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외로움은 다르다. 우리는 때로 외롭거나 외롭지 않을 수는 있지만 고독이 없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 혼자 살면 외로워서 힘들 것 같지만 가족과 함께 있어도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혼자서도 충만한 행복감을 느낄 때 외로움은 문제 되지 않는다. 다수 속에서 홀로 된 기분이 들 때 마음은 쓸쓸하고 심심하다. 내게 다가오는 타인이 외로움을 잊게 해 줄 수 있지만 영원하지 않다. 외로움은 상대에게 구속되어 있고 결정권이 나에게 없으므로 선택의 자유가 없다. 외로움은 의외의 상황에서 불쑥 찾아올 때가 있고 노력하지 않아도 물러날 때가 있다. 외로움이 있어 타인이 소중하고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에게 고맙다. 외로움이 마음에 들르는 손님이라면 고독은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성질이다.
고독은 아무 조건이나 제약이 없다. 인간은 탄생과 죽음, 고통의 순간을고독 속에서 맞이한다. 고독은 외로움과 달리 소모적이지 않으며 고독은 능력이다. 고독을 통해 우리는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으며 고독 속에서 새로운 창조가 일어난다. 고독은 결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할 때 참고할 수 있는 훌륭한 척도가 된다. 자신이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지 알아보려면 혼자서 잘 지낼 수 있는지에 살펴보면 된다. 혼자 지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자신의 결핍을 채워주길 바라지 않는다. 각자 고독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두 사람 사이의 안전한 거리가 지켜지고 결혼생활이 유지될 수 있다.
러시아의 수학자 그레고리 페렐만은 2002년 온라인에 수학 논문을 올렸다. 상금 100만 달러와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이 예약된 밀레니엄 문제 중 하나인 푸앵카레의 추측을 증명해낸 것이다. 그는 상금과 필즈상을 거부하고 어떤 언론 매체와도 인터뷰하지 않으며 세속적 명예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대학 교수 자리도 마다하고 스탠퍼드, 프린스턴 대학의 좋은 조건도 거절했다. 원래 있던 러시아의 작은 연구소에서도 나중엔 나왔다. 식당을 운영하는 어머니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며 변두리 아파트에 살고 홀로 등산과 버섯을 따는 취미를 즐기며 자신의 삶을작은 구역으로 제한했다. 기행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그의 선택은 수학이라는 순수 학문을 이성적으로 탐구하는 자유와 고독이었다.
삶의 경계를 작게 만들고 단순한 생활 속에서 꼭 해야 할 일을 추려내겠다. 고독 속에서 하루는 길어지고 세상은 넓어진다. 고독한 시간을 통해 이론과 실천은 유기적 일체성을 이루게 된다. 고독으로 작고 단단한 알맹이 같은 사람이 되어 무한한 시간과 공간의 중심에 가까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