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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ma Mar 06. 2018

자존감, 어디까지 높이면 되요?

자기애 넘치는 사람은 되기 싫거든요.

'넌 자존감을 높여야겠다'는 말을 듣기에 지쳐 드디어 벼락치기 하듯  자존감을 연구할 요량으로 '키워드'에 '자존감'이 들어가면 '아묻따' 눈에 보이는대로 집어 넣었던 것 같다.


그러나,

시공부하듯 차분한 척 책장을 넘긴지 얼마되지 않아, 나는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자존감이 낮아 안 겪어도 될 늪에 빠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럼 나는 어느 정도 높아져야 '완치'인가.

아하니 자존감이란 단어의 정의조차 이 책 저 책 다른 것 같은데, 돌팔이에 몸을 맡기듯 그저 책대로 마음 고쳐먹고 나를 고쳐나가다가 혹시 내가 이렇게 되면 어쩌나.


걱정되는 모습들이 있었다.

자기를 넘치게 사랑하는 사람.

자기애가 넘쳐 모든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고, 나는 잘 될거라고 근거 없이 굳게 믿고, 잊지 않고 스스로 칭찬하고, 나는 우월하다고 끝없이 강조하는 사람. 주변에서 본 적 많은 그런 사람들.


자존감이 낮아 혼자 괴로운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많은 처방전이 시중에 나도는데, '돈 키호테'마냥 언제나 호기롭고 언제나 '나는 문제없다'고 외치는 사람들에게는 약이 없나.


무시무시한 예가 떠올랐다.


그는 치맛바람 어머니의 성에 차지 않는 대학에 요상한 전형으로 들어간 뒤, 그 학교가 본인의 레벨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미국으로 가 오랜 시간 유학생으로 살았다 .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것이 서른 후반, 그 직업군의 첫번째 직장은 아버지 거래처.  낙하산이었지만 여러가지 입사조건이 여의치않아 비정규직 월급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본인 옷도 항상 명품을 입어야 하는 것은 물론 일단 남이 어떤 옷을 입는지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패션을 안다기 보다 비싼 브랜드를 입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아울렛에서 제일 큰 할인폭을 받을 것 같은 애매한 색상의 애매한 디자인 옷을 입더라도 본인 옷이 어느 브랜드인지를 강조했다.

지나가는 여자들은 반드시 요즘 유행하는 옷을 비싸보이는 것으로 입어야 그 여자 차림새에 대하오 잔소리가 없었으나, 골프장 가는 아주머니들 손에 들린 루이비통 보스톤백을 보면 꼴보기 싫다고 했다. 즉, 비싼 옷을 입되 본인에게 위화감을 주는 정도는 용납하기 어려워했다.


골프를 잘 친다고 말하다가, 같이 가자는 말을 하면 채를 빌려야한다고 하고, 남이 폭스바겐을 산 것은 돈 없어보인다고하다가 본인은 96년형 국산차를 집에 있어서 탔고, 은 남녀가 같이 벌어 모아 사면 된다 하다가, 그래도 남자들이 집은 더 많이 한다고 하면 속물이라고 소리 질렀다. 그럼 원룸에서 신혼을 해도 괜찮은지 물으면  '내가 누군데 그런 거지굴에서 시작하냐'고 화를 냈다. 그는 강남 사는 사람에게는 구체적인 아파트 이름과 평수를 물었고, 대화의 말미에는 "강남 평균도 아니네."를 붙였다. 대방동 사는 사람은  무시했고,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을 부를 때는 '너 사는 곳에는 이런 거 있냐?'를 항상 물었다.


잘 사는 사람이라고 소문난 동료의 청첩장을 받고, 그 부모 이름을 구글에 쳐 본뒤, 직업에 비해 얼마 못 모았다고 얘기하기도 하다가, 그것을 왜 검색해보는지 물으면 공인된 정보인데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시각이 병든 것이라고 대꾸했다. 식당에 가면 종업원들을 하대하는데 바쁘고, 공짜 리필을 빚받아내듯 고자세로 말했다.


뭘 믿고 그러는가?

그는 본인은 클라스가 다르다고 굳건하게 믿었다. 사주 팔자에 나온다고 했다. 후배가 사다준 겨울 장갑 선물을 가리켜 "이건 경비아저씨한테 어울린다" 고 경비실에 드리지만 실제 그는 월급이 모자라 노모가 용돈을 준다. 그는 서울의 집을 장만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믿고 있다. 마지막에 웃는 자는 본인이라고. 왜냐하면 나는 클라스가 다르니까.

그의 자기애는 견디기 어려웠다. 무슨 대화를 해도 결론은 사주팔자가 약속한 장밋빛 미래였고, 근처에서 그 미래를 들어주는 것조차 벅찼다. 숨이 막혔다.


숨 막히는 예야 얼마든지 더 있다.


그녀는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위, 아래로 형젝가 있ㅇ어, 치이고 살았겠지만 그녀는 무남독녀만큼 본인을 사랑했다. 가정형편을 이유로 장학금을 받았지만, 몸에 좋은 (특히 머리에 좋다는)영양제는 누구보다 제일 먼저 구매했고, 여유가 있어도 다니기를 망설일 수 있는 전신마사지를 일주일에 한 번은 받았다. 그런 돈은 아끼지 않는 이유를 물었더니 "내 몸을 아껴둬야 오래 쓸 수 있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혜택을 혹시라도 놓칠 경우에는 행정실을 뒤집어서라도 "그것이 공평했는지"물었고 다른 이의 기회로 돌아가면 참기 어려워했다. 괜찮은 직업을 가진 뒤에도 늘 고3처럼 공부하는 자세로 자격증을 모았는데 보통 그 시작의 동기가 "별 거 아닌 애가 하는 거 보니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다."였다. 별 거 인지 아닌지의 기준이 궁금한 적 있었는데, 본인 외의 대다수는 별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나는 이 정도 대단할 수 있었는데 불운에 의해 더디게 가니 계속 정진해야 한다는 정신이 하도 굳세고 철통같아서 '새마을운동'정신 같다고 농을 친적도 있었다.

그녀는 '항상 앞으로 잘 되면 신세를 갚는다'고 말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지금 그만한 것도 괜찮지 않는가 물으면 상당히 기분 상해했다. 왜냐하면 지금의 모습은 본인의 진가를 다 드러내지 못한 것이므로 현재에 만족하라고 하는 것은 저주와 같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은 참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분도 대단한 자기애가 있었다.


어린 시절 먹지 못해본 것은 지금 다 먹어야 한다며 메뉴 하나 하나 법전 들여다보듯 물었던 그녀는 모든 식사의 말미에 앞에 앉은 임원분들께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잘 될겁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다 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가끔 그녀가 말하는 하느님 아버지가 내가 아는 그분이라면 얼른 그녀를 만족시킬만한 대박을 내려주시길 나도 부탁한 적 있었다. 하지만 사막에 물 줄기 대는 일이었다.


이 분들은 마땅한 책이 필요 없는가. 응급처치는 이쪽이 더 급한 것 같은데.


아야꼬 할머니는 '자기다울 때 존엄하게 빛난다'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자기다울 때 존엄하게 빛나는데 자기가 아닌 다른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를 흉내내려고 하는 순간 타고난 광채를 상실한다고.


자존감 높여보겠다고, 책에서 시키는 대로 그 옛날 학습지 풀듯 한글자 한글자 대답을 적어내려가다 그만 꾀가 나서 한 마디 길게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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