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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Sep 25. 2021

1일1드로잉

꽃사과

#71일차

남편이 회사 옆 비닐하우스에서 꽃사과를 얻어 왔다. 내가 매일 그림을 그리는 게 생각나서 일부러 챙겨 왔다고 하니 쑥스럽고 고마웠다. 꽃사과는 대추보다 크고 자두보다 작은데 크기만 다를 뿐 사과와 생김새나 맛이 똑같아 미니사과라고도 한다.


전기가 발명되기 전 칠흑 같은 어둠이 익숙했던 옛날에 선생님이 수수께끼를 냈다. 이것 하나만 있으면 교실을 가득 채울 수 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촛불 하나. 작은 촛불 하나 켜면 짙은 어둠이 물러가고 따뜻한 불빛이 방을 가득 채운다. 뜨거운 햇살을 가릴 때도, 차가운 비를 피할 때도 손바닥 그늘 하나,  우산 하나면 충분하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실로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는 걸 새삼 느낀다.


채널을 돌리다 <EBS 건축 탐구-집>에 건축학과 김승회 교수님이 경기도 여주에 지은 세컨드 하우스 "소운서재"가 소개된 것을 우연히 보았다. 남편의 은사님을 십수 년 만에 보니 TV 화면이어도 반가웠다. 대학시절 남편을 애제자로 아껴주셨던 교수님은 결혼식에 오셔서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고 축하해주셨던 고마운 분이다. 남편은 찾아뵙지 못하는 은사님을 항상 마음에 품고 그리워한다. 소운서재는 1층에 부엌과 욕실, 2층에 서재가 있는 아담한 집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폭이 60cm였다. 처음엔 너무 좁은 거 아닌가? 했는데 한 사람이 올라가는데 충분했고 길쭉한 계단 벽면을 따라 책이 가득 꽂혀 세련되어 보였다. 여닫이 나무 문을 여니 아무 가구도, 장식도 없는 빈 방이 나왔다. 퇴계 이황의 침실도 2.1mx2.4m에 불과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부유한 양반집이나 일반 평민이나 방 한 칸의 크기는 비슷했다. (부유한 집은 방의 개수가 많았던 거다.) 가로세로 2m에 불과해서 한 사람 누우면 세로로는 남은 자리가 거의 없었다. 이유는 난방 때문이었다. 바닥 돌을 데워 오랫동안 따뜻함이 유지되는 우수한 온돌 문화에서 한계는 겨울의 웃풍이었다. 나는 이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에 감탄했다. 옛사람들은 덜어내고 줄여서 부족함을 해결했다. 찬 바람을 막기 위해 한옥에서 창문을 없애거나 창문 방문을 작게 만들었다. 공기를 데우는 난방법이 아니므로 천장도 높을 필요가 없어 지붕이 낮았다. 당시 사람들의 평균 신장이 작은 것도 있지만 난방을 위해 방의 크기 작은 것이 좋았다고 한다.


김승회 교수님은 수많은 의뢰를 받아 다른 사람의 집, 랜드마크가 된 유명 건물, 공공건물을 지었다. 교수님은 처음으로 자신이 살 집을 설계하면서 막연하게 원했던 것이 뚜렷하고 구체적인 실체로 드러나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생각해보면 꿈꾸는 삶이 그렇게 멀리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할 것이다. 소망하는 삶에 도달하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닐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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