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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Sep 09. 2021

1일 1드로잉

분꽃

#55일차

아이들 책 속에는 상상 속 집들이 무한하다. 100층짜리 집, 동굴 미로 같은 집, 버섯집, 나무 위의 집, 변신하는 집.. 시인은 분꽃 내부를 벽으로 막고 칸을 나눠 분꽃에 둥지를 틀고 사는 부부를 상상한다. 분꽃은 저녁에 피고 해 뜨면 지는 것이 나팔꽃과 정반대의 시간대에 활동한다. 모습은 나팔꽃과 꼭 닮았는데 못 만나는 걸 보면 분꽃과 나팔꽃은 플라워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견우와 직녀다. 분꽃은 오후4시쯤 피어서 영어이름이 FOUR-0(four-0'clock)라고 한다. 분꽃이 기지개를 켜고 얼굴을 들때 아낙네들은 쌀을 씻으며 저녁밥을 준비했다니 자연과 인간생활이 서로를 포근하게 감싸고 어우러지는 느낌이다.


어릴 때 뒤집어서 꽃술을 잡아 빼 귀걸이로 만들어 귀에 걸고 놀았던 분꽃. 옛날에는 분꽃 열매를 가루 내서 얼굴에 바르면 하얗게 분을 칠한 효과가 났다고 한다.


궁핍한 그 시절에도 해사한 얼굴을 탐내고 스스로를 가꿨구나. 없는 살림 티 날까 봐 저녁에 빈 솥을 걸어 아궁이 불을 때기도 했다고 들었다. 그 자존심이 애잔하기도 하고 근사해 보이기도 하다.


그렇지. 배부르고 등 따습게 지내도 자존심을 잃으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지. 동물은 유전자의 명령대로 본능과 감각에 충실해서 태어난 대로 살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만들어간다. 칼 구스타프 융은 말했다. "I am not what happened to me, I am what I choose to become." 이미 일어난 과거의 일들에 영향을 받은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내가 되고자 의식적으로 선택한 것이 나인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며 오늘을,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국어시간 아이들과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읽었다. 그는 반드시 독립한다는 뜻으로 아들 이름을 필립必立이라고 지었다. 몰래 독립운동하느라 가족을 보살피지 못하고 사생활도 즐기지 못한 사람들.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은 하나같이 어렵게 살았다는 이야기를 아이들과 나눴다. 독립운동가들은 목숨을 걸고 굶주리고 쫓기는 중에도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당당한 포즈로 사진을 남겼다. 사진 속 그들의 눈빛에는 신념이 생활을 압도하고 정신의 가치가 삶을 이끄는 모습이 나타난다.


언젠가 프랑스는 신조어를 국어로 인정하거나 문법을 바꿀 때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격론을 거쳐 정하는데 그 결정은 누구나 인정한다고 들었다. 구성원이 될 자격이나 국적은 없고 시인, 소설가, 철학자, 과학자 등 다방면의 학계 인사로 프랑스어를 빛낸 공로가 있는 40명이 위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권위를 가진 지성 있는 집단이 정권 변화와 상관없이 존재해서 품위와 자존심을 지켜주면 좋겠다. 정신의 가치가 형형하게 별처럼 빛나며 혐오 차별과 인간성 상실의 물질만능시대를 꾸짖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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