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ma Aug 26. 2021

모든 것의 루틴

젊어서나 늙어서나 그저 꾸준합세다.

오늘(어제)의 즐거웠던일: 실로 몇 달만에 루프트탑에서 샴페인 한 병 했다. 물론 9시에 나가야된다고 3번이상 요청을 받아 50분에 일어섰지만.


오늘(어제)의 슬펐던 일: 그러게, 나는 결국 작심 3일이 되는구나. 모바일로도 가능한 브런치를 거르다니, 흑흑흑.



코로나 덕분에 반강제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보니, 이젠 나름 적응했다.

바깥 약속 없이 곧장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만드는 동안 복순이는 주방 바닥에 앉아 이제나 저제나 뭐 안 주나 샐샐 웃으며 기다린다. 라탄 테이블에 두 어가지 놓고 먹으며, 유튜브에서 또 남의 개들을 보다보면, 이제 우리가 산책갈 시간이다. 더워서도 그랬지만, 어둑해지고나서 길을 나서면 신기한 냄새가 나는지 복순이는 어째 더 신나보였다. 돌아와 적당히 발만 씻기고 빗질을 해준다음 청소를 한다. 청소, 설겆이 가끔 세탁기와 스타일러를 돌리며 침대에 눕는다. 바로 자는 건 아니다. 책도 보고 (거짓말), 주로 유튜브를 보다 잔다. 누가 전화오거나 하는 일은 없다. 가끔 카카오톡이 와 있긴 한데, 의미없는 메세지들이다. 나는 정말 지난 1년 반을 이렇게 보냈다.


아직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여전히 '퇴근하면 뭐 하세요?'를 묻는데, 이제는 별로 쓰라린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나는 쿨한 표정을 지으며 (제발 심드렁해보이지 않았길) '그냥 밥 먹고 개 산책해요.' 라고 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칭찬했다.


"어머, 그래도 개 덕분에 매일 운동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하시네요."


아, 음.

그런가.

운동이라기엔 슬리퍼 찍찍 끌며 겨우 쫓아가다가 도망치듯 들어오는게 전부인데. 수험시절 꾸준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스트레스를 풀던 나더러 성실한 친구가 한 말이 기억났다. "내 몫까지 더 놀아, 보기 좋다."


같은 듯 같지 않은 이런 말들을 듣다보면, 갑자기 각성하게 된다.

나는 너무 '막 살고 있나.'


그러게. '올리브영 광고'도 그렇고, 요즘은 다 저마다 지켜내는 자기 관리 루틴들이 있다지 않는가. 자기전에는 꼭 팩을 한다던지, 아침에는 꼭 영양제를 먹는다던지, 일주일에 몇 번은 필라테스를 한다던지 등등.


내게 있는 루틴은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출근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퇴근하고 복순이 산책시키는 것까지는 비가와도 눈이와도 지켜내는 루틴이었다.



꾸준하라는 말이 숨막히게 들리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공부하라'는 잔소리도 포함되지만, 주로 나를 질리게 하는 것은 재테크를 위한 꾸준함을 강요하는 말들이었다.


재테크는 특히 아주 진저리가 났는데, 학창시절에도 못 봤던 노트 정리부터 시작해서 궁극적으로는 부동산 시행 전문 회사를 차리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적이 된 사람들이 꾸준히 무엇인가 몰두하는 모습이 숨 막혔다. (요즘은 애저녁에 정신차리고 굽신거릴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최근 상당히 본질적인 곳에서 내게 꾸준함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본업에서, 실수한 것을 너무 뒤늦게 발견한 뒤, 내가 잃어버린 내 꼼꼼했던 검토 루틴을 다시 회복시켜야 된다는 생각에 시험 준비하는 학생마냥 초조하다. 이미 '나쁜 인상'을 줬기 때문에 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에 푹 절어 있는 것같기도 하다. 여튼 나는 다시 뭔가 끌어올려놓지 않으면, 손에 익어 능수능란해진 시니어의 모습을 갖추기 어려울 수도 있다.


꾸준해야겠네.

그렇게 듣기 싫은 말이더니, 그것은 단지 시험을 목전에 둔 학생더러 잔소리하느라 쓰는 말은 아니었다.

보다 내실있는 어른이 되어가기 위해서는 일단 본업의 프로페셔널리즘을 더 날카롭게 하기 위해서, 꾸준한 루틴이 필요하다.


시니어로서 오래 버티기 위해서는 피지컬적으로도 당연히 꾸준한 루틴을 하나 만들어야 될 것 같다.

50이 된 우리 실장님은 고3딸과 중2 아들을 건사하며 새벽에 출근해서 밤에 가지만 매 순간 에너지가 고르다. 나는 9살이나 어린데 거의 관 짜기 직전 상태로 네발로 기고 있다. 그래서 더 일하는 폼새가 허술해진 것 같기도 하다.


비겁한 변명 하지 말자.

천천히 또박또박.

내 페이스대로 이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긴 호흡으로 오래가는 내 루틴이 필요하다.

하루에 하나씩 루틴도 점검하자.

내일은 섹시한 할머니로 거듭나며 살 수 있는 피지컬 루틴도 고민해보자.


아직 더 해볼 것이 남아있고, 새로운 세팅이 필요하다면

늙은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오늘 아주 젊고, 어젠 유럽 하늘처럼 예쁜 하늘을 즐기며 배를 쨌으니, 행복했다.

내일이 기다려진다고 세 번만 외치고 자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It's not your faul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