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말해주는 거울

커플을 보면 알 수 있는 것

by Nima

누구나 본인이 생각하는 자기의 모습과 남들이 보는 내 모습이 다를 수 있다. 그 차이 나는 정도가 지나치게 심하면 아픈 사람이지만, 대개는 좀 차이가 날 수도 있다.

나는 꽤나 갖춘 사람인 척을 하는데, 무엇이 부족하다는 사람들에게 괜한 오지랖으로 쾌척하거나, 필요한 자리를 마련해주거나 하는 병이 있다. 가끔 얌체같이 '고마워'라고 돌아서는 이를 보면 후회하지만, 내 오지랖은 병이다. 나는 남에게 그렇게 베풀만큼 풍족한 사람일까. 그건 정말 아닌데.




어릴 적에는 매력 넘치는 사람을 만나면, 그 배우자,혹은 애인이 어떤 사람일지 몹시 궁금했다.

도대체 이렇게 멋진 사람과 함께 가정을 이루어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을까. 단순히 호기심이라고는 말하기에는 아쉬울만큼 묘한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다가, '역시, 그럴 수 밖에'라는 결론으로 이어질 때마다, 나는 한 가지 사실에 관하여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끼리끼리 논다'는 사실 말이다.


여기서 '끼리끼리'라는 분류에는 직업이나 돈이 기준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직업이 같은 커플이야 널리고 널렸으며, 돈 적당히 맞춰 결혼하는 '요즘 트렌드'를 얘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사람됨'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같은 동네에서 자라, 얼마나 반듯하고, 얼마나 순하고, 얼마나 스마트한 사람인지 잘 아는 동네 오빠는 하필이면 운도 좋아 돈도 많았다. 부모님 두 분 다 돈 많은 척 안하는데, 빌딩이 있는, 그야말로 내실 있는데 재수없는척 안하는 고매한 집안이었는데, 그 덕분에 그 집은 문턱이 닳고 닳도록 중매가 들어왔다.


나중에 길에서 오빠네 부부를 만나보고, 나는 오빠가 얼마나 단단하고 안정적인 사람인지 다시 한 번 느꼈다. 와이프라고 소개된 언니는 요란하지 않지만, 품위 있었고, 오빠랑 똑 닮은 안정적인 톤으로 편안하게 나를 대했다. 지방 어디서 자라 서울은 처음이라며 모든 것이 어색하다는 너스레를 보여줬지만, 사실 그녀가 어디서 자랐는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을 정도로 매력있었다. 듣자하니, 지방에서 선생님 하시는 아버지 힘들게 안 한다고, 선생님이 된, 똑소리나는 장녀였다. 오빠의 선택은 딱 오빠 같았다.


그런가 하면, 딱 봐도 딱한 사연도 있다.


겨우겨우 어찌 저찌 아들을 '사'자 만든, 의사 아들을 둔 어머니와 그 누이는 '어디 하나만 제대로 걸려라!'라는 애티튜드로 전국 8도의 여자들을 다 면접보곤 했다. 면접을 통과한 분들인지는 확실하지않지만, 어찌되었든 아들이 데려오는 여자는 아들과도 만나야하지만, 그 어머니, 누이까지 함께 만나 4인 데이트를 즐겨줘야 했다. 혹여라도 그 자리에서, 그 여자친구가 못 보던 가방을 들고 오면, 그 어머니와 그 누이는 의사 아들에게 '그 가방을 우리에게도 내놓아라'고 들들 볶아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우리야 아들이 데려오는 여자들을 본 적이 없으니, 그냥 그 어머니와 누이만 너무하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아들이 여친과 동네를 배회하는 모습을 보자, 그 아들이 그 집안 사람임이 조금 더 이해되었다. 아들의 여자친구는 방송일을 한다지만, 방송에는 나오지 않고, 서울 어디서 카페를 한다고 들었는데, 그냥 딱 그 집안 사람들과 크게 이질적이지 않았다.


매번 이별의 슬픔을 노래하는, 돈 잘버는 남자사람친구는 3개월이 멀다하고 이별이 고통스럽다고 얘기했는데, 그 이별녀들은 주로 모델 지망생, 가끔은 레이싱 걸들 이었다. 그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진중하게 만나, 인생이라는 모험을 함께할 만큼 믿음직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커리어 우먼이라며, 내가 누군지 아냐며,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여줘,그 순간 혹 하는 매력을 발산하던 지인 하나가 '미나와 필립', '정해인과 손예진'을 레파토리 삼다가 데려온 연하남을 보고, 그녀에게 실망한 적 있다. 가끔 느꼈던 그녀의 얄팍함이 확연히 드러나는 남자였다. 물론 둘은 그림같이 잘 어울렸다. 세상에서 제일 피곤하고, 바쁘고, 할 일 많아서, 핑계가 산더미 같으니, 애저녁에 말을 걸지 말라는 쉴드를 먼저 쳐버리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이기적인 애티튜드의 사람이 그 배우자 이야기를 했다. 본인의 일, 본인의 취미, 본인이 생각하는 구색, 본인이 좋아하는 부동산, 본인이 가야하는 휴가 등등을 깐깐하고 똑뿌러지게 요구하고 이루어내는 모습이 눈에 선하도록 묘사되었다, 순간 정말 어울리는 한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애틋하게 잘 사나보다 싶었다. 하지만, 부럽지는 않았다. 내가 그 둘 중의 한 축을 이룰 생각은 전혀 없다.




"우리 와이프는 나때문에 인생이 슬퍼."


일하며 만난 어떤 분이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본인을 촌동네 사람이라고 소개한 그는, 시골 마을에서 이웃으로 살던 누나와 결혼했는데, 누나는 아들이 아니어서 비교 당하고, 공부를 아주 조금 못해서 비교 당하고, 직장을 아주 조금 못 가서 비교당하느라 슬펐는데, 본인이랑 결혼해서 더 슬프다고 농담했다.


그는 자신만만한 전문직 답게, 실력도 빵빵했고, 상황을 판단하는 속도도 어마어마하게 빠른, 영특한 사람이었다. 더불어, 화통한 성격과 돈 주고 살수 없는 융통성은 덤. 그의 와이프가 얼마나 멋있을까 궁금했다.


"네네, 마마. 그럼, 두 잔만 더 마시고 가겠습니다."


회식 자리가 이어지자 집에서 전화가 온 모양인데, 불편할까봐 빨리 일어나시라고 말했다.


"아닙니다. 이왕하는거 화끈하게 마셔주고 오라고 허락해줬어요."

"에이, 근데 두 잔만 더 마시고 간다고 하셨잖아요."

"하하, 우리끼리 하는 말이에요. 막걸리를 대접으로 먹는 우리끼리 하는 말."


우리라는 말도 멋있고, 대접 막거리도 멋있었다.

그의 와이프는 못지않게 멋진 사람 같았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들은 늘 무엇인가 불안하고, 부족했다.

돈 많은 집인데, 형 만큼 공부를 못해 주눅이 들어있거나,

돈 없는 집안에 어렵게 공부하느라 내게 뭘 해줄 수 없다고 미안해하거나,

번듯한 직장이 있는데, 매번 돈을 더 벌어야 된다고 불안해하거나,

번듯한 직장 없이 아버지 회사에 들어가 놓고, 일하기 싫다고 귀찮아 하거나,

혹은, 그와 같았다.


결국 나는 무엇인가 불안하고, 부족한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순간이자, 돌아서면 뼈에 사무칠만큼 외로워지는 순간은 야근하는 동안 걸려오는, 혹은 술 한잔 하는 동안 걸려오는 상대방 배우자의 전화이다.


"응, 걱정하지마. 갈때 전화할게."


이렇게 마무리하는 그와 그녀들을 보며 가족 이야기를 묻는다. 순간 환해지는 얼굴, 아들 자랑을 어떻게 참았을까 싶을 정도로 봇물 터지는 이야기들. 모든것이 부럽고, 남의 이야기 같다.


언젠가, 내가 조금 덜 불안하고, 덜 부족한 사람이 되면, 나도 저렇게 내 가족 이야기에 신나는 순간이 오겠지?


맥주 한잔 하다가 그만, 브런치에 하소연.

keyword
이전 14화하루하루 이어진 것 같지만, 공기도 감정도 매일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