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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Nov 13. 2021

변신하는 아이들

1일 1드로잉, 페스츄리 빵

#120일차

*2021.11.13. 10분 글쓰기*

우리 동네 단풍은~~


초등학교 4학년을 대상으로 서울창의재단에서 개발한 과학+예술 통합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서울시교육청의 지원으로 재단에 소속된 예술분야 전공자 2명이 팀을 이뤄 <예술로 플러스> 수업에 들어오고 있다. 6번의 수업 가운데 4번째였던 지난 수업은 마음속에 깊은 울림으로 남아서 수업 참관을 마치고 쫓아가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4번째 수업은 <식물의 생활> 과학 단원을 내러티브 팬터마임이라는 연극기법과 연결한 활동이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이렇다.


"변신술"이라는 단어를 던지고 무슨 뜻일지 아이들이 추측해보게 한 다음 김범 작가의  "나무가 되는 법"을 소개했다. (김범 작가의 책에는 8가지의 변신술이 담겨 있다. 나무, 문, 풀, 바위, 냇물, 사다리, 표범, 에어컨...)


나무가 되는 법 - 김범


신체를 단련하여 전신이 근육질이 되게끔 한다.

마당, 산, 평야 등 어느 곳이나 흙이 있고 양지바른 곳을 찾아 자리를 정한다.

이 책에서는 가능한 한 고향으로 가는 것을 권하고 싶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곳이든지 가능하고 심지어는 큰 화분을 이용하는 것도 무방하다.

발을 흙에 묻고 팔을 쳐들어 일정한 자세를 취하되 그 자세는 자신의 성격, 평소 생활자세 등을 반영하는 것이 좋다. 이를테면, 곧거나, 굽었거나, 비틀린 자신의 성격을 반영하거나, 또는 평소에 직업상, 습관상 많이 취하던 자세를 응용할 수도 있다.

그 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눈을 감은 채 어떠한 말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사전에 남에게 발치에 물을 부어 달라고 부탁하지 않되, 누군가 발치에 물을 부어주면 막연히 행복해한다. 그러나 그 사람을 기억하지 않는다.

피로와 고통에 대해서도 생각지 않는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밤이 되면 다시 사람이 되어 음식물을 섭취한다.

나무로서의 자신에 가능한 한 빨리 익숙해지도록 노력하고, 음식물 섭취하는 시간을 줄여간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다 같이 이전 수업에서 배운 식물 중 기억에 남는 하나를 골라 변신술바꾸어 썼다.  


회전초가 되는 법


눈을 감는다.

더위와 건조함을 견디는 상상을 한다. 추위도 견뎌본다.

둥글게 몸을 말고 바람에 몸을 맡긴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며 씨앗을 뿌린다.

물을 찾아다닌다.

물을 만나면 다리를 쭉 뻗어 뿌리를 내리고

물을 빨아들이며 그곳에 정착한다.

천천히 눈을 뜬다.


이어서 사막에 사는 식물, 강과 연못에 사는 식물, 산과 들에 사는 식물들 소개 자료를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하나를 골라 각자 000이 되는 법을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고심하면서 자신이 식물이 되는 과정을 상상했다. 글을 쓰다가 책상에서 몸을 틀어 뿌리처럼 다리를 뻗기도 하고 씨를 퍼뜨리는 것을 상상하는 것인지 주먹 쥔 손을 폈다 접었다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23가지 변신술이 완성되자 짝을 이뤄 번갈아서 한 명이 자기가 쓴 000이 되는 법을 소개하면 짝꿍은 눈을 감고 단계마다 들은 대로 몸을 움직였다. 교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식물로 변신하는 멋진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수업 마무리에 느낀 점을 발표했다. 한 아이는 이제 나무에서 잎을 떼어내면 내 몸의 일부가 뜯겨 나가는 기분이 들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아이는 자기가 밥 먹을 때 가족처럼 반드시 나무의 밥도 챙겨줄 거라고 했다. 화분에 물 줄 때 살아있는 사람에게 하듯이 많이 먹고 소화 잘 시키고 무럭무럭 자라라고 덕담을 해준다는 아이도 있었다.


기후위기로 학교는 생태전환교육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지만 이처럼 강력하고 부드러운 설득으로 분명한 생각의 변화를 가져오는 수업은 처음이었다. 좋은 수업이 된 데에는 두 선생님이 팀워크를 이루어 협력하며 한 반의 수업을 이끌어 간 것도 주효했다. 성악을 전공해 뮤지컬을 하고 있는 분과 미술을 전공한 분이 역할을 분담했다. 두 선생님은 명이 시범을 보이면 명이 설명하면서 서로를 보완했다. 아이들 앞에 나란히 서서 만담 하듯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물 흐르듯 아이들을 수업의 중심으로 데려갔다.


한 반에 선생님이 한 명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교육계에서도 더불어 교사제, 협력교사제 등 여러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공동체 안에서 민주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이 교육이라면 한 교실 안에 두 명의 선생님으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선생님 한 명이 독자적으로 주도하지 않고 두 명의 선생님이 협력한다면 배움의 과정과 목적이 일치하는 이상적인 수업이 전개될 것 같다.


토요일 오후 커피와 함께 먹을 페스츄리 빵을 사러가며 우리 동네 단풍을 구경했다. 나뭇잎 무성여름에는 잘 볼 수 없던 나무줄기가 검은 뼈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냉해를 대비해 나뭇잎을 모두 떨궈내고 앙상한 겨울나무로 변신할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길에는 네모 반듯한 보도블록을 놀리듯이 낙엽과 단풍이 무질서하고 혼란스럽게 흩뿌려져 있었다. 눈처럼 푹신한 낙엽 길을 밟는 운치는 없었다. 낙엽은 쌓일 사이 없이 부지런하게 비닐봉지에 한가득 담겨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이곳이 산이라면 낙엽이 쌓이고 썩어서 비옥한 토양을 만드는 거름이 되지만 도시에서 자연은 보는 즐거움까지만 허용된다. 인간의 기준으로 필요하거나 보기 좋지 않으면 쓰레기로 처리되는 도시에서 학교 생태전환교육은 수박 겉핥기가 되기 쉽다. 삶과 일치하지 않는 배움은 학생을 구경꾼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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