '착각'은 아닐 것만 같았다. 초능력 없이는 이 길을 그렇게 달려올 수 없다. 오빠는 ‘벨라’를 등에 업고 산을 휘젓던 흡혈귀, '에드워드'의 친척일지도 모른다.


놀라겠지? 처음 보면 뭐라고 할까.

창 밖은 어둠뿐이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버스 옆을 지나가는 다른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뿐이었지만, 나는 칠흙 같은 어둠속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이 천릿길을 한 걸음에 달려가려는 두 사람을 남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객지에서 고생하는 여자를 모르는 척 하기 어렵웠던 오지랖의 남자.

내일 아침의 출석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이 홍길동 흉내를 내는 여자.

둘은 과연 어떤 이유로 서로를 위해 기꺼이 이 소동을 마다하지 않는 것일까. 상대방 역시 내가 싫지는 않다는 분위기를 파악하고서 안전하다고 느껴서일까. 상대방의 긍정적인 반응이 보장되니까 큰 맘 먹고 패를 던지는 걸까, 내가 한발짝 다가서도 대답 없이 도망갈 걱정은 없다는 안도감에.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내가 기꺼이 이 길을 달려가는 것은 저항할 수 없는 그 '무엇'때문이다. 오빠의 세레나데를 수화기로 전해 듣고, 그 길로 여행 가방을 꾸려버린 나에게는 단지 오빠가 나를 매몰차게 내쫓지 않을 거라는 안전성만 이유가 된 것이 아니었다.


L.A Confidentail 이었던가. 무엇에 홀린 듯 당신의 뒤를 따라왔다며 고개를 숙이던 러셀 크로가 생각난다. 그런 러셀 크로에게 킴 베이신저는 자기의 침실 문을 열어주었다. 러셀 크로는 'Why me? (왜 나냐?)'고 되물었다. 그 때 킴 베이신저는 고개를 흔들었다. 'I don't know.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새삼 그 장면이 너무 이해가 되었다. 이러고 있는 내 자신은 오빠를 만나러 가야 한다는 데에는 확신에 차 있지만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Llego, llego (다 왔어요.)”


옆 자리에 앉았던 오지랖 넓은 아랍 아주머니가 저도 안 되는 스페인어로 나에게 다 왔다고 알려줬을 때는, 이미 아침이었다. 바르셀로나의 겨울 아침은 진심으로 눈이 부셨다. 햇살이 쏟아지는 버스 터미널을 둘러싼 가로수를 보자 나는 잠이 깰 수밖에 없었다. 가로수들이 무려 '야자수'였다. 세상에, 나는 마드리드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당도하고야 만 것이다.


“Gracias. (감사합니다)”


나는 오빠가 써 준 주소를 찬찬히 짚었다. 상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근처. 백여 년을 계속 짓고 있다는 기괴한 성당은 바르셀로나의 상징이지. 이것도 교과서에서 정말 많이 봤다. 그 유명한 성당 이름의 지하철역에 큰 동그라미가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 근처라면 어디에 살든 내 힘으로 찾아 갈 수 있을 것 같다. 일곱 시간 넘게 밤 버스에 앉아 잠을 설쳤음에도 불구하고 내 발걸음은 그야말로 새털같이 가벼웠다.


“히히히히.”


오빠가 놀랄 얼굴을 상상하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핀잔을 좀 주겠지, 그래도 난 오빠를 보면 안아줘야지. 그렇게 허탈하게 돌아간 사람을 한 번 안아주지도 않으면, 그것은 '얼음 심장' 아닌가. 나는 따뜻한 포유류니까 두 번 안아줘도 된다.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느 도시에나 있는 평범하고 낡은 지하철을 타면서도 마음이 설레어 주체를 할 수가 없었다. 무슨 정신으로 걸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아름다운 벽돌건물들을 가로질러 오빠가 산다는 작은 아파트의 주소를 찾았다는 사실이었다. 꼬불꼬불한 그 골목 속으로 걸어가는 동안 나는 즐거운 고통에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초인종이 보였다. 초인종을 눌렀다. 내 심장은 튀어나오기 직전이었다.


[딩동]

“Maria? (마리아?)”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룸메이트가 있다고 했지. 오빠는 내게 룸메이트의 이름을 알려줬던가. 나는 바짝 얼어서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문이 열렸다. 부스스한 머리의 금발 남자가 문을 열었다. 이 집이 아닌가? 나는 오빠가 적어준 종이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남자는 나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Yo soy ……, Estella, amiga coreana de, (에스텔라라고, 한국인 친구)“

“Ah, su novia, adelante, adaelante. (아, 걔 여자친구, 들어와, 들어와.)“


'너가 걔 여자친구냐'라는 말을 하던 남자는 '스페인 사람'같지는 않았다. 큰 키에 밝은 금발. 하늘빛 눈동자는 스페니쉬 남자들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부스스한 머리는 그가 직전까지 어딘가에서 누워 있었음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부리나케 안경을 찾아 끼우며, 어색하지만 나를 보고 겸연쩍게 웃는 그 남자는 내가 들고 있던 종이를 한 번 보더니 나를 향해 웃었다.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선한 미소 하나만으로 누구의 친구인지 나도 잘 알 것 같다. 나도 그를 향해 되도록 착한 표정으로 웃었다.


“Soy, Yolly. (난 욜리라고).“

“Hola, soy estella. (저는 에스텔라라고 해요.)“


부산하게 들어오라고 손짓하던 그는 갑자기 바빠졌다. 내가 방해가 되었겠구나. 시계를 보았다. 터미널로부터 한 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아직은 9시였다. 나는 그에게 나를 신경 쓰지 말라고 해야 했다. 뭐라고 말해야 하더라. 무슨 말을 해야 하더라. 오빠가 올 때까지 거실에서 좀 자면 좋겠지만, 초면에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걸까. 그런데 욜리는 이미 옷을 챙겨 입었다.


“Estaré de vuelta prontito. (금새 갔다 올게요.)“

“A donde? (어딜요?)“

“No te preocupes nada. (아무걱정 하지 마세요.)“


금발의 남자, 욜리는 나만 두고 아파트를 빠져나갔다. 내가 누구라고 나를 믿고 저렇게 미끄러지듯 집을 빠져나가는 것일까. 천천히 소파에 앉았다. 바닥에 뒹구는 맥주병들은 이 집에 남자들만 산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일어나 병을 좀 치워보기로 했다. 작지만 악기가 가득한 이 집은 주인이 없어도 낯설지 않았다. 나는 조심조심 부엌으로 걸어갔다. 통조림 올리브 캔이 반쯤 열려 있어서인지 새콤한 냄새가 온 부엌을 덮었다. 나초 부스러기가 뒤덮인 식탁을 쓰다듬어보았다. 여기서 오빠가 저녁을 먹겠구나. 문득 오빠 방이 보고 싶었다.


봐도 되는 걸까. 어느 방이 오빠 방일까. 이렇게 움직이다 오빠를 만나면 나는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 내 머리와는 달리 내 발걸음은 반쯤 문이 열려 있는 하늘색 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빼꼼히 보이는 저 파란 시트가 오빠의 침대일까. 나는 두 세 걸음만 더 가면 하늘색 문을 열 뻔했다. 그 때였다. 갑자기 조용한 오전의 아파트 현관에 두 장정이 뛰는 소리가 가득했다. 오빠가 온 것 같았다.


“지원아.“

“오빠.“

“rapido como relámpago, (번개처럼 빠르다니까.)“


문이 열리자 오빠가 보였다. 오빠도, 욜리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반가움이라는 말만으로 이 기분을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 했다. 오빠도 내 눈 앞까지 달려와 놓고 거친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아무 말도 못 하며 얼음같이 버썩 얼어버린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는 욜리가 말했다.


“No besos? (야, 너네 키스 안 해?)“


하하하. 하하하. 나는 욜리를 보고 웃었다. 오빠도 욜리를 보고 웃었다. 욜리도 우리를 보고 웃었다. 우리는 그렇게 바보들처럼 서로 쳐다보고 웃으며 꽤나 서 있었던 것 같다.


**


어색하지만 뭔가 뿌듯한 발걸음으로 우리는 바르셀로나의 거리를 함께 걷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고개 한 쪽을 땅으로 꽂을 듯, 비스듬하게 걸었다. 하지만 누가봐도 슬금슬금 오빠 옆으로 다가가 걸으려고 했다. 아침 7시부터 지금까지 당신을 기다리면서 설레어했다는 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 나는 '이상하게 꼬였다'는 스쿠류바 선전처럼 온 몸을 베베 꼬며 슬금슬금 걸었다.


아까 욜리는 정말 농담을 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를 가리키며 세 번이나 'beso' (키스)를 노래한 덕분에 우리는 욜리 앞에서 진짜 '뽀뽀' 했다. 욜리는 그제야 만족한 듯 자기는 더 자겠다고 방에 들어갔다. 원래 욜리도 오빠와 같이 수업에 갔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전날 과음했다며 잠을 더 잔다고 집에서 자고 있었다는데, 아침 청소 아주머니인 '마리아'대신 불쑥 나타난 동양여자를 보고는 한걸음에 오빠네 클래스로 달려왔다고 했다. 아마, 요사이 밤마다 먼 길을 떠나던 룸메이트가 어디를 나다니던 것인지 짐작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같은 생김새의 같은 종족 여자를 보고 모든 것을 알아채 주다니, 욜리는 눈치가 빨랐다. 욜리가 오빠를 데려와 주지 않았다면, 나는 어떤 하루를 보냈을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바르셀로나에서 내가 고마워할 사람은 '욜리' 만이 아니었다. 오빠와 수업을 하시던 교수님께서는 욜리가 부산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오빠에게 'Buena Suerte (잘 해봐, 행운을 빈다.)'라고 말하며 집으로 보내줬다고 했다. 행운은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그 말이 너무 웃겼다.


온 동네가 이렇게 성원해주는데도 불구하고, 오빠는 바보처럼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아까의 'Beso'는 ’키스‘도 아니었는데 말이지. 그거 한 번 했다고 우리는 이렇게 '내외'하고 있다니. 하긴 나 역시 쿨한 척 하기가 어려웠다. 내 평생 그 어떤 딥 키스보다 짜릿한 인사긴 했지. 그래서 나 역시 말없이 걷기만 했다. 거리의 풍경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 둘 앞에 횡단보도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건너지 마, 위험해.“


다급히 내 팔을 잡고 선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나는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오빠의 얼굴, 오빠 역시 웃는 얼굴이었다.


“에? 유럽은 다 막 지나가잖아요.“

“여기는 파리랑 달라, 사람들이 얼마나 급한데. 빨간 불에 건너다간 정말 다쳐.”


나는 내 팔을 잡고 있던 오빠의 손을 잡았다. 오빠를 바라보았다. 좋았다. 이 순간, 이 자리에 당신과 이렇게 서 있을 줄 몰랐다. 나는 이 순간이 너무 좋다. 두 팔을 벌렸다. 오빠가 웃었다. 나는 오빠를 향해 두 걸음 더 다가갔다. 내 두 팔로는 절대 다 둘러 안을 수 없는 사람, 꼭 안아주어도 새어 나가버릴 것 같은 이 묘한 남자, 우리는 그렇게 부둥켜안고 횡단보도 앞을 다 차지하고 서버렸다.


“바보, 수업 빼먹지 말라고 그렇게 말 했는데.“

“히히히히.“

“말 안 듣는 아가씨. 잘 있었어?“

“히히히히.”

“뭐 타고 왔어?“

“버스, 히히.”

“안 피곤해?”

“히히.”

“계속 ‘히히’라고만 할 거야?”

“히히히히.”

“아가씨 이름이 ‘히히’구나.”


오빠는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포근하다. 반가운 검은 코트자락이 얼굴에 닿았다. 거친 모직이 피부에 닿았지만, 그것도 좋았다. 나는 오빠와 함께 있다.


“오늘 아가씨는 어디를 가든 좀 피곤할거야.“

“왜요?”

“욜리 덕분에 ‘히히 아가씨’는 오늘 바르셀로나에서 제일 유명한 여자가 되었어. 우리 클래스 모두가 어떤 여자가 나를 보러 이 아침에 바르셀로나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오늘 바르셀로나를 활보할 때 누군가가 너를 아는 척 한다면 우리 수업 친구들일거야. 그 때는 놀라지 말고 그냥 인사해.“

“히히히히.“

“정말 반가운 웃음소리야. '히히히'.“

“웃음소리만 반가워요?“


나는 고개를 조금 들며 물었다. 물어서 무엇하랴. 당신은 나와 신호등이 된 것처럼 이렇게 안고 서있는데. 나는 대답을 들으려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범생, 상호씨는 굳이 대답을 하려고 했다.


“아, 그렇지 않아.“

“빨리 나 반갑다고 말해.“

“반가워.“

“잘 왔다고 말해.“

“잘 왔어.“

“말만?“


오빠는 팔을 풀었다. 나를 바라보았다. 바르셀로나에서 처음으로 우리는 눈을 마주보았다. 좋다. 나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내 본능을 따라 야자수를 한 겨울 가로수로 심어둔 바르셀로나에 왔다. 오직 당신을 만나러. 나는 오빠의 팔에 매달렸다. 오빠의 팔은 너무도 든든했다. 그런데 이 오빠는 일단 바르셀로나의 여행 가이드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어디 갈까, 뭘 보여줘야 잘 보여주는 게 될까.“

“가브리엘 천사님, 난 가우디는 싫어요.“

“하하하하. 바르셀로나와 가우디 건축을 분리해주다니 고마운데?“


오빠와 나는 아무 이유 없이 깔깔 웃었다. 눈만 마주쳤는데 자꾸 새어나오는 웃음,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나는 자꾸 당신이 좋다. 이 순간이 너무 좋다.


“가우디 빼고 다. 가우디 빼고 다 좋아요. 어딜 가지?”

“난 네가 정말 갑자기 이렇게 바르셀로나에 올 줄은 생각을 못했어. 어디를 갈까."

“몬주익은 멀어요?“

“몬주익? 몬주익 힐?“

“한국 사람은 몬주익을 가야지. 황영조가 금메달 딴 데, 히히히.“

“그래? 그거 뭔데?“


아뿔싸. 오빠는 몬주익과 황영조를 몰랐다. 나는 신이 났다. 잘난 척할 기회가 생겼다.


“마라톤 몰라요? 아니 아무리 코스모폴리탄도 올림픽은 볼 거 아니야. 가요! 내가 알려주지.“

“황영조, 인기 있는 마라토너인가봐?“

“인기인이라기보다 옛날 우리나라 영웅이죠.“

“영웅?“

“흠, 그럼, 손기정은 알아? “

“아니.“

“오빠는 그럼 몬주익이 재미없겠다. “

“아니야, 괜찮아. 근데 몬주익은 원래 케이블카 타러 가는 것 같아. 관광지 인 것은 알고 있었어.“

“몬주익에 케이블카가 있었나? 완전 좋아! 아싸, 케이블카 타러 간다. “

“하하하하, 좋아.“


황영조를 몰라도 몬주익에서 할 일이 있다니, 우리는 소풍가기로 한 유치원생들처럼 깔깔거렸다. 깔깔깔. 히히. 하하. 호호호호. 내 웃음소리가 어제의 마드리드와는 완전 다른 바르셀로나의 하늘에 이 아침에 울려 퍼질 줄이야. 인생은 살아봐야 한다. 내 인생의 한 치 앞은 알 길이 없지만 나는 너무 신나버렸다.


사실 바르셀로나는 곳곳이 '가우디'였다. 도시 구석구석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흔적이 남았고, 그 덕에 먹고 사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하지만, 이 도시가 '가우디'만으로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기괴한 모양새의 가우디 건축물이 아니더라도 바르셀로나에는 무엇인가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혹자는 바르셀로나가 스페인 전체에서 제일 부유한 지역이기 때문에 돈 냄새가 많이 나서 그럴 거라고 했다. 스페인 금융의 반 이상이 바르셀로나의 자본으로 돌아간다고 했고, 한 번 쏘는 것만으로 1억이 든다는 그 유명한 바르셀로나 분수는 겨울에만 멈출 뿐이었으니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 같은 것은 내게 필요 없었다. 나는 묘하게 이국적인 이 아름다운 거리를 오빠와 함께 걷고 있었고 우리는 몬주익 언덕에서 케이블카를 탈 것이므로. 나는 웃음을 참지 않기로 했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무색하게, 오렌지 빛마저 감도는 따스한 햇빛은 몬주익 언덕의 입구에도 가득했다. 우리는 버스에서도 케이블카이야기만 했다. 둘 다 공휴일에 어린이공원이라도 가는 사람들처럼 한껏 들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그 놈의 몬주익 언덕에 도착하자 우리를 맞이한 것은 복작대는 케이블카가 아니었다. 줄이 늘어져 있어야 하는 케이블카 입구는 유령이 나올 것 같았다. 아무도 없이 낙엽이 뒹구는 입구 앞에, 검은 베레모를 쓴 노인이 웃으며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케이블카 타러 왔구나.“

“……네. 아저씨는 누구세요?“

“몬주익 언덕 10유로(Euro)에 가줄게. 내 택시를 타.“

“뭐라고요? 케이블카는 오늘 안 하는 거예요? “

“이 사람들아. 월요일은 케이블카 운행 안 해. 오늘은 내 택시 말고는 언덕 위로 갈 수 없어. 택시로 가는 데 10유로(Euro), 저 케이블카 요금표를 봐, 10유로(Euro)면 안 비싼 거야. “


오, 그 순간의 실망감이란.

안 비싸면 뭐하나. 우리의 첫 번째 데이트는 케이블카를 타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사람 없는 매표소 앞에서, 우리는 화난 아이들처럼 죄 없는 택시 운전자, 베레모의 노인에게 월요일부터 운행을 안 하는 케이블카라니 말이 되냐며 따지고 들었다. 노인은 지치지도 않고 어깨를 들썩이며 흥정했다.


“두 명에 10유로(Euro)면 아주 싼 거야. 어차피 걸어 올라갈 수는 없어.“

“지원아, 택시라도 탈래?“


남산만큼 나와 있던 내 입이 쏙 들어간 것은 오빠가 미안해죽겠다는 표정으로 내게 택시를 탈것인지 물었을 때였다. 그래. 내가 왜 오빠로 하여금 또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도록 해야 하는가. 나는 발랄하게 끄덕거렸다.


“좋아, 좋아!! 타자!!“


베레모 할아버지도 신이 났다.


“아가씨, 좋은 생각이야. 어서 타라고.“


우리는 붉은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나간 오래된 택시를 타고, 햇살이 쏟아지는 몬주익 언덕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황량한 길 한가운데 택시가 멈춰 섰다. 베레모 기사님은 오빠가 10유로(Euro)를 쥐어 주었는데도 몸소 택시에서 내렸다. 바르셀로나 전체가 제일 잘 보이는 위치를 찍어 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택시가 멈춰선 자리에서 몇 걸음 움직이자, 바다가 보였다. 바르셀로나가 항구도시였던가. 언덕 너머에 보이는 곳은 아름다운 항구였다. 나는 잠시 넋나간 사람처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가 베스트 뷰야, 바르셀로나의 베스트 뷰. 나란히 서 보라고. “


사람이라고는 우리뿐인 그 베스트 뷰 자리에서 노인은 신이 났다. '여기에 서라, 조금 더 와라' 난리를 부리더니, 마지막 서비스로 우리 둘을 '베스트 뷰' 에 세워두고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했다.


“카메라 없어?“


노인이 물었다.


“지원아, 카메라 가져 왔니?“

“아뇨.“

“나도 없는데……, 우리 카메라 없어요.“

“어떻게 카메라 없이 여행을 오니. 바르셀로나가 얼마나 아름다운데, 너희는 그냥 가려고 하니?“


오빠는 조금 머뭇거렸다.


“이것도 될까?“

“사진은 나오겠네. 그거 줘 봐요.“


오빠는 할아버지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할아버지는 반색했다.


“아이폰, 아이폰 굳, 굳.“


황영조를 모르는 오빠와, 황영조 빼고는 몬주익을 모르는 나는 그렇게 '최초'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우리의 첫 번째 데이트 코스는 사람이라고는 우리와 택시 기사 할아버지 밖에 없었지만,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 한 장이 증거로 남았다. 햇살이 쏟아지는 바르셀로나의 하늘을 배경으로 닿을 듯 반듯한 어깨를 나란히 두고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 한 장이 우리가 함께 찍은 유일한 사진이었다. 한달 가까이 오고 가며 만난 우리는 그 사진 한 장 없으면 판타지 속에 사는 인물들이 될 뻔 했다.


**


우리는 몬주익 언덕을 걸어서 내려왔다. 택시가 보이면 그걸 잡아타기로 했지만, 케이블카가 쉬는 날이라 그런지 택시도 안 보였다. 그래도 같이 걷는 그 길은 고행길이 아니었다. 내리막길은 어렵지 않았고 마냥 걷기에는 아까울정도로 아름다운 벽돌길이었다. 곳곳에 볼거리였다. 야자수, 분수, 그리고 고양이들. 오빠와 나는 우리를 귀찮아하는 야생 몬주익 고양이들 덕분에 고양이 눈치를 보며 터벅터벅 언덕을 걸었다. 몬주익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나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오빠, 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뭔데?”


Why me?

모른다고 대답해도 다 알 수 있는 그 부질없는 질문, 갑자기 해보고 싶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쿨하게 묻기로 했다.


“마드리드 민박에서 쪽지만 써 놓고 갔잖아요.”

“응.”

“Al cala에 세레나데를 불러주겠다고 왔잖아요.”

“응.”

“왜 그랬어요?”

“하하하하.”


오빠가 멈춰섰다. 나는 덩달아 멈춰서긴 했지만, 오빠를 쳐다보진 못했다. 또 몸을 베베 꼬기로 했다. 스쿠류바로 변신한 나를 바라보며 오빠가 가만히 웃었다. 오빠는 길 가의 벽돌 담장에 걸터앉았다. 나는 바닥을 보며 말했다.


“너무 궁금해.”

“음.”

“세고비야에서는 아무 말도 안 해놓고. 난 그날 그렇게 차이고 끝나는 줄 알았어.”

“하하, 왜 차였다고 생각했지?”

“결정적인 타이밍에 아무 말도 없으니까.”

“음.”

“음 말고 말을 해.”

“하하하하하하.”


오빠는 또 웃었다. 웃음으로 때울 생각 마시오, 나 갑자기 완전 알고 싶어졌어요. 나도 담장에 걸터 앉았다.


“많이 고민했어.”

“왜?”

“간다고 할 거잖아. 넌 서울로 돌아갈 거니까. 지금 내가 이러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어서. 고민하다가 아무 말도 못했어. 말 하면 뭐하나 싶어서.”


나 역시 같은 것을 고민했다. 우리는 이제 보면 언제 볼지 모르는 사이이므로, 내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다. 그리고 내가 서울로 돌아간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우울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돌아가긴 할 건데. 뭐가 달라졌길래 그렇게 달려 온 거야?”

“음. 세레나데의 이유.”

“응.”

“지원이는 늘 답을 원하는 학생이군. 마드리드에는 왜 도와주러 왔니. 기숙사에는 왜 왔니.”


오빠는 나를 보고 웃었다. 나는 여전히 이상하게 꼬인 스크류바같았지만, 의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금전거래는 확실하게, 남녀문제도 확실하게, 시작을 알리는 기산점을 명시하고 끝을 알리는 종료일을 합의해야 한다. 그것이 나를 더 이상 다치게 하지 않는 불멸의 안전장치다. 나는 계속 참을 수 없다는 얼굴로 오빠를 바라보았다.


“응. 난 차인 여자를 만들어 놓고 기숙사로 쳐들어왔으니까 나도 알 권리가 있다고요.”

“음.”


오빠는 선량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세고비야에서 돌아오고 얼마 안 있어서 너한테서 소포가 왔어. 난 소포에 현금이 들어있는 것을 처음 보았어. 400유로(Euro)를 빌려주고 800유로(Euro)를 소포로 받았어. 2배 남는 장사를 했더군.”


아, 기억난다. 나의 오지랖 소포. 엄마로부터 카드가 도착하자 나는 오빠에게 돈을 부치고 싶었다. 내게 선심 쓰느라 탕진한 돈이 그의 학비라는 생각에 그 돈을 그냥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계좌 송금, 인터넷 계좌 이체의 나라에서 온 나로서는 이놈의 돈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방법은 하나였다. 신용카드로 돈을 뽑는다, 돈을 소포로 부친다. 그것은 원시적이지만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 편하자고 하는 일이었다. 돈은 엄마 돈이었다.


“돈 소포가 결정적인 큐피트가 되다니.”

“아니야.”

“맞구만, 뭐.”

“나 다른 한국 여자들한테도 돈을 준 적 있어, 지갑을 잃어버렸다던가, 표를 사야하는데 돈이 부족하다던가, 당장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여럿 만난 적 있어. 물론 너한테 줬던 400유로(Euro)가 내 기록의 맥시멈이긴 한데.”


오빠는 다시 선량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런데 돈을 소포로 부친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세고비아 기억나니? 길 가다 지갑을 주웠다고 생각할 수 없냐고 물었지?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가버리면 그만이던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은 거였어.”

“돈 안 보냈으면 나를 안 만났을 수도 있겠네?”


내가 돈을 안 잡아 먹어 보이니 마음이 놓여서 좋았단 말인가. 된장녀 코스프레를 안 할 것 같아 속이 편했단 말인가. 오빠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아니지.”

“그럼?”

“난, 너의 마음씨가 사랑스러웠어. 그냥 운 좋다고 가도 되는데 모르는 척 해도 되는데, 계속 마음에 담아두면서 나에게 정성을 보였잖아. 너처럼 따뜻한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자신 없었어. 지원이 너는 정말 다시 만나기 어려운 사람 같아.”


오빠가 가만히 내 손을 잡았다. 나는 고개를 들지는 않았다. 내 손을 잡은 오빠의 손을 바라보았다. 오빠는 내 손을 조금 더 힘을 주어 잡았다.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제가 먼저 다시 만나자고 신신당부해두고도 돌아가면 그것으로 끝이더라. 나도 이해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각자의 일상이 있는 것이고, 나의 일상속에 잠시 스쳐지나간 사람들이 잠시 미안하고 고마워서 하는 인사들이라는 거 잘 알아. 그런데, 강도를 당했다는 어떤 아가씨는 큰돈을 빚졌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멀리서 계속 내가 잘 지내는가, 오늘은 바람이 차갑던데, 바르셀로나는 어떠한가 안부를 물었어. 그러더니 어머니에게 카드를 받자 큰 돈을 부쳤어. 나는 그 보드라운 마음의 아가씨가 너무 사랑스러웠어.”


오빠는 내 눈을 바라보았다.


“갈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잊으려고 했어. 하지만,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어. 뒤척여도 너 생각에 잠을 잘 수가 없었어. 그래, 지원이가 서울로 돌아가도 어쩔 수 없다, 할 말은 하자, 나도 모르게 날아갔어. 너를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 어딜 가든, 어디에 살든,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꼭 알려주고 싶었어. 기타도 자랑 좀 하고.”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말은 자극적이었다. 오빠가 키스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 온 몸이 간지러웠다. 아무도 듣는 이 없는 이 몬주익의 산책길에서 나는 평생 처음, 호사스러운 칭찬을 듣고 있었다. 나는 오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이유가 필요한가. 우린 이렇게 만났다. 그거면 되었다. 오빠가 일어났다. 그리고 내 팔을 당겼다. 나는 눈을 감았다. 와. 하. 하. 이제 진짜 Beso가 나를 기다리는 순간이구나. 나는 눈을 감고 있으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눈을 뜨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바르셀로나인 전부가 우리를 도와주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돈벌이 하고 싶은 택시 하나가 또 훼방을 놓았다. ‘빵빵’거리는 클랙션 소리와 함께 번개처럼 차에서 내린 기사 아저씨는 눈치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어디로 가고 싶니? 여기 버스 없어!”


오빠와 나는 다시 깔깔거릴 수밖에 없었다. 오빠는 내 어깨를 감싸며 물었다.


“뭐 먹으러 갈까? 배고프다.”

“나도, 배고파.”

“램브라스 거리로 가 주세요.”


우리는 신나게 택시 안으로 몸을 날렸다. 몬주익 언덕을 벗어나는 택시 안에서 램브라스 거리에 이르기까지 오빠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행여 그 손이 떨어질까봐 나도 힘을 바짝 주고 오빠 손을 잡았다. 몬주익은 이제 황영조의 언덕이 아니었다. 그곳은 이제 나와 오빠의 사랑의 언덕이었다.



이전 10화10. 너를 위한 세레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