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즐거웠던 일은, 뒷자리 앉은 차장님으로부터 진도 미역을 선물 받은 것. '이마트'에서 파는 '오뚜기 미역'이랑 퀄리티가 다른, 종아리보다 더 높이 오는 기다란 미역. 진도를 다녀오시면서 선물해주셨다. 행복했다.
오늘 슬펐던 일은, 말 못하는 푸들을 때리고 목조르는 남자 애견 미용사, 아니 정신병자의 cctv영상을 본 것이다. 가끔 이만하면 뜨거운 감정이 모두 사라진 상태같던 내 안에서 분노가 끌어올랐다.
강아지를 좋아는 했지만, 키우며 유난떠는 사람들이 싫었다. 애들 이름처럼 강아지 이름을 부르며, 호들갑 떠는 사람들을 보면 괴로웠다.
가끔 성격이 모난 사람들이 제 강아지를 물고 빠는 것을 두고, '생각보다 보드라운 사람이구나'라며 좋은 쪽으로 해석해주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방향적 의사전달만 가능한 사람들이다. 배려하고, 싫어하는 말 삼가하며 인간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안하는, 아니 못하는 사람들로서 제 말에 무조건 꼬리치며 달려오는 강아지에게는 그저 모나게 굴 건덕지가 없었을 뿐이다. 따라서 그가 보드랍다는 둥의 인간 관계에서 쓰일 법한 형용사를 쓰면 안된다. 이럴수는 있다. '생각보다 더 내성적인 사람이구나 (그래서 그저 네 말 잘 들어주는 동물하고나 놀다니, 애 많이 쓰네. 가엾다.)'
그래서, 똥 치우고 관리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런 사람이 되기 싫어서 그렇게 회피하려고 노력했던 강아지 집사 노릇을 결국 시작하고 나니, 그 전과 그 이후의 삶이 상당히 달라졌다. 여전히 '나를 외로워서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불쌍한 동물에게 사랑을 강요하는 모자라고 비뚫어진 노처녀'로 오해하지는 않을까 간혹 두려움이 엄습하곤 하지만, 내 모든 신경은, 내 강아지 '복순이'가 어떤 컨디션인지에 쏠려있다.
복순이는 너무 어린 나이에 입양이 되어 본인이 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이 너무 미안해서 개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다. 개 유치원 같은 교육 기관을 찾아보는 내 자신을 인지하고서는 몹쓸 자괴감이 몰려들기도 했지만, 결론은 내 노력이 모두 허사로 돌아가 개 친구만 보면 도망가는 개가 되었다. 나는 수의사 선생님께 '개 친구 없이 사는 것이 안 좋은 일인지' 물었다.
"내성적인 사람은 시끄러운 장소 싫어하잖아요. 혼자 노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꼭 개 친구가 있을 필요는 없어요."
"저도 친구 별로 없는데, 주인 닮아 그런가 걱정되서요."
"얘한테는 오직 주인밖에 없어요. 외국인 초딩이라고 생각해주세요. 말은 알아듣는데, 말을 못할 뿐이에요. 주인만 있으면 되는데 그걸 못 할 뿐이에요."
"제가 만약 출장을 가거나 하면 제가 안 보일때는 어쩌죠? 개 호텔이니 이런거 가면 전부 개들인데 스트레스 받겠죠?"
"되도록 호텔에 데려가지 마세요. 부모님 댁이나 이렇게 그나마 익숙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최소한 맡겨주세요."
나는 수의사 선생님 말을 철썩 같이 지켰다. 다행히 코로나 덕분에 모든 출장은 캔슬되었지만, 혹시라도 개 친구들한테 스트레스 받을까봐 호텔은 근처에도 안 갔고, 2시간씩 걸린다는 개 미용실에도 데려가지 않았다. 일단, 내가 안 보일 거니까.
정수기에서 물을 떠오는 길에 링크된 cctv 영상을 보았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해도, 해도해도 너무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화가나서였다. 푸들은 그렇게 무자비하게 주먹질을 해대는 인간에게 앞발을 감싸며 살려달라고 했다. 목이 졸려 흔들렸다. 그 다음에도 계속 이해할 수 없는 가학적 행위들은, 영상의 건장한 남자가 제정신은 아닐 것이란 확신이 들게 했다. 저런 병신도 주인이 잘 부탁한다고 말하는 순간에는 '걱정말고 다녀오시라'며 웃었겠지. 소름 돋는다.
누군가 내게 저 남자는 징역을 받을 수 있냐고 물었다.
안타깝게도 '재물'인 푸들이 '손괴'되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푸들이는 미용 전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잠이 와서 눈을 감아도 그 더러운 순간들이 기억 날 것이다. 운이 좋아 영상이 남았지만, 그 정신병자에게 푸들이가 당한 만큼 되돌려주기는 어렵다. 그는 적당히 벌금형정도 받을 수 있고, 그나마도 초범이라는 이유로, 심리적 스트레스가 많았다는 이유로, 박탈감에 시달리며 5포 세대로 살아가는 것이 온 세상탓이라고 말할까봐 mz세대 특례로, 빨간줄은 면할 것이다. 일단, 푸들이는 '개'일 뿐이기 때문에.
우걱우걱 밥을 먹다가 문득 그 정신병자가 생각났다.
그 여자는 매일 온갖 생트집과 굿판을 벌렸다.
자기는 정말 고생하며 살았는데, 너처럼 고생을 안 하며 사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는 폭언을 쏟아내다가, 귀에다 대고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남들에게 나를 무서워하는 척 하면 안 되는거야.'
일단, 안된다고 하니까 참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니 강도는 더 심해졌다. 내가 그만두려고 하자, 내 귀에다 이렇게 말했다.
"안 되는데, 탈출하면 안되는데. 난 이제 너를 다루는 방법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는데."
온갖 폭언과 장난을 빙자한 손찌검까지,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악의인지 감을 잡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를때쯤, 부서 대표님과 단체 회식이라도 하는 날에는 내 맞은 편에 앉아 내 밥에 고기를 올려주며 많이 먹으라고 했다. 가끔은 갑자기 카페를 가자고 해서 커피를 시켜 놓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무슨 바람이 불어 냉탕 온탕인가 정도만 의심했다. 하지만, 그건 사람들이 그 여자더러 왜 나를 괴롭히냐고 추궁할 때 제출할 반박의 알리바이였다. 그걸 나중에 알았다.
4인이 들어가는 셀에 각자 등을 마주보고 앉아야 하는 자리에서, 그녀는 의부증(?)이 도져 등 뒤에 의자를 놓고 나를 쳐다보며 일했다. 노트북을 펴고 뭘 보는 척 고개 숙이고 있어도 뒤통수가 뚫리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어 거울을 샀다. 거울을 보면 귀신같은 그 여자가 거울을 보다가 눈을 돌린다. 나는 그 사진을 찍어두었다.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던 무렵이어서 문득 이 정도면 부서라도 옮겨주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런데, CRO였던가, 무슨 직책을 맡은 사람은 내게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폭언을 하는 등의 증거를 녹음했어야지, 사진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했다. 나는 1년 반 이상 주변에서 봐 온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했다. 그리고 회사를 나왔으며, 나오는 길로 아이폰을 버렸다. 통화 녹음을 못했던 한이 맺혀서.
CRO가 퇴임하던 날, '나 때문에 피해를 받은 모든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동료가 전화했다.
"늙은이, 죽을 때 지 마음 편하려고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털어버리려고 하더라. 끝까지 이기적이야."
죄 없이 얻어 터지고 한 마디도 말 못하는 개를 보니, 내가 퇴사하던 날 누군가 해 준 말이 기억났다.
"양진호한테 맞은 직원은 죄가 없어. 너는 죄가 없어."
개는 사람에게 잘하려고 노력하고, 정신병자를 상사로 맞이해도 일단 잘하려고 노력하는 게 부하직원이다. 힘이 없으니 찍어눌려도 일단은 참으며 생각하게 된다. 도망치려고 해도 설국열차마냥 열차에서 내리지 않고는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는 개였다. 나는 보호자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떠돌이 개였다. 그 여자는 유기견을 입양했다는 인증샷을 찍어야 했기에 남들이 볼 때는 '아이, 귀여워', 단 둘이 있을 때는 무한 발길질이었다. 말 못하는 개였던 나는 그 지옥에서 빠져나온지 5년째 되는 날에도 여전히 하루종일 그 정신병자로 부터 받은 더러운 시간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자존감책들을 샀던 이유도 그 미친여자 때문이었다.
'잘난척 해봤자 그 여자한테 졌어'라는 말을 한 동기와 연락을 끊었다.
나의 상처는 여전히 진행중이지만, 내 잘못은 아니다
이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더러운 시간에 지배당하고 있다.
노력은 하겠지만, 쉽지 않다.
나는 그 이전의 나로 돌아가기 어렵다.
다만, 푸들이 너는 제발 그 순간으로부터 벗어나길 바란다.
매일 기록하기로 마음 먹고 나니, 한 시간 한 시간 집중하게 된다.
'즐겁군! 이거 오늘 기록해야지!' 이런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참 괜찮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