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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ma Aug 22. 2021

그렇게 보낸 시간은 '나'로 쌓인다.

느릿느릿 그러나 또박또박

오늘 즐거웠던 일은 매번 쩔쩔매며 가던 길을 에어컨을 끄고 뚜껑을 열고도 자연스럽게 운전한 것. 햇빛 없는 날, 불어오던 아침 공기의 감촉덕에 지금까지 행복하다.


오늘 슬펐던 일은 다이소 채칼로 감자를 깎다 두번째 손가락 손톱을 박살낸 것. 남들보다 얇은 손톱이긴 하지만, 그 정도 힘에 두 동강 날 줄 몰랐다. 시큼시큼한 느낌도 싫고 너덜너덜한 꼴도 싫다. 글을 쓰는 지금도 아까의 사고 생각에 아찔하다.


 



손톱 절단은 특히 요즘 내가 제일 신경쓰는 '요리 문제'와 관련이 있다.


 요리 문제라.

써놓고 보니 거창한데, 별 거 아니다. 그간 아무거나 주워먹고 아무것으로나 떼우던 내 생활을 조금 바꿔보려고 노력중이란 얘기다. 특히, 하루에 한 끼는 내 손으로 직접 원재료를 골라 만들어보려고 노력 중이다. 부모님 덕분에 아무 생각 없이 잘 살던 시절에는 세상 호사와 식도락 트렌드에서 우리 집이 뒤쳐진 적은 없었고, 나 역시 1인가구 주제에 마켓컬리 라벤더였다.


그런데, 그 문제와 내 요리 문제는 다른 맥락이다. 나는 제철의, 로컬의, 방부제 없는, 유기농의 무엇을 하나 하나 볼 줄 아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졌다. 완도의 다시마를 추천해주고, 기장의 멸치를 골라줄 수 있는, 좋은 것을 먹이고 먹는 그런 어른 요리를 하고 싶어졌다. 나도 안다. 이것은 바이엘도 못 뗀 학생이 라흐마니노프를 치겠다고 덤비는 꼴이다.


돌이켜보니 최근의 나는 바쁘고 귀찮다는 핑계 덕에, 여즉 삼각김밥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편의점을 하도 드나드니까 회사 사람들이 '김밥도 좋은 걸 먹으라'며 사다주기도 했다. 얼렸다 해동시킨 레디 메이드 스타벅스 샌드위치를 밥으로 먹는 사람. 그 덕분에 1시간만 지나면 빵을 사다 먹기도 했다. 밤이 되면 더 가관이었다. 술 약속 잡고 고기를 먹거나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사오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아, 맥주 한캔에는 생략된 친구들이 있다. 과자 한 봉지, 라면, 샌드위치, 기타 등등.


그러다가 언제였나, 아파트 청약 당첨된 뒤에 알뜰하게, 어찌 보면 꽤나 청교도적으로 본인의 기호식품은 일절 참아내던 아는 동생이 내게 한 말 때문에, 나는 좀 달라지기로했다.


"언니, 너무 50대 아저씨들처럼 막 살지마. 술 마시자고 한다고 몸 안 사리고, 혼자 있을 때는 편의점 샌드위치 먹고. 살만 찌고 남는 것도 없어."


동생은 그야말로 뼈를 때렸다.


그러고보니, 나는 3년전에 비해 15키로 정도 불어나 있었다. 그야말로 '막 살아낸 결과'는 몸에 드러났다. 나는 그길로 허겁지겁 건강하게 먹기로 다짐했다. 요리를 하겠답시고 재료를 알아봤다. 그러나, 그것도 맘 먹는다고 바로 될 일은 아니었다. 잠실 본가로부터 1시간도 안 걸리는 곳에 나와 산지 5년째이건만 나의 오피스텔 짐 속에 조리도구는 없었다. 내 짐들은 전부 옷 신발. 책. 커피와 술이었고, 이삿짐 센터분은 내게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사실 나는 가스도 끊었었다. 좁은 오피스텔에서 요리를 한다고 설쳐대면, 옷 관리를 감당 못할 것 같아서.


요리를 못해도 동생말처럼 좋은 걸 사다 먹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코로나 이전부터 진즉에 '테이크 아웃 포장'을 시도했다. 좋아보이는 샐러드를 사다 들고 집에 와서 먹는 것. 그러나 그것은 지속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가서 줄 서는 것도 귀찮고, 사들고 돌아오는 것도 귀찮았다. 배달이 안되던 샐러드 집은 내 생활반경에서 멀어졌다. 다시 배달의 민족과 친구가 되었다. 나의 생활은 '결혼했다면 있을 수 없을만큼' 불균형적으로 이어졌다.


그런 나에게 스트레스가 찾아온 것은 엉뚱하게도 '1회용 쓰레기'때문이었다.

집에 쌓이는 1회용품들을 매번 정리해서 내다버리다보니, 징그러웠다. 도시락 용기들만 보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다 #제로웨이스트, #살림꿀팁, #재활용, 등등의 해시태그에 노출되었고, 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을 발견했다.


마트를 안 고, 재래시장을 가서도, 이모님들이 꺼내주는 검은 봉다리를 마다하며 본인의 에코백을 내미는 사람들.  남지 않고 썪지 않을 만큼의 채소를 사들고 돌아와 되도록 건강한 방식으로  요리를 하는 영상은 정말이지 충격적이었다. 방부제 없는 피클을 만들고,  키운 바질을 곁들여 먹고는 친환경적인 세제를 가지고 거품 없어도 뽀드득 설거지를 해냈다. 그리고, 각종 요거트 병들을 나란히 세워 양념장 통으로 변신 시켰다. 플라스틱을 애초에 덜 사는 게  환경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고민한 결과라고 했다. 나는 충격 받았다. 뭐 하나 정리한답시고 시작을 하면, 무인양품, 다이소를 털어와 주르륵 수납 도구를 늘어놓던 것이 나였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산 것으로 판명났다. 나의 시간을 돌이켜봤다. 도대체 뭐 부터 해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내온 시간에 대한 자괴감과 야무진 유튜버 모두 성공한 유부녀라는 점에 대한 부러움에 갈피를 못 잡던 나는 '영험한 유튜브의 알고리즘' 덕분에 간단한 요리 튜터링 영상들로 인도 받았다. 하나의 식자재를 가지고 야무진 한끼를 만드는 것은 수고스럽고 에너지가 필요한 일들이었다. 씻고 굽고, 다시 설거지하고 말리고 정리하고, 다시 어지르고.


수고스러운만큼, 보람도 있었다. 쓰레기도 없었고, 음식물 쓰레기도 내용이 달라졌다. 눅눅해진 튀김들이 난무하던 내 '음쓰'통은 정리된 채소들이나 손질된 생선들로 바뀌었다. 다이어트를 위해 음식을 고민하지는 않고 있지만, 음식의 재료는 점점 알찬 것으로 바뀌었다. 당장 살을 빼겠다는 점에 매몰되기에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익히는 재미가 어마어마했다. 어제보다 좀 더 나은 내 모습을 보면서, 작은 주방에서 혼자 행복했다.


아, 손톱 절단 사건이라고 슬퍼할 일이 아닌 것 같다. 나는 서서히 내 한끼에 공들이며 사는 재미를 배우는 중이었고 행복했다. 키보드를 누르는 이 순간에도 검지 손가락은 욱신거리는 걸 보면 오늘 처음 도전했던 감자채칼 쓰기는 실패로 기억될 수 있지만, 나는 일요일 내내 신선한 채소들을 손질하며 콧노래를 불렀다. 나는 포장 쓰레기 없는 식단을 선택했고, 지혜롭게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데 성공하고 있다. 행복하다. 나는 발전하는 중이다. 튀김 대신 구이를 먹고 있으며, 머지 않아, 진짜 생샐러드로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지점은 행복한 것이다. 그러면, 오늘 슬픈일은 참 별거 아닌 슬픔이었다. 나는 참 잘 살아내고 있다. 익숙치 않았던 많은 것들이 한 걸음씩 편안해진다. 쓰레기만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먹는 내용이 바람직해졌다. 나는 2달째 배달을 시키지 않았다. 요리라고 해서 거창한 건 없지만 스스로 굽고 끓이며 생각하느라 즐겁다. 물론, 내 실크 드레스들이 모두 음식물의 공격에 노출되어버렸다는 점이 떠오르면 여전히 심장이 쪼여오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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