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윰 Nov 21. 2021

양치질 하듯 매일 일기를 썼다면

1일 1드로잉,  

#128일차

*2021.11.21. 10분 글쓰기*

일기(그림일기, 일기, 일기장)


선생님들은 학교 다닐 때 일기나 숙제를 성실하게 하는 모범생이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숙제를 대놓고 거부하는 반항아였다가 선생님이 되었다면 멋있겠지만 단지 게을렀을 뿐이다. 개학을 코 앞에 앞두고 일기를 몰아 썼는데 그때마다 날씨가 문제였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없으니 기억에 의존해서 써야 했고 그게 생각날 리 없었다. 언니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며 날씨를 알려달라고 구걸해서 언니가 일기 쓴 날짜와 같은 날에 하얀 여백을 검은 글씨로 채우는데 주력했다. 그런 일기는 나를 위한 것도 그렇다고 선생님도 아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뻔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몇 번의 이사와 함께 일기장이 분실된 건 당연했다. 애정이 묻지 않은 물건은 의도적인 방임으로 망가지거나 분실되어 사라지기 마련이다.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일기장도 내 소지품 목록에서 빠져나갔다. 일기를 안 쓰고도 행복하게 잘 살았으므로 일기장 따위 아쉽지 않았다. 일기장이 다시 내 삶으로 들어온 건 인생이 괴로웠을 때였다. 사춘기와 함께 몸이 변하고 성격이 바뀌었다. 넓은 인맥과 두루 원만한 교우관계를 자랑하던 인싸 같은 아이가 지구를 받치고 있는 아틀라스처럼 무거운 고민을 짊어지고 칙칙하고 어두운 아웃사이더가 된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며 오래전 잃어버린 절친을 만난 듯 일기장과 재회했다. 일기장의 존재로 한없이 비뚤어져 나가던 마음이 멀지 않아 제 갈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내게 힘이 되었던 일기장들은 이사할 때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따라다녔고 지금도 장롱 구석에 쌓여있다. 가끔 방구석에 등을 대고 과거의 일기장을 들춰볼 때가 있다. 십 대의 나는 어떤 생각을 했었나, 이십 대의 나는 무엇이 힘들었나 궁금했다. 그 시절의 고민과 문제의식으로부터 나는 얼마나 걸어 나왔는가. 그 당시 내가 느낀 괴로움의 종류와 크기로 미숙함의 부피를 재며 지금의 성숙에 안도할 때도 있다. 그때 SNS나 블로그에 글을 썼어도 고등학교 일기장과 동질의 그리움을 주었을까 호기심이 생긴다.


선생님이 된 나는 초임교사 때는 일기 검사를 했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일기 검사를 하는 것에 대해 개인의 사생활과 인권 문제와 결부되는 민감성을 지닌 선생님들도 많아졌다. 어떤 아이들은 일기를 빙자해 선생님에게 요구사항을 밀어 넣는 경우도 있었다. 체육대회 때 편을 그렇게 갈라 주어 불리했다, 지금 짝이 마음에 안 드는데 짝을 좀 자주 바꾸면 좋겠다, 다른 반은 숙제가 적다는데 우리 반은 왜 숙제가 많으냐...


경력이 적었을 때는 그런 내용을 보게 되면 괘씸해하고 어떻게 답글을 달아주어야 하나 고민했다. 지금은 귀여운 투정으로 보이고 선생님과 소통이 어려워 선생님이 안 들어줄 것 같아서 이렇게 썼을까 싶어 헤아리는 마음을 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원격학습, 온라인 기기 사용이 늘어나며 인터넷이나 핸드폰의 스크린을 마주하는 스크린 타임이 급격히 많아졌다. 우리 반에도 스마트폰을 가진 아이가 23명 중에 18명이다. 하루 생활을 촬영해 기록하는 영상일기 같은 브이로그를 올리며 자신의 채널을 만드는 아이들도 있다. 교육청, 교육부가 주도하여 AI를 활용한 수학 공부, 온라인 학습 강좌도 우후죽순 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학교는 네모칸 공책에 받아쓰기를 하고 일기 검사를 병행하고 있으니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희한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기성세대는 공책에 일기를 쓰다가 컴퓨터, 스마트폰이 생기며 블로그나 SNS로 매체만 갈아탔으므로 일기가 주는 기운이나 감정이 그대로 유지된다. 유모차에 탈 때부터 유튜브 영상을 봐왔던 요즘 아이들에게 일기는 몸으로 느끼는 감각이 처음부터 다르다. 종이 교과서도 e북으로 바꿔가고 공책도 태블릿으로 바뀌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현재 메타버스의 하나인 제페토 이용자가 1천억 명이 넘고 가입자 대부분 십 대라고 하니 격세지감이 든다. 교사 대상의 연수도 또 다른 메타버스인 게더타운으로 자료를 탑재하며 가상세계에 발끝이라도 담가보게 하고 있다. 자본이 등 떠미는 방향으로 조금의 망설임 없이 태세를 바꾸는 것은 아닌가, 이러다 21세기판 러다이트 운동이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조바심이 난다.


작가의 이전글 반려 식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