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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Nov 05. 2021

그럼에도 찾을 것이다.

1일 1드로잉, 어묵국

#112일차

*2021.11.5. 10분 글쓰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서울 릴랙스 위크 명상 컨퍼런스의 첫날이었다. <명상, 교육이 되다>라는 주제로 <마음챙김 놀이>의 저자 수잔 카이저 그린랜드와 마음챙김 교육 전문가 메건 스위트가 강연자로 나왔다. 줌 웨비나 강연으로 진행되었는데 학교 수업이 있어서 전체 참여가 어려웠다. 수업을 마치고 뒷부분을 조금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미국에서도 마음챙김은 공교육 교육과정에 포함되거나 교육정책 안에 도입되지 않았다. 미국 학교는 SEL의 한 과정으로 마음챙김 수업이 운영되고 있으며 교사가 먼저 마음챙김을 할 때 학교 교육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는 공론화가 이뤄지고 있다. 마음챙김은 학교 부적응 학생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마음챙김은 신경과학적인 측면에서 뛰어난 성과가 밝혀지고 있어 모든 교사, 모든 학생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모든 포유동물은 에너지와 느낌을 발산하고 주변에 퍼져나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주인의 감정을 강아지가 알아차리고 곁에 와서 몸을 비비며 위로의 눈빛을 보내고 정서를 이해하는 듯한 사례가 많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기운과 감정은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이 당연하지만 우리는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고 감정의 기를 펴지 못하게 억누르는 행위에 익숙하다. 교실에서 이들과 마주하는 교사의 기분, 에너지는 학생에게 전이되고 수업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교사가 자신의 마음을 잘 알고 현재 상태를 알아차리며 부정적인 감정을 자연스럽게 처리하게 되면 학생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교사 자신이 학생에게 안정적인 배움의 환경이 될 수 있다.


학교는 전 세계적 팬데믹으로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를 맞이했었다. 급격한 변화 속에서 온라인 학습 상황에 빠르게 적응해야 했다. 스마트 기기 조작법을 익히고 서로서로 노하우를 전달하며 2년 차를 맞이한 올해는 실시간 쌍방향 수업이 정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밖 사람들은 수업의 질을 놓고 비난하는 일도 있었다. 선진 교육이라고 떠받드는 나라조차 감염위험으로 교사가 학교 출근을 보이콧하고 비대면 수업을 활동지 한 장 투척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현재 벌어지는 비상시국을 예외 사태로 규정하고 온전한 학교 수업을 할 수 있을 때를 기다리며 지금은 스트레스와 불안한 마음을 회복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상식적인 대응이라고 학부모, 학생, 교사 모두 동의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교사들은 차선책으로 운영되는 비대면 수업에서 코로나19 이전의 등교 수업과 같은 완성도를 요구받았다. 코로나19를 미리 알아서 평소에 준비를 안 해놓고 훈련을 게을리했던 것처럼 많은 욕을 먹는 가운데 교사들은 소진되는 느낌과 무력감으로 힘겨웠다. 선생님들의 자기 돌봄 측면에서 마음챙김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공유한 것이 오늘 회의에서 중요했던 것 같다.


이틀 동안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아침 리추얼을 하지 못하고 마음의 준비 없이 출근했다. 단추 많은 옷을 엇갈려 끼웠다가 풀어서 다시 끼우는 것처럼 기운 빠지는 일들이 생겼다. 오늘따라 아이들은 들뜨고 산만했고 그런 교실 분위기는 나의 무능처럼 여겨졌다. 선생님들의 좋은 수업을 참관하면서 열심히 받아 적고 나에게 적용할 점을 찾았지만 오늘 같은 날이면 마음속에 시기 질투가 일어나고 비교하는 마음에 울적해진다. 한 가지 일을 십 년 이상 하면 전문가라고 하던데 이십 년이 되어가도 아이들을 대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조심스럽다.   


신체, 감성, 지성이 일정한 주기로 변동하는 것을 바이오리듬이라고 한다. 지난 일주일은 나의 바이오리듬이 침체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신체 리듬은 23일, 감정 리듬은 28일, 지성은 33일의 주기를 가지며 반복된다던데 그 세 가지가 최하점에서 교차되는 날이 바로 오늘이었나 보다. 아무하고도 마주치고 싶지 않아 소라게처럼 교실에 숨어서 쪼그라든 마음으로 하루를 마치길 기다렸다.


새롭게 시작하는 모임에 마음이 안 맞는 선생님이 계신데 그때마다 느끼는 우울과 긴장, 불안감이 해소되지 못했다. 마음을 승화하는 방법이 마음챙김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앎과 실천의 간극을 좁히기란 쉽지 않다. 관계의 불편함과 자기 능력 탓으로 흐르는 마음의 습관을 과제 삼아서 마음챙김을 자신에게 적용해보아야겠다. 이 과정에서 평화를 찾는다면 마음챙김을 증명하는 사람이 되어 학교 현장에서 마음챙김을 전하는 동력을 얻을 것이다.


근래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되어가는 중이다. 냉장고 속 남은 식재료가 딱 어묵국을 끓이기 좋아서 만들어 먹고 한 그릇 떠서 그림을 그렸다. 시답잖은 결과물이지만 슬픔을 달래는 따뜻한 시를 필사해 나란히 놓으면 그런대로 봐줄만한다. 오늘의 시는 김윤진의 <그리움의 존재>


숨기려 해도 선명히 드러나는 인간 본연의 고독으로 오늘 하루도 어렵게 지났다. 웃었던 기억, 사랑을 주머니마다 담아서 힘들 때마다 꺼내보자.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포기하지 않고 그대로 나아가면 언젠가, 어디에든 닿아서 마음 속 깊이 간직한 존재의 본향을 찾을 것이다. 누군가 전해주는 온기와 에너지에서 얻은 살아야겠다는 희망으로 오늘 하루가 건재하다. 힘들었던 일도 긴 시간이 지나면 찰나의 기억으로 모습이 바뀐다. 때로 고통스러운 하루 중에도 반짝 빛나는 순간이 박혀 있었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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