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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Nov 22. 2021

추억의 단서

1일 1드로잉, 잣나무 열매

#129일차

*2021.11.22. 10분 글쓰기*

사진, 사진관, 카메라...사진의 추억


결혼할 때 스드메를 안 했다. (스드메는 스튜디오 촬영, 웨딩드레스, 메이크업의 줄임말이다.) 처음에는 결혼식도 안 하려고 했었다. 허례허식이라 생각했고 치러야 할 고생과 시간, 돈이 아까웠다. 한두 시간이면 끝나는 일에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이고 여러 사람들을 불러서 부담 주는 게 싫었다. 그래서 히말라야 트레킹으로 결혼식을 대신하려고 했다. 부모님께 결정한 바를 말씀드렸더니 처음으로 내가 선택한 일에 반대하셨다. 아버지는 무슨 도둑 결혼하냐고 어디 어른들 무시하고 그런 결정을 했냐며 혼내셔서 부랴부랴 날짜 잡고 식장을 정했다.


기왕 할 거면 의미를 두고 싶어서 전통혼례로 치렀다. 넓고 하얀 천이 둘러진 한옥 마당에 손님들이 줄지어 앉았다. 기와집 마루에 전통악기 연주자들이 앉아서 태평소, 아쟁, 북, 가야금 등으로 전통음악을 연주했다. 하얀 두루마기를 걸치고 갓을 쓴 그날 처음 본 할아버지(어디 전통문화원의 대표라고 들었고 그분 아니면 식을 진행할 수 없다고 했다.)가 두루마리를 펼쳐 혼례를 허락한다는 내용의 한문을 읽었다. 전통악기 연주, 혼례문 읽어주는 비용, 혼례식 상 A, B세트 등 모든 것이 식장 계약할 때 옵션에 있었다.


얼굴에 연지곤지를 찍고 대여한 한복을 입고 신랑과 마주 보고 섰다. 친한 선생님들이 내 양쪽에서 팔을 잡아주며 절하는 것을 도왔다. 그날 결혼식에서 가장 신나 보였던 건 사진기사님이었다. 그는 수시로 내 곁에 와서 고개 좀 들으라고 속삭였다. 둥글넓적한 얼굴에 5대 5 앞가르마로 머리통에 딱 붙인 쪽진 머리가 너무 창피해서 들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이 해프닝 같아서 빨리 끝내고 싶은 생각만 간절했다. 사진 찍으려고 결혼식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지금도 가시지 않는다. 정작 축복이 되어야 할 결혼생활은 식장을 나오고부터 시작되는데 부부가 되었다고 알리는 일에 너무 힘을 주는 것 같다. 살아가면서 그날 하루 찍어 만든 두꺼운 결혼식 앨범을 꺼내 보는 일도 별로 없는데 말이다.   


예전에는 누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앵글에서 빠져나가려고 도망 다녔다.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거나 각도를 잡는 모습이 잘 보이려고 능청 떠는 것 같아서 체신머리 없어 보였던 건 핑계고 실은 '끼'라고는 전혀 없는 숙맥이라 피했던 거다. 고등학생 때 학교 안에 있던 매점은 신문 가판대처럼 생겼었다. 도난을 피하기 위해서였는지 뒤쪽에 과자가 진열되어 있어서 000 과자를 달라고 이름을 말해야 주인아주머니나 아르바이트생이 꺼내 주었다. 나보다 몇 살 차이 안 날 것 같은 오빠가 일할 때는 과자를 못 사 먹었다. 그 오빠에게 관심 있는 것도 아닌데 과자 이름 말하는 게 창피해서 바보같이 손 닿는 곳에 있는 아무 껌이나 초콜릿을 샀다.


연예인들은 카메라가 자신을 향하면 신이 난다던데 얼마나 끼가 넘칠지 상상도 안된다. 사진기 앞에서 온갖 포즈와 표정을 취해도 편안해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부럽다. 자신의 외모에 자신 있고 자랑스러워서 그럴까? 사진 찍기 싫었던 사진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있다. 사진이 받는 얼굴이면 나도 즐겼을지 모른다.


철이 들어가며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제는 사진 찍히는 것이 편해졌다. 요즘은 사진을 보며 내 얼굴이 크게 나왔나, 몸이 날씬하게 나왔나 체크하지 않는다. 그 사진을 찍었던 순간의 감정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영원히 남기고 싶을 만큼 소중했던 그때의 정경과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시간이 사진에 담겨있다. 내가 우리반 아이들을 사진 찍을 때는 언제인가 생각해봤다. 행복해하는 아이들 얼굴, 기억하고 싶은 수업, 의미가 담긴 시간을 망각으로 흘려보내기 싫어서 순간을 붙잡고 싶을 때였다. 사진 전시회에 가면 사진을 찍어준 사람의 시선과 찍힌 대상의 교감을 재현해보려 애쓰고 내 취향의 사진을 사서 액자에 넣어 집에 걸어두기도 한다. 기억력이 떨어지면서 사진을 추억의 단서로 삼아 의지하는 일도 생겼다. 사진이 좋아지는 이유가 여러모로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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