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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Nov 07. 2021

3,5,7 법칙

1일 1드로잉, 그라인더

#114일차

*2021.11.7. 10분 글쓰기*

좋은 여행, 나쁜 여행, 이상한 여행


3,5,7 법칙이 있다. 어딜 가나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3명 있으면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5명 있다. 7명은 나를 좋아하지 않고 다른 편에 서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중립지대에 있으므로 나를 좋아할 수도 있고 나를 못마땅하게 여길 수도 있다. 그날의 기분을 좌우하는 것은 7명에 달려있다. 그들이 나에게 호의적인가 무관심한가에 따라 어느 날은 자신감이 생기고 희망이 보이다가 어느 날은 내가 비호감인가 싶어 진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적다고 생각할 때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운이 좋구나 싶어 감사한 마음이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그럴 수 있겠다 싶고 감정이 북받쳐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 주제에 "여행" 대신 "하루"를 넣어본다. 좋은 하루가 3일이면 그렇지 못한 날은 5일이 있고 이도 저도 아닌 하루는 7일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행복한 날이 나에게만 적은 것이 아니다. 나와 마찬가지로 힘겹고 어정쩡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을 상대방에게 연민의 마음으로 따뜻한 목소리와 위로의 손길을 내밀게 된다.


디폴트 (default, 기본값)란 말이 있다. 소프트웨어나 컴퓨터 프로그램, 장치에 사람의 개입 없이 자동으로 할당되는 설정을 말한다. 프리셋이라고도 하는데 컴퓨터 사용자의 능력과 상관없이 처음부터 자동으로 주어지는 기본 설정이다. 삶의 기본값을 높게 잡으면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행복하기 어렵다. 코로나19로 당연하게 누려왔던 일상이 멈추며 무엇이 필수적인 것이었고 무엇이 불필요했는지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맞이했다. 결혼식, 장례식 같은 경조사에서 손님의 규모가 축소되고 우리의 체면 문화와 허례허식을 돌아보았다. 병문안이나 직장의 회식문화가 필수가 아닐 수 있겠다는 반성이 일어났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귀촌 인구가 늘었다. 지금처럼의 생활방식으로는 나아질 수 없겠다는 문제의식으로 새로운 삶을 찾는 젊은이들의 선택이었다.


"여행" 대신 "글"을 넣어보았더니 요즘 내 상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매일 글을 쓰다 보니 창피하고 불만족스러운 글이 있고 대체 왜 이런 글을 계속 써대고 있는지 모르겠는 글은 훨씬 많다. 졸음을 이겨가며 글을 쓸 때는 괜찮은 거 같은데 다음 날이면 나쁜 글, 이상한 글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걸 계속 해야되나? 나는 안되나보다...열렬한 독자로 일찌감치 노선을 정해야 하나? 내적 갈등에 들어간다. 3,5,7 법칙을 생각하며 글의 기본값을 낮게 설정하면 쓸모없고 불충분한 글을 쓰는 사람은 나뿐 이라는 고립감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 언젠가 좋은 글을 쓰는 날이 올 거라는 위로를 나에게 전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새로운 시도에 도전할 용기를 갖게 된다.


커피 좋아하는 사람이 매일 테이크 아웃해서 사 마시면 한 달에 커피값만 꽤 나간다. 자연스럽게 홈카페에 관심을 갖고 검색해보면 에스프레소 머신, 우유 휘핑기, 그라인더, 모카포트 등 종류와 가격대가 천차만별이다.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은 커피 전문점 기계보다 압력 차이가 월등히 떨어져 커피 맛이 조금 아쉽다. 거기다 라테 한잔 내려 마시려고 우유 거품기를 분해해서 닦는 수고를 매일 하다 보면 사 먹는 게 남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머신과 거품기, 그라인더를 장만해서 집에서 만들어 먹지만 부족한 느낌이 들 때는 커피점에서 테이크 아웃하는 일도 동반해서 커피 섭취량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홈카페의 종착지는 드립 커피라는 말이 있다. 수동 그라인더를 돌리며 원두를 갈 때부터 진한 커피 향으로 이미 커피를 마신 기분이 든다. 드립퍼에 여과지를 올린 다음 갈아놓은 원두를 담은 후 100도에서 살짝 식힌 물을 조금 따라 붓는다. 원두를 예열하는 몇 초의 시간 동안 오븐 속 빵 반죽처럼 부푸는데 이걸 커피빵이라고 부른다. 커피빵이 조금 가라앉으면 드립포트로 물줄기를 가늘고 일정하게 조절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밖으로 나왔다 달팽이 모양을 그린다. 방울방울 갈색의 커피 액이 주전자로 떨어지기까지 모든 과정을 찬찬하게 관찰하는 것을 나는 "커피 명상"이라고 부른다. 커피 전문점에서 예쁜 찻잔에 담긴 수준 높은 커피를 대접받는 것도 좋지만 다소 잘나지 못해도 손수 만든 커피는 다양한 방식으로 커피를 마주한 느낌을 준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커피의 여러 가지 측면을 알아가며 커피와 밀착된 느낌에 커피 한 방울도 남기기 아깝다.


나에게 글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명상효과를 느낀다. 매일 밤 오로지 글만 생각하며 지도 없는 여행을 나선다. "글 명상"을 하고 나면 결과의 만족도는 차치하게 된다. 아이디어 상태일 뿐인 허공의 생각을 단어를 골라 쓰고 문장을 완성하며 실타래를 풀어간다.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며 글이라는 옷감이 길어진다. 글이 마무리되면 그저 그런 결과물이어도 참고 여러 번 읽어야 한다. 맛없게 만들어진 내가 만든 요리를 남기기 싫어 꾸역꾸역 먹는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매일 글을 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걸 보면 그 자체의 의미가 있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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