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늘어나는 경험들을 기반으로 사소한 결정부터 중요한 선택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줄었다 하더라도 나는 기본이 남들보다 1~2년 늦는 사람이다. 그래서 빠르게 변하는 이 세상 속에서 1년 전 선택했더라면 시기적절했을 모든 일들을 두고 나는 항상 남보다 뒤늦게 고민하느라 끙끙대며 또 다른 시기를 흘려보내고 만다. 지금도 어느 한 시기를 통과해내야 할 때 또다시 어느 한 구간에 고여있다 썩게 되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 그건 내가 2n 년을 살며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이며 언제나 경계해야 하는 일이다. 어찌 보면 거북이의 인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거북이는 바다라는 큰 세상으로 방향성을 잃지 않고 천천히 넘어간다. 나는 그보다 나무늘보의 인생이 더 친숙하다.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나무 하나를 긴 손톱으로 꼭 붙잡고 행여 나무가 쓰러질까 봐 전전긍긍한 채로 살아가는, 나무늘보의 인생. 나무늘보는 태생적으로 근육이 적은 건지, 나무 위 생활을 하다 보니 그런 식으로 진화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체력이 약한 것도 나와 꼭 닮았다. 그런 내가 세상에 태어나 내 멋대로 살아보려 하니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 아마 거의 대부분의 일들을 뜻대로 해 보려다 실패했고 또 앞으로 얼마나 많은 포기를 겪어야 '험한 세상 나무늘보로 멋지게 살아남기'의 꿈이 꺾어질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아직은 젊은 나무늘보니까 늘보들 만의 아름다운 생태계가 있다고 믿는 건 또 그런대로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