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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Dec 12. 2021

우리는 어디로...

1일1드로잉, 드리퍼

#149일차


시간은 지구의 자전 주기를 재서 얻은 단위로 고전 물리학에서는 절대적인 개념이었으나 아인슈타인 이후 시간의 개념이 달라졌다. 고등학교 때 물리 선생님은 젊은 기간제 교사였다. 선생님은 사물의 숨겨진 본질에 대해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 학생들 앞에서 의연하게 자신의 할 일을 하며 묵묵히 설명했다. 물질과 시공간에 따른 운동 원리, 에너지, 힘 같은 개념은 앞으로 써먹을 일 없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나라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나는 큰 비밀을 알고 있지만 특권 의식 없이 앎을 강요하지 않는 선생님의 담백한 스타일이 좋았다. 선생님이 좋아서 물리 수업에 졸지 않고 성실히 임했지만 상대성 이론은 전혀 감도 못 잡았다. 한 가지 아는 것은 시간을 느끼는 감각이 사람마다, 사건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만남, 즐거운 일을 할 때는 시간이 화살 같지만 도무지 공통분모를 찾을 수 없고 앞뒤 꽉 막힌 사람과 마주할 때는 일분일초가 모두 느껴지도록 지루하다.


나는 시간의 또 다른 면모를 박완서의 수필에서 보았다. 소설가의 남편이 죽은 지 일 년도 안되어 친구가 위로해준다고 남편과 즐겨 찾던 양수리 장어집에 소설가를 데려간 적이 있다. 식당 주인이 남편의 안부를 물으면 뭐라고 할까 신경 쓰였고 장어 굽는 냄새가 토할 것 같아서 오랫동안 체했다. 시간이 흘러 지인이 식사대접을 한다고 우연히도 바로 그 양수리 장어집에 자신을 데려갔다. 이십 년 만에 다시 찾은 장어집은 예전 주인이 바뀌었는지 보이지 않고 마당의 나무는 거목으로 자라 있었다. 소설가는 시간의 힘으로 남편을 보낸 고통에서 놓여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건강한 식욕을 느끼며 달게 장어를 먹었다.


각자의 사정으로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숱한 위로와 가능성을 배제한 무한 긍정을 남발하는 대신 박완서 수필의 마지막 문단을 보내며 말을 아낀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소중한 체험이 있다면 그건 시간이 해결 못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이야말로 신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시간이 신이었을까. 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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