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작할 때 도입부 수업자료로 그림책을 자주 활용하는데 어떤 그림책의 경우 한두 시간수업으로는 다루기 벅찬 내용을 담고 있다. <내가 개였을 때> 주인공 앙투안은 스물다섯 살의 지적장애인이다. 그를 돌봐주던 엄마가 죽고 혼자 남게 된 앙투안의 삶에 관한 그림책이다. 엄마의 죽음을 알지 못하는 앙투안은 삼촌 집에 보내진다. 간결한 그림체와 절제된 색감 속에서 앙투안만 모르고 독자들은 안타까운 상황이 앙투안의 시점으로 담담하게 서술된다.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고 방임되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비로소 책 제목을 이해하게 된다. 장애, 노인요양, 간병, 육아, 돌봄을 가정의 내부 사정로 방치하지 말고 공동의 문제로 가져와 국가가 나서서 제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출판사에서는 <블랙라벨 세트 1-폭력과 차별을 넘어서>라는 주제로 인권에 관한 별개의 그림책 4권을 묶었다. <내가 개였을 때> 외 3권은 <나는... 의 딸입니다>, <아빠의 술친구>, <그렇게 나무가 자란다>이다. <나는... 의 딸입니다>는 성매매 종사자를 엄마로 둔 한나의 이야기다. 마을 사람들의 욕설과 동정, 혐오 차별을 받는 가운데 한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한다. <아빠의 술친구>는 매일 술에 취한 아빠의 언어폭력, 주먹다짐과발길질을 당하는 아이가 나온다. <그렇게 나무가 자란다>는 아동학대를 당한 아이가 자라서 가족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폭력의 대물림에 관한 책이다.
서 있는 자리가 바뀌면 풍경이 달라진다고, 그림책 속 주인공의 자리에 서보면 보이지 않는 계급과 켜켜이 쌓여있는 차별을 느끼게 된다.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복잡한 사정과 총체적인 문제가 내포된 사회의 모순은 취약한 연결고리에서 모습을 드러낸다.생각할 거리가 많고 주제가 무거워서 성인이나 고등학생이 읽기에 적합하다.
차별과 편견, 폭력과 학대에 관한 이야기는 문제의 바깥에 선 사람들의 시선과 언어로 표현되어 한계가 있다. 장애인, 성매매 종사자, 노인, 아동, 학대의 당사자들이 발화자가 되어 더 많은 언어가 생성되어야 한다. 나는 이해해, 네 마음 알아 같은 말 조심히 써야 한다. 안 그럼 코피 터지는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